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고기 등 식물성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물성 우유의 인기도 함께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귀리유가 두유와 아몬드유를 제치고 대체 우유로 주목받는다. 일부 업체는 우유 맛이 나는 ‘가짜 우유’ 개발에 나섰다.
■ 두유가 우유는 아니니까…‘가짜 우유’ 개발 착수
임파서블 푸드 R&D팀. 임파서블 푸드 누리집 갈무리
미국의 푸드테크(식품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한 것) 기업 ‘임파서블 푸드’는 지난 20일(현지시각) 소젖을 쓰지 않은 우유를 개발 중이라며 시제품을 발표했다. 이 회사가 만들고 있는 우유는 콩 단백질 등으로 만든 식물성 제품이다. 회사는 우유의 맛과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2년 전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 경제방송 <시엔비시>(CNBC)는 같은 날 “임파서블 푸드가 100명의 연구진을 고용해 대체 우유 개발을 가속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우유 대체품으로는 두유 같은 곡물 기반의 식품들이 줄곧 쓰였다. 그러나 이들 제품은 우유 본연의 맛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차가운 식물성 우유는 뜨거운 커피와 잘 섞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앞서 임파서블 푸드는 진짜 고기의 맛과 식감을 구현한 식물성 ‘가짜 고기’를 출시했고, 식물성 고기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며 기업 가치를 40억달러(약 4조5천억원)로 끌어올린 바 있다. 팻 브라운 임파서블 푸드 최고경영자(CEO)는 “시중에 판매되는 식물성 제품들은 (우유를 대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진짜 우유 같은 가짜 우유’를 내놓을 뜻을 내비쳤다.
■ 밀레니얼이 대체유 찾는 이유…‘젖소 트림은 곧 온실가스’
진짜 우유의 대체품을 찾는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2018년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닐슨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그해 7월 넷째주 기준으로 두유 등 우유 대체품의 미국 시장 주간 매출(3500만달러, 395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다. 반면 진짜 우유를 찾는 소비자는 점차 줄면서, 진짜 우유 매출(2억2700만달러, 약 2562억원)은 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유에 비하면 아직 대체유의 시장 규모는 미미하지만, 성장성은 우유보다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는 동물복지 및 환경에 대해 높아진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5~2015년 10년간 젖소가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18% 증가했다고 밝혔다. 젖소 같은 반추(되새김질)동물은 먹이를 소화할 때 발생하는 대부분의 메탄가스를 트림으로 배출한다. 이 메탄가스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5배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도 진짜 우유 한 잔을 생산하는 게 대체유 생산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3배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 같은 특성 탓에 환경보호에 관심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중심으로 대체유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민텔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2~5월 영국인의 23%가 식물성 우유를 소비한 경험이 있으며 이는 여성(26%)과 16~24살(33%) 그룹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반면 16~24살 그룹의 우유 소비 비율은 2018년 79%에서 2019년 73%로 감소했다. 민텔은 “16~24살 그룹의 36%는 낙농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동의한다”며 “젊은 소비자가 우유를 외면하고 있다는 건 장기적으로 우유 시장에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 대체유 성장에 유업계 ‘견제구’ 던질까
변화의 움직임이 커지면서 진짜 우유와 가짜 우유 업계의 희비는 엇갈린다. 지난 7월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블랙스톤은 스웨덴의 귀리유 브랜드 ‘오틀리’의 지분 10%를 2억달러(2257억원)에 인수했다. 이 소식을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보면, 올해 3~6월 미국 시장에서의 귀리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0%나 급증했다. 오틀리의 지난해 매출도 2억달러로 전년 대비 두배가량 늘었다. 귀리유가 두유 등 다른 대용품보다 커피와 더 잘 어울리는 데다, 아몬드유보다 생산 과정에서 물 소비량이 덜하다는 점이 오틀리 매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유 시장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3200곳 이상의 젖소 농장이 문을 닫았다. 유가공업체도 파산에 내몰렸다. 지난해 11월 94년 역사를 가진 미국 최대 유가공업체 ‘딘 푸드’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올해 1월엔 또 다른 대형 유가공업체 ‘보든 대어리’마저도 파산절차를 밟았다. 흰 우유 소비가 줄면서 농가와 유가공업체의 매출이 대폭 줄어든 탓이다. <에이피(AP)>는 1975년 640만갤런(2423만ℓ) 이었던 우유 판매량이 2018년 570만갤런(2158ℓ)으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대체유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기존 낙농업계와 대체유 업계 간 신경전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2일 “낙농업계가 ‘두유·귀리유 등이 실제 우유를 연상케 하는 모호한 포장과 명칭으로 소비자를 혼동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며 “이들은 식물성 우유에 ‘가짜’, ‘인공’ 같은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식물성 대체육이 진짜 고기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지난 21일 유럽의회에서는 축산업계 요구를 반영해 ‘식물로 만든 대체육에는 버거, 스테이크 같은 육류 음식 명칭을 쓸 수 없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상정됐다가 부결된 일도 있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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