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지블랫 미국 하버드대 교수(오른쪽)와 손석희 전 (JTBC) 뉴스룸 앵커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치 신뢰도 하락은 민주주의 경험이나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를 방치할 경우 공적 신뢰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 사회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갈등 해소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정치에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트럼프 시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연구한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정치학)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치의 제로섬 시스템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블랫 교수는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승자독식 시스템을 막기 위해 정당과 정치인들이 ‘상호관용’과 ‘이해’ ‘자제’를 발휘할 것을 강조했다.
지블랫 교수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폭력적인 방식으로 붕괴되지 않는다. 대신 선출된 지도자와 국회, 대법원 등 민주적 기관과 제도를 통해 무너진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역설적으로 투표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지블랫 교수는 그 원인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지목했다. 정치적 경쟁자를 악마화하는 극단적인 행태가 민주주의를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지블랫 교수는 “정당이 상대방을 정당한 경쟁상대로 인정할 수 있도록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치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유럽연합(EU)의 사례를 들었다. 유럽연합은 처음부터 거창한 이상을 추구한 게 아니라 철강, 석탄 등 천연자원에 대한 규제나 기업과 노조 간의 분쟁 등 소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국가 간에 신뢰가 쌓이면서 유럽 통합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 정당들도 서로 경쟁하는 속에서도 지역 단위로 협력할 수 있는 문제를 발굴해서 해결해 나가면 신뢰를 쌓을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블랫 교수는 “민주주의가 극단적 양극화를 자정할 수 있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최고의 정치 시스템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손석희 전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 앵커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와 진영 갈등의 원인으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지자만 바라보는 ‘팬덤 정치’를 지목했다. 손 전 앵커는 “(정치인들이) 자기 앞에 있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자기 뒤에 있는 지지자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을 일삼는 행태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봤다. 그는 언론도 정치적 양극화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정치와 서로 다른 장에서 견제, 감시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특정 정치 세력과 정파적 이해관계로 함께 엮여 있는 현실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이런 방식의 수익 모델을 추구하면서 대중을 더욱 자기확정적으로 만들고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영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블랫 교수도 “누구나 유튜브 채널만 개설하면 언론인이 될 수 있고, 정치 경험이 없어도 정치 평론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반민주 세력에게 힘이 실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론이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수문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온라인 수익 모델과 영리적인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언론은 민주주의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상호관용과 자제를 통해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손 전 앵커는 “정치적 양극화가 지금처럼 극심한 상태에서 관용과 이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블랫 교수는 “매우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헌법과 제도의 변화를 통한 방법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민주적 규범에 대한 교육을 통해 그러한 문화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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