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라!
가족끼리 오랜만에 생선회와 함께 술을 마시던 그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주가 상에 올려졌는데, 나는 비장하게 화이트 와인을 꺼냈다. “회랑 와인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회에는 소주지!”라는 아빠의 편견을 바꿔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산물의 비린내를 극대화하는 오크향을 피한다면 회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샤르도네와 산미가 강한 소비뇽블랑을 준비했다.
그러나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어울린다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와인을 좋아하는 동생들도 어느 순간 와인 대신 소주로 손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난 끝까지 와인을 고집했지만, 계속 고개를 갸웃갸웃하긴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내고 말리라.
기회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와인 모임을 통해 왔다. 우리는 코키지 프리인 서울 신사동의 한 횟집에서 회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샴페인, 이탈리아 프란차코르타 지역의 스파클링, 뉴질랜드의 피노그리, 미국의 리슬링을 준비했다. 가장 흔한 화이트 와인 품종인 소비뇽블랑과 샤르도네는 제외했다.
제철을 맞은 생선회와 톡 쏘는 스파클링, 달지 않은 리슬링, 적절한 산미의 피노그리는 꽤나 잘 어울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먹성 좋던 우리가 회를 다 먹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오히려 전과 튀김에 더 손이 갔다. 한두 점은 꽤 맛있었는데, 그다음엔 느끼했다. 그나마 스파클링 종류인 샴페인이나 프란차코르타는 괜찮았지만 나머지 와인은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매운탕을 먹고서야 느끼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난 회와 어울리는 와인은 찾지 못했다. 분하게도 회와 어울리는 술은 소주나 청하다.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외에도 와인과 어울리지 않거나, 와인보다 다른 술이 더 어울리는 음식은 뭘까. 의외로 와인 안주로 가장 흔한 것이 치즈지만, 치즈와 와인을 맞추는 것이 쉽진 않다. 특히 비싼 치즈일수록 그 향이나 풍미가 강한데 이런 치즈와 와인을 마시면 치즈에 와인이 압도되어버려서 와인 맛은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다. 비싼 치즈엔 차라리 저렴한 와인을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레드 와인보단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저렴한 화이트 와인을 추천하는데, 특히 섬세한 부르고뉴 피노누아르는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모두가 예상하듯 역시나 향이 강한 음식은 와인의 맛을 죽인다. 소스 맛이 강한 불고기, 대부분의 중국요리나 타이(태국)요리 같은 음식 말이다. 또 너무 매운 음식도 마찬가지다.
이럴 거면 와인을 굳이 마실 필요가 있나 싶지만 위에 말한 음식을 뺀 모든 음식들이 와인과 잘 어울린다. 순대, 떡볶이 같은 분식과도 잘 어울리는 술이 와인이니까. 만약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은 스파클링 와인이 실패하지 않는 치트키다.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달달한 와인을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와인은 달지 않다. 다음은 화이트, 그다음은 레드다. 스파클링, 화이트, 레드 순으로 음식과 매칭해보자.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역시 치킨엔 맥주, 생선회엔 소주다.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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