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3일 오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집주인 대신 대위변제에 나섰던 주택 5가구 가운데 1가구는 애초 보증보험 가입 때 감정평가서를 이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임의로 부풀릴 수 없는 공시가격이나 실거래가가 아닌, 감정평가사와 모의해 과도하게 산정할 수 있는 감정평가액을 활용함으로써 전셋값을 부풀린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2일 공개한 주택도시보증공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 주택 가운데 감정평가서를 이용해 보증보험에 가입했던 주택은 960건이고 사고금액은 2234억원이었다. 건수 기준으로 지난해 전체 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사고(5443건)의 17.6%, 사고금액(1조1726억원) 기준으로 19.1%가 감정평가서 이용 사례였던 셈이다.
감정평가서가 이용된 보증보험 사고금액은 2018년 8억원, 2019년 22억원, 2020년 52억원, 2021년 251억원, 2022년 2234억원으로 빠르게 늘었다. 주택 유형별로 보면 지난해 다세대 주택에서 발생한 감정평가서 이용 보증보험 사고 건수가 717건으로 전체의 74.7%에 이른다. 같은 해 아파트(60건)나 오피스텔(152건) 등보다 빌라에서 감정평가서를 이용한 보증보험 가입 뒤 발생한 보증사고가 훨씬 많다.
적잖은 사고 주택이 애초에 감정평가액이 부풀려진 채로 보증보험에 가입됐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 사기 일당들은 감정평가사에 ‘리베이트’를 주고 참조할 시세가 없는 신축빌라를 중심으로 감정평가액을 적정 수준보다 부풀리는 수법(업감정)을 많이 썼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험 가입 심사때 공시가격이나 실거래가보다 감정평가를 최우선으로 참조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감정평가액을 부풀리면 세입자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전세대출금이 커져, 사기 일당으로선 세입자로부터 더 많은 보증금을 받아낼 수 있다.
‘업감정’을 활용한 전세사기 문제가 커지자, 정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최근에야 제도 개선을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지난달 31일부터 보증보험 가입 심사 때 공시가격을 최우선으로 보고, 공시가격이 없으면 실거래가를 참조하고 있다. 감정평가서는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가 둘 다 없을 때만 활용한다. 이때 감정평가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가 추천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지정한 감정평가법인 40곳만 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공사가 지정한 감정평가법인이 37곳이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40곳 중 3곳은 업감정에 연루된 의혹이 있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지난 8일 3개 법인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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