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누리집에 노출된 중소기업 제품(왼쪽)과 쿠팡 자체 브랜드(PB) 제품. 쿠팡 누리집 갈무리
쿠팡이 ‘로켓 배송’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PB) 상품 개발·판매를 강화하면서 유통가 전반에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기 있는 중소기업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값싸게 판매하거나 직원들에게 자체 브랜드 상품평을 쓰게 하는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할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이 납품 기업의 인기 제품을 베끼거나 무리하게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쿠팡 누리집에선 기존 인기 상품들과 거의 똑같은 쿠팡 자체 브랜드 상품들이 상당수 검색됐다. 쿠팡 자체 브랜드 섬유유연제 ‘탐사’의 경우, 파란색 통과 곰돌이 캐릭터 스티커가 붙은 모습 등 외관과 캐릭터까지 유사하다. 하지만 중소기업 제품보다 쿠팡 제품이 1만원가량 저렴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쿠팡 자체 브랜드 ‘곰곰’의 소시지 페이스트리 냉동 빵은 중소 제과업체의 소시지 페이스트리 빵과 포장과 제품 이미지까지 닮았다. 다만 쿠팡 브랜드 빵 가격이 10원 더 저렴해 최저가 검색을 하면 쿠팡 브랜드가 상위에 노출된다. 이밖에도 인기 보리 음료와 유사한 쿠팡의 곰곰 고소한 보리차, 인기 클렌징폼 제품과 비슷한 쿠팡 비타할로 클렌저 등 기존 제품을 본뜬 듯한 자체 브랜드 상품들이 더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쿠팡이 로켓배송 영향력을 활용해 자체 브랜드 상품 개발·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 쿠팡 제공
유통가에선 공룡 플랫폼 기업이 상품을 만드는 ‘선수’ 역할에 집중하며 제조업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식품회사 직원은 “상품 노출 순서와 상품평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 기업이 만든 상품과 일반 식품회사가 생산한 제품은 온라인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며 “식품 기업들은 상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연구비를 지출하는데, 쿠팡이 잘 나가는 상품을 베껴 쉽게 이윤을 얻는다면 제조업 전체에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들은 “1700만명이 넘는 활성화 고객 수를 보유한 쿠팡에 물건을 납품하려면 부당 행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쿠팡이 자체 브랜드 상품 개발·판매에 집중하는 배경을 두고, 업계에선 늘어난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한 경영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의 지난해 매출은 184억637만달러(약 22조2256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영업적자 역시 14억9396만달러(1조8039억원)로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현재까지 누적적자 총액은 6조원대로 추산돼 수익 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쿠팡은 2020년 7월 자체 브랜드 사업을 분할해 자회사 ‘시피엘비’(CPLB)를 설립했다. 현재 구팡이 판매하는 자체 브랜드 상품은 곰곰(식품), 코멧(생활용품), 캐럿(의류), 홈플래닛(가전) 등 16개 브랜드 4200여가지에 달한다.
제조업체와 시민단체들은 구팡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이런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이 절실하다고 요구한다. 김은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중개거래에서 얻은 상품 판매·최저가 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체 상품 출시와 알고리즘 조작 의혹 등은 쿠팡이 플랫폼 중개거래를 이윤 확보의 도구로 악용하는 문제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다”며 “점점 커지는 온라인상의 불공정 거래의 피해와 제조 생태계의 악순환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쿠팡 쪽은 “외관이 유사한 상품들은 제품 특성상 디자인이 정형화됐고, 대형마트 등에서도 비슷한 외관의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며 “시피엘비는 제품 출시 전 타사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 및 부정경쟁행위 가능성을 확인·통제하는 프로세스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