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처음으로 데이터 남용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미국 아마존이 입점업체 정보를 자체 상품 개발에 이용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 만이다. 그동안 쿠팡이 공개적으로 아마존을 벤치마킹해온 만큼 쿠팡에 대한 의심의 눈길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 쿠팡은 의혹에 선을 그으면서도 여지를 남겨둬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쿠팡은) 개별 판매자 정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마존의 데이터 논란을 사례로 들어 “아마존은 쿠팡의 사업 모델이 아니냐”고 물었다.
관건은 쿠팡의 자체 브랜드(PB) 사업 쪽에 입점업체 데이터가 공유됐는지 여부다. 쿠팡은 지난해 해당 사업을 자회사 ‘시피엘비’(CPLB)로 분할시키면서 대표이사 자리에 아마존에서 자체 브랜드 사업을 담당하던 부사장급 임원을 앉혔다. 오 의원은 “분사 전에 이 사업부는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자체 브랜드 상품을 개발했느냐”며 “분사 후에는 현재 사실상 경쟁업체라 볼 수 있는 입점업체의 정보 데이터가 조금이라도 공유됐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강 대표이사는 “제가 아는 바로는 시피엘비가 쿠팡의 개별 판매자 정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제가 아는 바로는’이라는 단서를 달아 여지는 남겨둔 셈이다.
이 때문에 논란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3일 <로이터>는 아마존이 인도에서 입점업체 상품과 관련된 미공개 정보를 남용했다고 보도했다. 수천쪽 분량의 아마존 내부 문건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아마존이 자체 브랜드 ‘솔리모’(Solimo)를 개발할 때 입점업체 상품의 트래픽 데이터를 분석해 활용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아마존 자체 상품이 먼저 노출되도록 검색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지난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도 “아마존 소매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입점업체 미공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며
제재 절차에 착수한 바 있다.
이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가 의회에서 증언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지난해 베이조스는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우리는 자체 브랜드 사업에 입점업체의 개별 데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방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가 입수한 문건은 아마존 임원 중 최소 2명이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지난 18일 미국 하원은 아마존 쪽에
서한을 보내고 사실관계를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제프 베이조스가 위증을 한 게 아니냐는 취지다.
쿠팡도 입점업체에 대한 광범위한 데이터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상품별 판매량이나 판매가격 등을 넘어선 양질의 데이터도 확보가 가능하다. 쿠팡이 입점업체들의 사용을 적극 권유해온 자동 가격 조정 시스템은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이는 입점업체가 직접 최저가와 최고가를 설정해놓으면, 쿠팡이 설정한 알고리즘이 그 범위 내에서 가격을 실시간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입점업체의 원가와 마진을 쿠팡이 추산해 이에 대한 통계를 축적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근본적으로는 ‘심판 겸 선수’로서의 이해상충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픈마켓 사업부와 자체 브랜드 사업부 간 정보 공유를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앞서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플랫폼 기업이 이해관계 충돌의 소지가 있는 사업을 동시에 운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