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긍정적 성과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소득 양극화를 줄이고, 분배를 개선한 점입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분배지표를 개선시킨 놀라운 성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올해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내년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마련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나타난 분배 지표 개선을 두고 한 말이다. 코로나19로 경제가 크게 어려워진 상황에서 소득 분배 개선은 한국만의 이례적인 현상이었을까.
사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소득 불평등이 줄었다는 연구결과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보고되고 있다. 팬데믹이 여성이거나 늙었거나 교육수준이 낮은 저임금 노동자에 직격탄이 되어 소득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란 애초 ‘전망’을 무색케한 결과다.
비영리 국제연구단체 ‘경제적불평등연구회’(ECINEQ)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코로나19 동안 유럽 5개국의 소득 불평등 감소’ 보고서가 그런 예에 속한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스웨덴의 소득 변화와 불평등 정도를 2020년 1월·5월·9월 세 차례 분석했다. 그 결과, 일단 소득 수준은 U자 모양을 그렸다.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한 지난해 1월부터 그해 5월까지는 가구당 평균 처분가능소득이 3.3% 감소했으나 9월에는 1월 수준을 회복하는 흐름이 뚜렷했다.
소득 불평등도 개선됐다. 지난해 9월 측정한 소득 격차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1월 시점보다 개선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5개국 평균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는 뜻)는 지난해 1월 0.322였는데 같은 해 9월에는 0.314로 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 개별 국가 기준으로 따져본 지니계수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출현은 초기(2020년 1∼5월)에는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켰지만, 그다음(2020년 5∼9월)에는 불평등이 외려 축소됐다”며 “이는 각 국가의 정책 지원이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은 소득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국가에 한정해 나온 분석인 터라, 모든 나라에서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소득 지원 등 정책적 개입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시뮬레이션 결과도 그런 예에 속한다. 지난해 8월 유럽연합은 유럽 27개국의 코로나19 정책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는데, 아무 정책 대응도 하지 않을 경우 2020년 지니계수가 0.036포인트 상승하는 반면, 정책 대응이 있을 경우에는 0.007포인트 감소한다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국가 간 불평등이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은 올 초에 발표한 보고서
‘코로나19와 글로벌 소득 불평등’에서 “세계적인 불평등이 팬데믹 이전에도 하향 추세를 지속해왔고, 이후에는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소득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광범위한 믿음은 합리적(reasonable)이었으나 틀렸다(false)”고 강조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를 토대로 국가 간 소득 변화를 따져본 이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97개국은 소득이 5% 감소했으나 상위 96개국은 10%나 감소했다. 부유한 국가에서 사망자가 크게 늘어났고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생산 감소가 더 컸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세계 불평등을 줄였다는 주장의 근거도 제시됐다. 팬데믹을 예측하지 못했던 2019년에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2020년 국내총생산 전망치 기준으로, 2020년 전 세계 지니계수(인구 비가중)는 전년 대비 0.003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 나타난 개선폭이 더 컸다는 것이다. 실제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의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전 세계 지니계수를 따져보면 전년 대비 0.004포인트 하락했다. 디턴은 “그 차이만큼이 팬데믹의 효과”라고 짚었다.
다만 국가별 인구 규모가 크게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인구수에 가중치를 부여한 뒤 따져본 세계 불평등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인도(약 13억8천만명)가 지난해 40년 만에 가장 나쁜 경제성장률(-7.3%)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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