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가 지난 20일 한국거래소 인근에서 동원산업 합병 관련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한투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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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 두 계열사 간 합병에 대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거세다. 합병의 한 당사자는 대주주 일가가 거의 100% 지배하는 지주회사다. 다른 당사자는 이 지주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다. 그런데 이 자회사는 합병 과정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합병 조건을 결정했다. 물론 대주주 일가에는 유리하다.
자회사 주주들의 반발에도 묵묵부답이던 동원그룹 쪽은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규정에 하자가 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합병가액 산정은 공정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대주주→지주회사→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출자구조 속에서 자회사 이사회는 회사와 주주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하였을까?
대주주 챙기기 위한 ‘이중 잣대’?
ㄱ, ㄴ 두 회사가 합병하기로 했다고 하자. 흡수되는 ㄴ사는 자산과 부채를 ㄱ사로 넘기고 소멸한다. ㄱ사는 신주를 발행하여 ㄴ사의 주주들에게 소멸대가(합병대가)를 지급한다. ㄱ사와 ㄴ사의 합병가액이 각각 1만원으로 산출되었다면 ㄴ사 1주당 ㄱ사 1주를 발행하여 보상한다. 합병가액이 2만원이라면 ㄴ사 2주당 ㄱ사 1주를 발행해 주면 된다. 신주 발행 물량이 절반으로 줄고 ㄱ사의 주당 가치 희석 효과도 그만큼 감소한다.
만약 ㄱ사가 1만원과 2만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해보자. 이사회는 ㄱ사와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면 된다. 당연히 2만원이다. 1만원을 골라 ㄴ사 주주들에게 더 많은 신주를 발행해 줘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ㄱ사 이사회는 1만원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동원엔터) 간 합병이 이런 모양새다. 주목할 부분이 있다. 동원그룹 지주회사 동원엔터에 대한 대주주 지분율이 거의 100%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동원엔터는 동원산업을 지배(지분율 63%)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병은 동원산업이 동원엔터를 흡수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동원산업이 합병 과정에서 발행하는 신주는 모두 대주주 일가에 배정된다는 이야기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장사(동원산업)와 비상장사(동원엔터)가 합병을 할 때 상장사 합병가액은 최근 한달간 주가 흐름을 기준으로 산출한다. 비상장사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구하여 가중평균한다. 동원산업이 24만8961원, 동원엔터는 19만1300원으로 정해졌다.
시행령은 상장사의 경우 주가 기준 합병가액(기준시가)이 자산가치보다 낮으면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동원산업의 자산가치는 38만2140원이다. 기준시가보다 54% 높은 값이다. 그러나 이사회는 자산가치보다 더 낮은 기준시가를 합병가액으로 결정했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판단했는지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불공정 합병 논란이 거세지는 와중에 일부 매체에 보도된 동원산업 관계자의 발언은 이랬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기준주가 대신 자산가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근거만 두고 있을 뿐 자산가치 적용이 요구되는 사유, 방법, 절차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에서 비상장사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 기업의 펀더멘털을 반영한 이른바 본질가치를 합병가액으로 한다. 반면 상장사에 적용되는 주가는 외부 경제여건, 국내외 시장 상황, 특정한 정치·경제·사회적 이벤트 등의 영향을 받아 본질가치보다 저평가될 수 있다. 상장사 주주 보호를 위해 비상장사와 합병할 때는 주가 외 자산가치를 보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 시행령의 취지일 것이다. 여기에 무슨 사유가 더 필요하며, 무슨 방법과 절차를 더 규정해야 한다는 것일까?
동원그룹은 이후 동원산업 합병가액을 기준시가로 정한 이유에 대해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동원산업 3개년과 1개년 평균주가가 각각 22만9756원, 24만2688만원이므로 이번 합병가액(기준시가) 24만8961원이 부당하게 저평가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주들은 “동원산업 주가가 저점인 상황에서 1분기 참치 어획량과 가격 호조, 환율 효과 등으로 재평가가 기대되는 시점에 합병 공시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올해 들어 주가가 계속 하락했던 기간이 기준시가를 산출한 한달 기간 안에 상당 부분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동원그룹이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합병을 치밀하게 준비해왔을 것으로 본다. 동원엔터는 별도재무제표에서 종속기업(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인 동원시스템즈, 동원산업, 동원에프앤비(F&B) 지분 장부가액을 공정가치(시가)로 평가한다.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원가법(취득가격)으로 평가한다. 동원엔터는 애초 원가법으로 평가하다 2016년부터 시가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2015년까지만 해도 2877억원이던 동원시스템즈 지분 장부가액은 2016년 말 1조2294억원으로, 동원산업은 2430억원에서 7241억원으로, 동원에프앤비는 1811억원에서 544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종속기업 지분평가방식 전환은 이번 합병에서 동원엔터의 자산가치·수익가치 평가 모두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만원대 합병가액을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다.
왜 동원만 다른 셈법일까
필자가 뽑아본 50개 지주사 또는 일반기업은 종속기업 주식을 모두 원가법으로 평가한다. 이게 현실이다. 공정가액으로 평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동원엔터가 굳이 평가방식을 전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동원엔터를 언제든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하기 위한 사전작업 차원으로 본다. 동원그룹 쪽은 이렇게 말한다.
“동원엔터 가치 대부분을 종속기업 주식들의 시가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동원산업 평가 역시 기준시가를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동원엔터가 다른 기업과 달리 종속기업 주식을 시가평가함으로써 가치평가에서 얻은 증액 효과는 약 1조6000억원에 이른다. 반면 동원산업 주주들은 회사가 기준시가를 선택함으로써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원그룹 쪽은 “합병가액을 시가보다 높은 자산가치로 산정하면, 시가 기준으로 산정하는 주식매수청구권(합병 반대 주주들이 행사할 권리)과 차별화되는 모순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상장사는 주가 외 자산가치·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병가액을 정하게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동원그룹 쪽 논리대로라면 현 자본시장법 시행령도 모순이고, 이 의원의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모순이다. 과연 그럴까?
fntom@naver.com
김수헌 |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