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이르면 24일부터 개시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연합뉴스
“오늘 마지막으로 회를 시켜 먹었어요. 앞으로 회를 먹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 대응은커녕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광고나 만들었다니…. 한 점 한 점 집어 먹으며 뭔가 비장한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윤아무개(43)씨는 일본 정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를 24일부터 개시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22일 저녁 메뉴로 생선회를 시켜먹었다고 했다. 윤씨는 “국내 어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지만, 원전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이 회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주문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가 눈앞에 닥친 23일 시민들의 불안감과 상인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추석 대목을 한 달 앞둔 시점이라 수산물 선물세트 판매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이르면 24일부터 개시하기로 결정한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한 수산물시장에서 관계자가 방사능 측정기로 수산물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산물을 파는 상인들은 정부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서울 관악구에서 대형 횟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이미 오염수 방류가 확실시되면서 매출이 30% 넘게 줄었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민·상인이 죽든 말든 상관없단 말이냐.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횟집뿐만이 아니다. 수산물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음식을 파는 상인들은 원전 오염수 방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어제 뉴스를 보며 바지락 칼국수를 먹던 손님들이 ‘이젠 바지락도 위험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더라”며 “국내산 바지락만 쓴다고 안내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들깨 칼국수’나 ‘옹심이 메밀칼국수’ 등의 메뉴만 판매할 생각”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이 앞다퉈 ‘방사능 조사결과 완료’와 ‘오염수 방류 전 사전 수매분’임을 강조하고 자체 정밀 분석 장비 도입까지 발표하고 나섰지만, 추석을 앞두고 선물을 준비하는 소비자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는 원아무개(46)씨는 “주요 거래처나 가족·친지들에게 해마다 명절엔 전복이나 굴비세트 등을 선물했는데, 올해엔 주고도 뒷말을 들을 것 같다”며 “직원들과 상의해 선물 목록에서 수산물 세트는 제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 일정 철회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부들은 진공 포장된 말린 생선을 냉동고에 쟁이는 방식으로 준비에 나섰다. 40대 주부 정아무개씨는 “엊그제 속초에 다녀왔는데, 가족들과 진공으로 포장된 마른 생선을 몇 박스나 주문해와 나눈 뒤 냉동고에 보관해놨다”며 “친구가 ‘생선이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튀겨 먹으면 된다’고 조언해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식업계도 오염수 방류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외식업계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매장 수가 줄어드는 등 타격을 입었고, 최근엔 외식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부진으로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염수 이슈까지 터지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일본산은 아니지만 수산물 재료가 적지 않아 혹시 불똥이 튈까 걱정이다. 위기감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낙관론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자체 방사능 측정 장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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