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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칼럼이 덕업일치냐고요? “성공한 덕후죠”

등록 2021-01-02 17:15수정 2021-01-02 17:20

[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31. 와인 ‘덕질’의 끝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12월 어느 날. <한겨레> 토요판팀은 새로운 연재 코너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재테크, 식물 가꾸기 등 1인 가구의 삶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가 나온 가운데,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와인에 대한 글을 써보면 어떨까요?” 당시 데스크였던 선배는 “와인 좋지. 그런데 누구를 필자로 할 건데?”라고 되물었고, 난 “저요”라고 답했다. 선배는 “이 세상에 와인 전문가가 얼마나 많은데, 괜찮을까?” 하고 걱정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 평생 그렇게 의욕적인 때가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고양이를 키우는 이야길 쓰는데 반려동물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비혼으로서의 삶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해서 그 뒤에 결혼을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잖나요?(당시 그 지면엔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이야기와 비혼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었다.) 왜 유독 와인은 전문가가 써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그렇게 와인을 어렵게 접근하는 편견을 바꾸고 싶어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와인을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에 관해 파고드는 것) 하는 수준으로 좋아합니다.”

선배는 “한 코너를 연재하려면 최소한 아이템 10개는 있어야 한다. 기획안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며칠 뒤 나는 A4 용지 세장을 가득 채워 12개의 아이템을 들고 갔다. 나의 넘치는 의욕을 말릴 수 없겠단 표정으로 선배는 웃었다. 그렇게 2019년 1월 첫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와인 덕질을 글을 쓰는 업무로 연결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토요판팀에 속해 있을 때는 그나마 내 업무 중 하나로 취급됐지만, 다른 팀으로 옮겨간 이후엔 ‘가욋일’ 취급을 받았다. 퇴근 뒤에나 주말에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쓴 글에 ‘광고네요’라는 댓글이 달리면 속상하기도 했다. 광고가 들어온 적이나 있으면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무엇보다도 타깃 독자층이 고민이었다. 너무 초보만을 위한 내용을 쓰면 ‘다 아는 내용을 쓰고 있어’라고 할 것 같고, 너무 전문적인 내용으로 쓰면 ‘이러니까 와인이 어렵지’라며 아예 읽지도 않을 듯하고. 그러다 문득 나야말로 와인을 마시는 데 자격과 수준을 따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턴 그저 내 글을 읽고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를, 그런 마음으로 썼다. ‘찌질한 와인’을 읽고 파전에 막걸리 대신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다거나, 과메기에 소비뇽 블랑을 마셨다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보면 내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란, 관심사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말한다. 3~4주에 한번꼴로 짧은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와인 덕질로 시작한 연재가 어느덧 만 2년이 됐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찾아보고, 더 맛있는 와인과 음식의 조합을 소개하기 위해 더 많이 마신 나날들이었다. 연재 마무리를 기념하며 와인을 마시러 가야겠다. 그저 와인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 내 이름을 단 코너가 생겼고, 와인을 더 사랑하게 됐으니 이 정도면 덕업일치까진 아니더라도 성공한 덕후 아닐까.

<한겨레21>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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