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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좋은 여건 없는 상황, 누가 돼도 경제 걱정…신종 복합위기 ‘경고등’

등록 2022-03-07 04:59수정 2022-03-07 14:35

원자재가격 급등, 지정학적 갈등 등 위기요인 등장
정부 매뉴얼·대응 경험 없는 신종 위험
정권초 위기 수습 매달릴 가능성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후보 공약도 공약이지만, 요즘 경제 환경이 훨씬 걱정이에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진영에 합류한 한 경제학계 인사가 근심거리를 털어놨다. “공급망 문제, 글로벌 정치 갈등에다가 물가도 뛰고 세계적으로 가뭄까지 심각하다고 하니 새 정부 출범 뒤에 이런 대외 변수들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그는 말끝을 흐렸다.

경제의 여러 위기 요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위기 수습에 시간을 뺏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현 정부에서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맡았던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복합 위기’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러시아 은행의 스위프트(국제 금융 결제망) 퇴출만 해도 우리가 과거에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라며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물가, 지정학적 갈등, 거시 경제, 금융 시장 등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복합 위기란 한 나라 경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현상을 뜻한다.

정권 초기에 경제 위기를 맞은 사례가 드물진 않았다. 김대중 정부(1998년)는 외환위기 사태 속에 들어섰고, 이명박 정부(2008년)는 출범 첫해 금융위기를 맞았다. 노무현 정부(2003년)도 집권 초반 신용카드 사태 수습에 매달려야 했다. 대통령의 임기 첫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관례화된 이유다.

최근의 위기 양상은 크게 2가지가 과거와 달라졌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기재부 핵심 간부는 “기존 금융·재정 위기는 국제기구의 경험을 참고할 수 있고 대응 매뉴얼도 있지만, 일본 수출 규제와 이후의 코로나 감염병, 우크라이나 사태 등은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매뉴얼 자체가 없는 신종 리스크(위험)”라며 “한국과 주요국 경제가 이미 노숙화한 터라 대응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저 질환 있는 고령층이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처럼 경제 체질이 약해져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4일 현 정부에서 최초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는 현실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석유·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이 뛰며 국내 물가 오름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풀린 돈을 죄면서 경제 회복을 꾀해야 하는 정부의 스텝이 꼬인 셈이다. 급등한 에너지 가격과 불확실성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감소, 경기 둔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산 브렌트유 선물(5월물) 가격은 이달 4일 배럴당 118.11달러로 연초보다 50% 올랐다. 세계 원유 교역량의 약 12%를 차지하는 러시아발 공급 충격과 공급망 차질에 더해 재고 확보·투기 수요 등이 한꺼번에 몰린 영향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 등의 러시아 제재 수위에 따라 올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 씨티그룹은 국제 에너지 가격이 10% 오르면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17%포인트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행의 올해 국내 성장률 전망치는 3%다.

“올해는 당분간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거 같아요.” 지난해 7천억원대 영업흑자를 낸 국내 대형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국내 제조업체의 매출액에서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는다. 원자재와 소재·부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 사정상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금융통화위원)는 <한겨레>에 “우리 기업의 수출 가격보다 수입 가격이 훨씬 많이 오르는 등 교역 조건이 나빠져 이익이 감소하면 기업과 소비자, 정부 중 누군가는 그 부담을 져야 하며 그 규모도 절대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만약 기업이 급등한 수입 원자재 가격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이는 임금 인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임금 상승-물가 상승-임금 상승으로 계속 이어지는 소용돌이형 악순환이다. 1970∼1980년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급등)이 이 같은 사례다.

국내 경기의 미래의 방향성을 예고하는 통계청의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7월부터 7개월 연속 하락했다. 기업 쪽의 우려가 과장이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현재의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보다 슬로(Slow)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 진입을 경계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분석이 많다. 본격적인 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보다는 높은 물가 속에 경기 둔화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최근 고조된 지정학적 긴장과 갈등이 새로운 돌발 변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자원을 무기로 삼은 러시아와 러시아에 가까운 중국, 그리고 금융·환경 규제 주도권을 쥔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 간 패권 다툼 여파로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선 후보들이 코로나 손실 보상, 복지·인프라 확대 등 각종 공약을 마련해 수백조원대 정부 지출(이재명 후보 300조원 이상, 윤석열 후보 266조원)을 약속했지만, 새 정부의 국정 어젠다와 공약 이행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기 중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는 정부의 추가 재정 지출로 물가가 들썩일 수 있는데다, 새로운 위기 대응을 위한 재원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각) 가진 취임 이후 첫 국정 연설(연두교서)에서 올해 말까지 재정 적자를 취임 이전의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중국의 경우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31년 만에 가장 낮은 5%대로 낮추면서 국방 예산 증가율을 7.1%로 끌어올리는 등 주요국이 군비 확대 경쟁에 나설 조짐을 보이는 것도 심상치 않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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