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달 초 ‘갤럭시S9’ 자급제폰을 내놓으면서 자급제폰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프리미엄폰으로는 처음 출시된 S9 자급제폰은 S9 전체 판매량의 10% 안팎을 차지하는 등 순항 중이다. 통신사 눈치를 살피던 엘지(LG)전자도 5월 새 프리미엄폰을 출시하면서 자급제폰 모델을 함께 내놓기로 했다. 1990년대 휴대전화 시장 태동기부터 이어져온 ‘제조사→통신사→소비자’로 이어지는 판매 고리에 ‘제조사→소비자’라는 추가 고리가 자리를 잡을지 주목된다.
■ 자유롭고 가볍다?
자급제폰의 장점은 자유롭고, 가볍고, 싸다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노예계약’으로 불리기도 하는 통신사의 ‘24개월 약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삭제 안 되는 통신사 등의 사전설치 앱도 적다. 덤으로 알뜰통신사에 가입하면 비슷한 상품을 더 싸게 이용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혜택을 얻으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등 단점도 있다. 그러나 생소해서 그렇지, 조금만 익숙해지면 번거로움은 금방 사라진다.
회사원 김아무개(39)씨는 “통신사 약정의 노예가 되기 싫어 자급제폰을 구입해 알뜰폰 통신사의 유심요금제를 쓴다”고 말했다. 통신사에서 스마트폰을 사고 통신요금까지 가입하면 여러 할인 혜택이 있지만 혜택을 받으려면 24개월 약정을 맺어야 한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통신요금 25% 할인도, 제휴 신용카드를 통한 스마트폰 할부금 월 1만원대 할인도 마찬가지다. 같은 통신사를 쓰는 가족 사용자가 있거나 같은 통신사 인터넷을 사용해 ‘결합할인’을 받으면 온 집안이 한 통신사에 얽매일 수도 있다.
자급제폰을 사면 이런 ‘약정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급제폰은 가전제품 매장에서 냉장고, 세탁기 등을 사듯 기기를 사면 된다. 그 뒤 원하는 통신사에 원하는 요금제로 개통해 쓸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용 비율이 8%밖에 안 되지만, 동남아나 유럽 등에서는 절반 이상이 이용할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세계 평균 61%에 달한다.
특히 알뜰통신사 등의 ‘유심(본인 확인 정보가 담긴 칩) 요금제’에 가입하면 약정 없이 원하는 기간만큼만 쓸 수 있다. 유심요금제는 단말기와 별도로 유심칩만 파는 상품이다. 에넥스텔레콤 등 알뜰폰 업체들은 다양한 조건의 유심요금제를 갖추고 있고, 케이티(KT) 등 일반 통신사도 선불 유심 상품을 갖추고 있다. 현재 국내 알뜰통신사 이용자의 20% 정도가 유심요금제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외국 출장이 잦거나 유학이나 어학연수 등을 앞둔 이들이 많이 썼는데, 요즘은 유심 요금제 가성비가 좋다고 알려지면서 일반인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자급제폰을 사면 통신사에서 할부로 스마트폰을 살 때 붙는 수수료도 낼 필요가 없다. 통신사에서 90만~100만원대 프리미엄폰을 24개월 할부로 사면 5.9%의 할부수수료가 붙어 약 6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자급제폰은 목돈이 들기는 하지만,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잘 고르면 5~10%의 가격 할인과 6~24개월의 무이자 할부 구매가 가능하다.
15~20개에 이르는 통신사의 사전설치 앱(프리로드 앱)이 전혀 깔리지 않는다는 것도 자급제폰의 장점이다. 보통 통신사를 통해 스마트폰을 사면 연락처 앱이나 멤버십 앱, 클라우드 앱, 쇼핑몰 앱 등이 미리 깔려 있는데, 지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급제폰은 여기에서 자유롭다. S9 자급제폰의 사전설치 앱은 라디오, 전화, 메시지 등 25개로 통신사폰(50~60개)의 절반 정도였다.
■ 정말 쌀까? 얼마나 쌀까?
자급제폰을 사서 헬로모바일 등 알뜰폰 요금제에 가입하면 요금 감면 효과가 크다. 데이터나 통화 사용 패턴에 따라 달라지지만, 통상 알뜰폰 요금은 약정 없이도 비슷한 조건의 일반 통신사 요금보다 20~30% 싸다. 일반 통신사의 가족결합할인 등을 고려하면 효과가 희석되지만 그래도 5~10% 정도는 여전히 싸다.
구체적으로 월 데이터 10GB, 통화 100분, 문자 100건 기준으로 알뜰통신사 요금제와 일반 통신사 요금제를 비교하면 약간의 요금 차이가 있다. 자급제폰의 경우 출고가 95만7000원짜리 S9 자급제폰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특정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10%의 할인과 6개월 무이자 할부가 가능하다. 헬로모바일에서 유심요금제에 가입하면 월 사용료 2만9700원짜리를 프로모션을 적용해 월 1만9800원에 살 수 있다. 이 경우 2년 동안 총액 133만6500원, 월 5만5687원이 든다. 특정 카드를 발급받아 24개월 동안 일정 금액 이상 쓰면 통신요금을 훨씬 줄일 수 있지만, 의무 사용 기간에 얽매이게 된다.
기존 통신사를 이용하면 24개월 약정을 맺고 여러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특정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24개월 동안 월 30만원 이상 쓰면 한달 기기값이 1만5000원씩 할인된다. 비슷한 조건의 통신사 요금제에 가입하면 월 사용료 4만5650원이지만, 24개월 약정을 하면 25%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같은 통신사 상품을 쓰는 가족이 있으면 월 3300원의 결합할인이 가능하다. 기기를 24개월 할부로 사면 5.9%의 할부수수료가 붙어 약 6만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이 경우 기기 구입 비용과 통신요금을 합쳐 24개월 동안 139만9488원, 월 5만8312원의 요금이 든다. 결과적으로 자급제폰을 사서 알뜰통신사 요금제에 가입하면, 비슷한 상품을 통신사에 가입하는 것보다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다.
■ 정보 이동은 어떻게?
기존 스마트폰에 들어 있던 정보 이동은 어떻게 할까? 새 단말기를 기존 통신 대리점에서 사면 매장 직원이 해준다. 자급제폰을 사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단말기 제조사와 통신사들은 “가능하면 소비자가 직접 할 것”을 권한다. 요즘은 전화번호부와 사진 등을 쉽게 옮길 수 있게 하는 앱이나 연결 커넥터 등이 있다. 직접 할 엄두가 나지 않거나 하다가 문제가 생긴 경우에는 제조사 고객센터를 방문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정보를 옮기는 과정에서 전화번호와 사진 등이 사라지고 노출될 수도 있어 가능하면 고객이 직접 할 것을 권한다. 고객센터에서 해주긴 하는데, ‘작업 과정에서 데이터가 소실돼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동의 절차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도 해주지만 ‘눈총’을 받을 수 있다. 통신사는 미납 요금 수납 같은 고객서비스 업무를 대리점에 위탁하면서 건당 몇백원에서 몇천원씩의 업무 위탁 수수료를 지불하지만 자급제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유심과 전화번호부·사진 등을 옮겨주는 것에는 수수료를 주지 않는다. 통신사들은 “회사 전산망에 접속하는 업무에만 위탁 수수료를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최현준 김재섭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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