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가 조작을 해도 실패하면 죄를 물을 수 없다면, 살인 미수도 무죄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1심 판결(지난 10일)을 접한 대중은 관련 기사 댓글 등에서 이처럼 분노한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9명 중 주가 조작을 주도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포함한 6명이 징역형의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2명은 무죄가 선고됐다.
이는 1심 재판부가 이들이 주가 조작을 한 것은 맞으나, 이를 “(주가 조작에 따른 이익이 적은) 실패한 시세 조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중대 범죄를 저질러도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행 제도의 허점을 방치해온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적 공분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권 전 회장이 자신이 최대 주주인 코스닥 상장사 도이치모터스의 주가를 불법으로 끌어올렸다는 혐의가 핵심이다. 도이치모터스의 우회 상장 직후인 지난 2009년 12월23일부터 2012년 12월7일까지 3년여간 권 전 회장 의뢰를 받은 2명의 ‘주포’(주가 조작 선수)가 전·현직 증권사 임직원, 투자 자문사 등을 동원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웠다.
1심 재판부는 공소시효(10년)가 지나지 않은 2010년 10월21일 이후를 기준으로, 이들이 통정·가장 매매(사전에 짜고 주식을 매도·매수하거나 매매를 가장하는 것) 101건, 고가 매수 등 시세 조종 주문 3083건의 불법을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이들의 주가 조작 시도가 3천회가 넘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조가 조작 세력 대다수가 가중 처벌을 피한 건 ‘제도의 구멍’ 탓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시세 조종 등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불공정 거래 행위의 처벌 수위를 부당 이득액 규모에 따라 다르게 정한다. 주가 조작 공범들이 얻은 전체 부당 이득이 5억원 이상∼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 징역, 5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문제는 이런 부당 이득액 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권 전 회장 등이 시세 조종으로 얻은 부당 이득을 약 107억원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구체적인 이득액 산정이 불가능하다”며 가장 낮은 수위인 6개월~1년6개월의 유기 징역(부당 이득액 1억원 미만)을 양형 기준으로 적용했다. 범죄로 인한 몰수·추징액도 부당 이득액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이들의 벌금도 적게 선고됐다.
특히 재판부는 “시세 조종 시도가 행해졌지만 3년여간의 주가 변동 전체가 피고인들의 시세 조종 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볼만한 증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주가 조작 기간에 발생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미국 블랙록의 도이치모터스 인수설 등 외부 변수에 의한 주가 변동 등을 고려하면 이들의 주가 조작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상승 간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따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가 조작범의 형사 처분 수위를 부당 이득액 규모에 견줘 정하는 현행법 규정은 애초 자본시장 불공정 거래 규제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지금은 주가 조작을 저지른 이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시 범죄에 뛰어드는 유인으로 악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가가 뛴 건 조작이 아니라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처벌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 조작 사건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검찰이 무겁게 기소해도 정작 주가 조작범들은 다 빠져나가게 되면서 기존 제도가 전관 변호사들의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도이치모터스 전시장. 도이치모터스 누리집 갈무리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으나 정부와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불공정 거래 행위의 부당 이득액 산정 방식을 명확히 규정하자며 지난 2020년 6월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여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주가 조작 등 불공정 거래 행위로 얻은 전체 수입에서 거래 비용을 뺀 차액을 부당 이익으로 자본시장법에 명시하고 구체적인 계산 방법은 시행령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또 주가가 외부 요인으로 변동했다면 이를 범죄 혐의자가 직접 입증하도록 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향한 검찰의 태도도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하는 한 원인이다. 도이치모터스 권 전 회장과 김 여사, 김 여사의 어머니 최은순씨가 서로 밀접한 관계라는 건 1심 판결문에서 드러나는 명백한 사실이다. 김 여사와 최씨 주식 계좌가 공소시효 전후로 시세 조종에 직접 동원된데다, 권 전 회장이 최씨 계좌 중 하나를 자신의 차명 계좌로 이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 여사를 향한 의혹의 핵심은 김 여사가 당시 도이치모터스 주식의 시세 조종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느냐다. 만약 이를 알고 있었다면 단순 계좌 일임 매매가 아닌 공범으로 분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시세 조종의 공범을 판단할 때 주가 조작 빈도나 거래 일수 등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의혹을 해소하려면 서면 조사가 아니라 김 여사와 세력들을 대상으로 김 여사의 시세 조종 인지 여부를 포괄적으로 조사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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