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소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21일 연 13조1천억원 규모의 감세를 추진하기로 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해 삼성·에스케이(SK)·현대차 등 대기업 세금을 4조1천억원 깎아주고, 다주택자 중과세율 폐지 등으로 고가 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 1조7천억원을 감면하기로 했다. 과세표준 조정 등을 통한 연 소득 7600만원 초과 고소득자 감세(1조2천억원)를 포함하면 모두 7조원이 대기업·자산가·고소득자 혜택으로 돌아간다. 정작 고물가로 신음하는 취약계층 지원액은 1조1천여억원에 불과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없었던 중견기업인의 상속·증여세 수백억원 감세 방안이 포함돼 불평등 심화와 함께 부의 대물림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붙게 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기업 과세 체계를 합리적으로 재편하고 서민, 중산층의 세 부담을 경감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3천억원 초과 기업에 적용하는 법인세 최고세율 25%는 5년 만에 다시 22%로 내려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과표 2억~5억원인 중소·중견기업의 법인세율도 20%에서 10%로 인하했다. ‘재벌 감세’ 비판을 의식한 ‘물타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율을 매기는 종부세 중과세율(1.2~6%)은 폐지하고, 다주택자 종부세 과세 기준인 기본 공제액도 기존 6억원에서 9억원(1가구 1주택자는 11억→12억원)으로 높인다. 소득세 하위 과세 구간을 과세표준 1200만원에서 1400만원, 4600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각각 높여 연봉 7800만원인 직장인의 경우 내년부터 소득세를 최대 54만원 감면해주기로 했다.
기업 지배주주 일가는 이번 세제 개편안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부모가 10년 이상 경영한 회사 지분을 자녀에게 상속·증여할 때 일정 기간 고용 의무 등을 지키면 제공하는 특례 공제·증여 한도를 최대 500억원(상속세), 100억원(증여세)에서 각각 1천억원으로 대폭 올리고, 특례 대상을 연 매출 4천억원에서 1조원 미만 중견기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또 자산 10조원 미만 그룹의 최대주주 지분 상속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하는 할증평가를 폐지해 상속세율(60%)을 50%로 낮추기로 했다. 세금 부담을 덜어줘 원활한 기업 승계를 지원한다는 취지지만, ‘금수저 고착화’ 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번 세제 개편안으로 저소득·취약계층에게 돌아가는 지원 규모는 근로·자녀 장려금 재산 요건을 2억원에서 2억4천만원으로 인상하고 최대 지급액을 10% 인상함에 따라 발생하는 1조1300억원뿐이다. 또한 쪼그라든 세수 탓에 저소득층을 지원할 정부 예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첫 세제 개편으로 향후 5년간 줄어드는 정부 세수는 60조원에 이른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과거 비슷한 감세 정책을 폈던 이명박 정부 5년의 누적 세수 감소액(약 63조원)에 못 미친다. 그러나 감세 규모는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내년에 대대적인 상속·증여세 감면에 착수할 계획이어서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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