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 여파로 중국 자동차 부품 공장들이 휴업 연장에 들어가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산 부품 재고 소진에 따라 현대·기아차는 생산속도 조절에 이어 이번주 국내 생산라인의 조업을 일부 중단할 계획이다. 쌍용차는 4일부터 가동을 멈추기로 했다. 엘지전자 등 국내 전자업계도 중국 현지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현지 매장 운영을 임시 중단했다.
현대·기아차는 3일 이번주 배선용 뭉치로 불리는 전선 제품인 ‘와이어링 하니스’의 중국산 재고 소진으로 일부 생산라인의 조업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제품을 공급하는 경신과 유라 등 1차 협력업체의 중국 공장이 휴업을 연장하면서 재고 물량이 바닥나서다. 현대차는 지난 주말 예정됐던 ‘팰리세이드’ 생산라인의 특근을 취소했고, 기아차도 화성공장과 광주공장에서 차량 생산 감축을 실시하는 등 생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이날 하언태 현대차 사장은 사내게시판에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로 인해 휴업까지 불가피한 비상상황이다. 다만 공장별·라인별로 재고 수량의 차이가 있어 휴업 시기와 방식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와이어링 하니스’는 차 조립 공정 초기에 설치하는 부품으로, 차량 바닥에 배선을 먼저 깔고 그 위에 다른 부품을 얹어 조립한다. 차종이나 모델별로 배선 구조가 제각각이라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업체에서 맞춤형으로 통상 1주일치 물량을 공급받았다. 이 부품의 재고가 바닥나면서 컨베이어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차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비교적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부품은 원가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중국산을 써왔다. 특히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부품만 가져다 쓴다는 이른바 ‘적기생산방식’(JIT)의 도입으로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의 재고만 비축하다보니 이번 사태처럼 공급이 제때 되지 않으면 국내 생산 공장이 연쇄적으로 멈추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앞서 쌍용차는 중국으로부터의 부품 수급 문제로 4일부터 12일까지 평택공장 가동을 멈춘다고 공시한 바 있다. ‘와이어링 하니스’를 만들어 국내 차 업체에 공급하는 레오니와이어링시스템코리아의 중국 옌타이 공장이 중국 정부의 권유로 9일까지 가동을 중단하면서 부품 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회사 쪽은 “생산 재개 일시는 중국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오니와이어링시스템은 쌍용차를 비롯해 한국지엠(GM)과 르노삼성차에도 와이어링을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통해 다른 글로벌 업체로부터도 부품을 조달하고 있어 직격탄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당장 생산에 영향이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의 장기화에 대비해 향후 끼칠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업계도 신종 코로나 사태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엘지전자와 엘지화학, 엘지디스플레이는 중국 현지 공장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 발생 초기에는 최소 인력으로 공장을 가동했으나, 사태가 확산되면서 ‘중단’을 선택한 것이다. 이들 회사는 난징·베이징·광저우·톈진 등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중국 상하이의 플래그십 매장 운영을 9일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 매장은 삼성전자의 중국 내 첫 모바일 플래그십 매장이다.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