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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채권시장 흔든 흥국생명…‘자본이 되는 빚’ 영구채 논란

등록 2022-11-12 11:00수정 2022-11-12 11:25

[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 ‘톡’
‘영구채’ 자본일까? 1년 만기 채권일까?

원금 두고 이자만 갚는 영구채
자본 확충 목적으로 발행한 뒤
중도상환 포기 땐 후폭풍 불러
자본 인정이 옳은지 검토 필요
실제로는 기업의 ‘빚’이지만 장부상 ‘자본’으로 인정되는 영구채의 ‘콜옵션’ 문제로 최근 진에어와 흥국생명이 논란을 빚었다. 사진은 김포공항 진에어 수속 창구. 연합뉴스
실제로는 기업의 ‘빚’이지만 장부상 ‘자본’으로 인정되는 영구채의 ‘콜옵션’ 문제로 최근 진에어와 흥국생명이 논란을 빚었다. 사진은 김포공항 진에어 수속 창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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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인데, 원금을 갚지 않을 수는 없는 빚이 있다면, 이것은 빚인가, 아닌가? 참으로 알쏭달쏭한 질문이다. 이상한 빚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고 한다.

지난달 21일 저가항공사 진에어 주가가 20%나 빠졌다. 동남아와 일본 노선 수요 증가로 업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터라 주가 급락 배경에 이목이 쏠렸다. 가장 큰 이유로는 자본잠식설이 지목됐다. 진에어는 지난해 8월 745억원어치 채권을 발행하여 자본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회사가 진 빚이 어떻게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처리되었을까?

부분자본잠식 우려되는 진에어

진에어가 발행한 채권은 만기 30년짜리다. 흔히들 ‘영구채’라 부르는데 ‘신종자본증권’의 한 종류다. 그렇다면 만기가 길어서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영구채는 만기 때마다 회사의 뜻에 따라 상환하지 않고 30년씩 연장해나갈 수 있다.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계속 물어도 되기 때문에 자본으로 인정해준다는 이야기다.

영구채는 발행 회사에 만기 전 중도상환할 수 있는 권리, 즉 콜옵션(call option)을 부여한다. 진에어가 발행한 영구채의 최초 중도상환일은 발행 1년이 지난 시점으로, 지난 8월에 도래했다. 거의 모든 영구채에는 특이한 조건이 하나 붙어 있다. 최초 중도상환일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즉 빚을 갚지 않으면 금리가 훌쩍 뛴다는 내용이다. 이자율 조정은 한차례에 그치지 않고 수년마다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이를 스텝업(step up)이라고 한다. 발행 회사가 최초 중도상환일에 상환을 포기하더라도 대개는 1~6개월마다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진에어 영구채의 최초 발행 이자율은 6.8%였다. 발행 1년 뒤에는 여기에 5%포인트가 더해진다. 이자율이 11.8%로 껑충 뛴다는 이야기다. 이후에는 1년마다 직전 이자율에 2%포인트가 가산된다. 진에어는 영구채 중도상환을 선택했다. 11.8%의 스텝업 이자율을 감당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자. 만약 스텝업 이자율이 8%대였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지금 진에어에 적용되는 시장금리가 적어도 이 정도는 되므로 구태여 중도상환할 것 없이 스텝업으로 갈 수 있었을까?

이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본시장에서는 영구채 발행 회사가 중도상환일에 콜옵션 행사하는 것을 거의 불문율처럼 여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진에어가 발행한 영구채는 자본증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만기 1년짜리 회사채나 다름없다. 영구채 발행 회사나 영구채를 인수하는 투자자 모두 계약 조건에 따라 만기 1~5년짜리 채권 정도로 생각한다.

진에어는 지난 8월 영구채를 상환한 뒤 지난달 다시 영구채를 발행했다. 영구채를 갚으면 발행금액 745억원이 자본에서 빠진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진에어 자본총계는 1161억원이다. 여기서 영구채 상환으로 745억원을 차감하면 자본총계는 416억원으로 줄어든다.

자본총계가 자본금(522억원)보다 작아지면서 3분기 말 기준으로 부분자본잠식에 빠진 것이다. 만약 3분기 손익 결산 결과 진에어가 자본총계(416억원)가 넘는 분기 적자를 내면 자본총계는 음수(-)로 간다. 자본완전잠식이다. 물론 진에어 적자가 이 정도 수준까지 커질 가능성은 낮다.

지난달 진에어 주가 급락은 3분기 결산이 완료되면 진에어가 부분자본잠식 또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벌어진 결과다. 진에어가 3분기 부분자본잠식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회사는 자본 확충 수단으로 지난달 또다시 영구채 발행을 선택했다. 발행 이자율은 8.6%다. 발행 후 1년 경과 시점인 내년 10월에는 이자율이 5%포인트 가산된다. 진에어는 이때 중도상환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구채를 자본으로 보는 게 맞을까, 1년 만기 채권으로 보는 게 맞을까?

10년 전 영구채를 둘러싼 논란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었다. 2012년 당시 두산인프라코어가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영구채 발행 계획을 밝혔다. 이때 몇가지 발행 조건 때문에 자본 인정 여부가 꽤 큰 화제가 되었다. 회계기준원과 금융당국은 오랜 시간 논의에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이 사안을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까지 가지고 가서 얻어낸 결론은 ‘자본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많은 기업이 사실상 만기 있는 채권을 발행하면서 신종자본증권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최근 흥국생명은 5년 전 발행했던 5억달러 외화 신종자본증권 중도상환권(콜옵션) 행사를 포기했다가 번복했다. 자본시장은 처음에는 이를 만기불이행처럼 받아들였다. 흥국생명은 이달 1일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공시했다. 그러자마자 한국 금융사들이 발행한 해외 채권 가격이 급락했다. 한국 채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국외 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계획 중인 기업이나 금융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전망이 국내외 매체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애초 이달 9일 중도상환일을 앞두고 새 영구채를 발행하여 옛 영구채를 갚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차환 발행 계획을 접어야 했다. 10% 이자율 제시에도 인수 의사를 밝힌 투자자가 거의 없었다. 두자릿수 이자를 물면서 차환 발행을 하느니 7% 수준의 조정이자율을 선택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흥국생명 콜옵션 번복한 이유

이러한 중도상환 포기가 국외 시장에서 거래 중인 한국물 채권(코리안페이퍼)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흥국생명은 결국 결정을 번복하고 중도상환했다. 영구채 상환으로 그만큼 자본이 비었기 때문에 회사는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 자본을 채워 넣어야 한다. 영구채 발행 계약 조건에 중도상환권은 분명히 발행 회사의 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명기되어 있다. 중도상환 포기는 법적으로 만기불이행(디폴트)이 아니다. 그런데도 중도상환이 실질적으로 강제되고 있고, 이행되어야 한다면 신종자본증권을 자본으로 인정하는 게 옳은지 본격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참고로 말하자면 국제회계기준위원회는 신종자본증권의 자본성 인정 여부에 대해 국제회계기준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를 상대로 의견 수렴 중이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은 부채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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