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당진항 국제자동차부두에 늘어선 수출 차량들. 대중국 무역 4개월 연속 적자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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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데다 좀처럼 회복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1~9월 누적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89억달러로, 1996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206억달러)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33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 반도체 가격 약세, 높은 원-달러 환율 등으로 2022년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4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중 무역에서 한-일 무역을 보다
무역수지가 적자면 당장 국내로 유입되는 외화(달러)보다 국외로 지급되는 달러가 많다는 얘기다.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면 국외로 빠져나가는 달러가 많으니 국내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외국인은 투자를 꺼린다. 무역적자가 6개월 연속 지속한 것은 1997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1997년 수출로 먹고살던 우리나라가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하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등했다. 우리나라는 급기야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특히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5.3%, 수입의 22.2%를 차지하는 대중국 무역은 2022년 5~8월 적자를 기록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4개월 연속 적자다. 2022년 1~8월 누계 기준으로는 32억달러 흑자를 기록했으나 전년 같은 기간(158억달러)보다는 79.8% 줄어든 것이다.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일시적 현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제품의 기술력이 향상되고 반한(反韓) 감정이 가미되면서 한국 제품의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보따리상의 국내 화장품 구매 행렬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국인 사이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는 샤오미 등으로 대체됐다. 판매 호조를 보이던 현대자동차도 분위기가 크게 위축됐다.
돌이켜보면 1980~1990년대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 제품은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텔레비전이나 소형 카세트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의 소니나 파나소닉은 삼성과 LG그룹 제품으로 서서히 대체됐다. 자동차를 비롯해 전기밥솥,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도 성능이나 가격 면에서 국산품의 경쟁력이 높아져 일본 제품이 점차 국내 시장에서 밀려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수출입 관계가 과거 한-일 관계처럼 변화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큰 폭의 무역적자가 예상됨에도 정부는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기업들의 가공·중개무역 등 국외 생산이 꾸준히 늘고, 국외 투자 관련 이자·배당도 흑자를 보이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라도 경상수지는 흑자일 수 있다는 평가다. 국외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려면 무역수지보다 경상수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재화와 서비스는 물론, 돈이 얼마나 오가는지를 종합한 것이 국제수지(Balance of Payments)다. 국제수지는 경상계정(Current Account)과 자본계정(Capital Account)으로 구성된다. 경상수지는 상품을 주고받은 거래인 상품수지, 여행·건설·정보통신 등 무형의 서비스 거래인 서비스수지, 국외 주식투자에 대한 배당이나 임금 등의 본원소득수지, 무상원조 등 대가 없이 지급되는 이전소득수지로 나뉜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출입을 중심으로 성장하다보니 경상수지 내에서 상품수지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무역수지는 상품수지와 유사하다. 몇 가지 차이점은 있다. 우선 무역수지는 관세청이, 상품수지는 한국은행이 집계한다. 둘째, 무역수지는 관세 부과를 목적으로 공항이나 항구에서 측정한다. 한국 기업이 국외 공장을 통해 제3국에 직접 수출하는 ‘무통관 수출’은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통관 수출도 결국 국내 기업이 벌어들인 것으로 평가하므로 상품수지에는 포함한다.
셋째, 무역수지는 통관 시점을 기준으로 하지만 상품수지는 소유권 이전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제조 공정이 2~3년 소요되는 선박의 경우 무역수지는 선박을 인도하는 날을 기준으로 집계한다. 상품수지는 공정률에 따라 선주에게서 대금을 받으면 매번 그만큼 수출에 반영한다. 넷째, 무역수지는 속보성으로 발표해 수출입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상품수지는 무통관 수출 계상, 소유권 이전 시점 확정 등으로 발표 시기가 다소 늦어지지만 정확도가 높다.
교역조건 악화, 자본유출 우려
무역수지와 상품수지의 몇몇 차이점이 있지만 석유·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 상승, 경제블록화 등으로 수출(2022년 1~9월 평균 12.6%)보다 수입(25.3%)이 많이 증가하는 등 우리나라의 수출입 여건이 나빠지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8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82.49(2010년=100)로, 1988년 통계 집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단위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지수화한 것이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수출품이 수입품보다 제 가격을 평가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화학제품 등의 가격 하락이 교역조건 악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교역조건이 악화하면 국민 실질소득 감소, 상품수지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상품수지 적자가 지속할 경우 외화가 유출되면서 원화 가치가 절하되고,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도도 낮아진다. 상황이 더욱 나빠지면 대량 자본유출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달러당 1400원대를 넘어선 환율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그동안 수출에 긍정적이었던 고환율은 부정적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수출입 여건 악화의 큰 파고를 잘 넘겨야 할 시점이다.
김용 금융전문가 goldhead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