“안개가 자욱한 길에서는 차를 잠시 멈춰 세운 다음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정하는 게 낫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발표한 뒤 이런 비유를 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국내외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여러 불확실성의 요인들을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금통위 직후 한은 총재의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주요 내용.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수준까지 올랐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시 ‘빅스텝'(한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기준금리 동결로 한-미 간 정책금리 격차가 더욱 커지고 이에 따라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는데 대응 방안은.
“최근 환율 변동은 국내적 요인이 아니라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정 수준을 목표로 해서 환율을 관리하기 보다는 환율 쏠림 현상이 있거나 변동성이 너무 커지면 금융시장 안정이나 물가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조처를 할 예정이다.”
―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보면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면서 ‘상당 기간’이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어떤 의미인지.
“이번에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종 기준금리 수준에 대해 금통위 내 한 분은 3.50% 동결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냈고, 나머지 다섯 분은 당분간 3.75%로 가져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물가상승률 경로가 장기 목표인 2% 수준으로 수렴해 가는 것이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될 때까지 ‘상당 기간’이 걸릴 것이며, 그때까지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
― 물가 경로가 목표치인 2%로 간다는 확신이 들면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했는데, 연말께 금리 인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시장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여러 불확실성이 있는데 (물가상승률) 데이터가 이 정도면 2%로 가겠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가서 논의할 것이다. 앞으로 한 몇 개월 사이에 그런 변화가 나타날 여건은 아닌 것 같다.”
―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내렸는데 최종 기준금리는 3.75%까지 열어두자는 금통위원이 늘었다. 여전히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크다고 보는 것인가.
“물가에 상방 리스크가 있는 것은 맞고 미국 통화정책에 따라 한-미 간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질 경우 시장에 미칠 영향도 봐야 한다. 이런 것들을 복합적으로 파악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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