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의 2019년 통계는 3분기까지만 반영된 수치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짜파게티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짜파게티의 36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18일, 농심은 이런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최근 영화 <기생충> 영향으로 짜파게티가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는 얘기였다. <기생충>의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 수상이 있었던 지난 2월 짜파게티의 국외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두배가량 늘어난 150만달러에 이르렀다. 국내에서의 인기도 꾸준한 편이어서, 지난해 소매점 매출 기준으로 짜파게티는 전체 라면 중 매출 3위를 차지했다. 여러 짜장라면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백전노장’ 짜파게티의 아성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농심 관계자는 “짜파게티는 짜파게티만의 고유의 맛이 있다. ‘짜파게티 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들께서 꾸준히 구매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옷감인 줄 알았던 라면…이제는 한국인 ‘영혼의 수프’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라면은 57년 된 삼양식품의 ‘삼양라면’이다. 1963년부터 생산된 국내 첫 인스턴트 라면이다.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당시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라면 생산 기계를 들여와 만들었다. 면을 기름으로 튀긴 꼬불꼬불한 모양의 유탕면과 닭고기 육수 맛이 특징이었다고 한다. 가격은 10원으로 시장에서 팔던 꿀꿀이죽(5원)보다는 두 배 비싸고 커피(35원)보다는 쌌다. 소비자물가지수를 토대로 오늘날 화폐 가치로 추산하면 대략 400원이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생산 초기에는 생소한 모양과 조리법, ‘라면’이라는 이름 탓에 옷감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시장 반응도 좋지 않았다. 이후 쌀을 아끼라는 절미운동과 밀가루·잡곡 소비를 늘리자는 정부의 혼·분식장려정책 등에 힘입어,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1966년 240만개에서 3년만인 1969년에는 1500만개로 뛰어올랐다. 소고기 국물맛 라면, 굵은 면을 쓴 라면 같이 소비자 취향에 따라 개량된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라면은 한국인의 입맛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세계라면협회(WINA) 집계를 보면, 2018년 기준 한국인의 연평균 라면 소비량은 74.6개로 2위 베트남(53.9개), 3위 네팔(53.0개)을 제치고 압도적 세계 1위다. 국민 한 사람은 1주일에 라면 1.4개를 끓여 먹는다.
인기라면은 대부분 30살 이상
현재 국내 라면 시장의 70% 이상은 라면 ‘빅4’의 제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할인점·편의점 같은 소매점 매출을 기준으로 지난해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1조5714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72%가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 4사 라면이 차지한다. 라면 매출 상위 10개도 모두 4사의 제품이다. 농심 신라면·오뚜기 진라면·농심 짜파게티가 지난해 1~2천억원대 매출을 올렸고, 농심 육개장·너구리·안성탕면과 삼양 불닭볶음면·팔도 비빔면이 600억원대 매출로 뒤를 이었다. 삼양의 삼양라면과 팔도 왕뚜껑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라면 대부분이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불닭볶음면(2012년 출시)만이 2000년대 이후 출시된 유일한 라면이다. 나머지는 길게는 1963년(삼양라면), 짧게는 1990년(왕뚜껑) 출시됐다. 10개 제품 중 7개는 모두 80년대 출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80년대 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한국야쿠르트, 청보, 빙그레, 오뚜기(청보 인수·합병)가 시장에 진입하며 기존 사업자인 농심, 삼양과 경쟁이 치열해졌다. 라면의 다양성·고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면서 짜파게티, 비빔면 같은 라면이 이때 생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기존 제품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데 대해 “소비자 입맛이 크게 바뀌지 않는 데다, 기존 제품들에 대해서도 소비자의 의견을 고려해 꾸준히 리뉴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라면 업계 ‘빅4’가 매년 신제품을 10개 이상 내놓고 있지만 스테디셀러의 벽을 넘는 제품은 거의 없다. 팔도 관계자는 “80년대 비빔면 출시 이후 매년 맛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매년 수많은 경쟁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기본에 충실하고 익숙한 제품으로 돌아오는 듯하다”고 해석했다. 매출 10위권 안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삼양라면과 역사가 짧은 불닭볶음면을 모두 보유한 삼양식품 쪽도 “1년에 신제품을 10개 이상 내놓지만,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잘 변하지 않아서 구매하던 걸 구매하는 성향이 있다”며 “불닭볶음면은 전무후무한 경우인데, 유튜브를 중심으로 소개된 이후 소비자들이 제품을 먹어보게 됐고, 점차 ‘불닭 맛’에 입맛이 익숙해지면서 반복구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줄어드는 라면 시장이지만…“1천원짜리 식사는 라면뿐”
라면 업계도 줄어드는 시장규모에 가슴앓이하고 있다. 최근 2015~18년 동안 라면 시장 규모는 2조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조원 미만일 것으로 추산된다. 가정간편식(HMR)이 늘고, 배달이 편리해져서다. 농심 관계자는 “라면은 가정 내에서 먹는 ‘내식’에 해당하는데, 가정간편식, 배달 음식 등으로 ‘외식’이 내식 영역에 들어오면서 라면의 대체가 이뤄지고 있다”며 “라면 핵심 소비층인 10~30대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시장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라면 시장의 축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외국에서 한국 라면의 인기가 높아지는 데다 가정간편식과 배달 음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라면만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말한다. 오뚜기 관계자는 “라면 시장이 축소되고 있지만 최근의 코로나 여파 등과 편의점을 중심으로 용기면 시장이 커지고 있다. 국외 매출도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