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 등의 원전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해법은 더는 회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연료로 사용된 뒤 남은 위험 물질이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 이후 43년 동안 처분장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으나, 지금까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가동 중인 원전 24기에서는 매년 750톤 정도의 사용후핵연료가 계속 쌓이고 있다. 누적량은 2021년 기준 1만7862톤에 이른다. 현재 이것들은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 중이다. 2021년 4분기 현재 전체 저장용량 대비 포화율은 98.1%에 이른다. 포화율이 가장 높은 월성 원전은 올해 조밀건조식저장시설(맥스터) 증설로 여유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부산 고리와 영광 한빛은 2031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원전의 포화도 시간문제이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최종(영구) 처분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원전 가동이 4년 늦은 핀란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부지 확보에 성공해 처분장을 건설 중이다. 스웨덴도 부지를 확정하고 허가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마련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은 처분장 확보기간으로 부지 선정절차 착수 이후 37년 이내로 상정했다. 외국 사례로 보면 안전한 방폐장 건설을 위해서는 부지선정 착수부터 시설운영까지 약 40년이 소요된다. 우리가 당장 2023년 부지선정 절차를 시작해도 대략 2060년대에나 실제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는 ‘친원전’ 정책을 천명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서두르고, 설계수명이 끝난 10개 원전의 수명도 연장할 계획이다. 원전 비중을 높이면 폐기물은 더욱 빨리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 해법이 없는 친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과 같다.
정부는 지난 9월 원전을 포함하는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택소노미) 초안을 내놓았다. 유럽연합은 이에 앞서 에너지 위기를 반영해서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했다. 대신 높은 수준의 안전 기준 적용을 의무화했다.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사용,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 확보와 시설 가동 개시를 위한 세부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정부 초안은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시점을 유럽연합보다 6년 뒤인 2031년으로 늦춰 잡았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부지 확보 및 건설 시점은 아예 제시하지 못했다.
정부는 고리 원전도 발전소 내 임시 저장시설(맥스터) 설치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에 바탕한 근본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미루고 임시저장시설 확충에만 급급한다면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영구처분장 건설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는 지자체와 손잡고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지를 대상으로 9차례나 방폐장 부지 확보를 시도했으나 주민 설득에 실패했다. 이후 참여정부는 사용후핵연료와 중·저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분리 추진 등 관리정책의 큰 틀을 마련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공론화를 거쳐 고준위 방폐물 중장기 관리계획 등의 정책을 수립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과 재검토위원회를 운영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관 주도 하향식 관리에서 벗어나 시민참여에 기초한 상향식 관리 방식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정부, 시민사회, 지역사회는 대립과 갈등 속에 합의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친원전과 반원전, 찬핵과 탈핵의 대립구도만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지역주민 등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적 합의가 기본 전제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대표성과 절차의 공정성, 투명성, 숙의성 확보 등이 핵심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자기 주장만 옳다고 할 게 아니라 전체 사회의 이익과 미래 발전을 고려해서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반(탈)원전, 친원전 진영 모두 집단적 이해를 우선하며 의도적으로 지연 또는 외면 전략을 구사한다는 지적도 있다. 반원전 진영은 방폐장 합의가 원전의 지속과 확대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친원전 진영은 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공론화의 덫’을 경계한다.
정부도 자신의 임기 중에는 정책 결정의 위험을 회피하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다는 지적을 듣는다. 정치권은 유권자 표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해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바라지 않는다면 공론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우리가 해법 마련 진정 원하는지
공론장 참여자·지역 범위 논하고
관련 조직·법규 개편 필요성 살펴
사용후핵연료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토론회가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의 제4세션 행사로 열린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에너지 정의 포럼’이 주관하는 토론회에서는 세가지 핵심 의제가 다뤄질 예정이다. 첫번째는 우리사회가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해법 마련을 원하는지 묻는 것이다.
두번째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과정과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의 재검토위원회에서는 주민 의견수렴 절차만을 관리하는 중립적 위원으로 구성한다는 명분으로 지역주민 및 탈핵 시민단체의 직접 참여를 배제해, ‘반쪽짜리 공론화’로 전락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전국 및 지역단위 공론화에 지역주민 및 탈핵 시민단체 활동가의 참여 여부, 지역주민의 참여 보장 범위를 원전 반경 5km 이내 기초 지자체로 제한할지 아니면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범위인 반경 30km 이내로 확대할지도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선결조건 마련이다. 관주도 공론화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공정하게 과정을 관리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전담할 독립적 행정위원회(가칭 고준위방사성폐기물위원회)를 총리실 아래 신설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사용후핵연료 용어에 대한 정의 규정조차 없을 정도로 허술한 관련 법규의 정비도 시급하다.
우리사회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 양극단으로 갈라져 접점 찾기가 갈수록 어려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당장 원전을 없앨 수 있는 ‘마술’이 존재하지 않는 한 친원전과 탈원전의 입장차이와 상관없이 해법을 마련해야 할 사안이다. 여야 의원들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등을 담은 3개의 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윤석열 정부도 특별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토론회가 사회적 합의로 가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의미가 클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실장이 ‘사용후핵연료 해법-쟁점과 대안’으로 주제발표를 한다. 토론에는 김학린 단국대 교수의 사회로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 송종순 조선대 교수, 정정화 강원대 교수(전 재검토위원장), 이강원 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이상홍 전 경주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이재학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추진 단장, 박태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장이 참여한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