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분기 가계의 여유자금이 1년 전보다 7조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방역조치가 완화되면서 소비가 늘어난 영향이다.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으로 타격을 입은 기업들의 여유자금은 사상 최소치로 주저앉았다.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자금순환(잠정) 통계를 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은 26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33조9천억원)보다 7조4천억원 줄었다. 순자금운용은 해당 기간 동안 취득한 금융자산(자금운용)에서 금융부채(자금조달)를 뺀 것으로, 개념상 저축에서 투자를 뺀 값과 일치한다. 순자금운용의 감소는 여유자금 규모가 그만큼 줄었다는 뜻인 셈이다.
이는 코로나19 방역조치 완화가 본격화하면서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소비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조달은 50조2천억원에서 11조원으로 줄었으나, 자금운용이 84조1천억원에서 37조6천억원으로 더 크게 감소했다. 가계가 소비를 늘리면서 금융자산 취득 규모가 더 많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식 거래액이 급감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운용 구성을 보면, 주식은 27조7천억원에서 5조6천억원으로 대폭 축소됐다. 반면 채권은 8천억원에서 7조9천억원으로, 저축성예금은 19조7천억원에서 37조원으로 늘어났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뚜렷해지고 은행들의 수신금리가 크게 오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분기 말 잔액 기준으로도 주식의 비중이 21.0%에서 17.9%로 떨어지고, 예금의 비중은 40.7%에서 43.6%로 올랐다.
기업들의 여유자금은 역대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했다. 비금융법인의 순자금운용은 -26조4천억원에서 -61조7천억원으로 눈에 띄게 내려앉았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최소치다. 자금조달도 90조8천억원에서 81조7천억원으로 줄었지만, 자금운용이 64조5천억원에서 20조원으로 더 크게 감소한 탓이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운전자금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해석된다.
가계의 재무상태는 직전 분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자산을 금융부채로 나눈 비율은 2.12배로, 2분기 말(2.13배)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국내 총 금융자산은 2경3861조5천억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2.3% 늘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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