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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언덕의 마르코폴로도, 마을의 우정도 사라졌지”

등록 2018-10-20 14:01수정 2018-10-20 16:04

[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25) 하산기-사라진 것들을 추모하며

1990년대초 소비에트 붕괴가 분수령
유목민 풍습과 생태계 파괴 시작
국경 넘나들던 영양떼 잡아먹고
관목뿌리까지 땔감으로 캐내
초원엔 먼지 날고 풀은 짧아져

파미르 초원 50년 목동의 회고
“전엔 정부가 우릴 위해 일했으나
지금은 정부조차 자기 살기 바쁘고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위해 일해”
“더 좋아지라고 기도할 뿐 미래 몰라”
지난여름 키르기스 파미르고원에 작고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었다. 과거 키르기스 초원은 풀이 40㎝에 이를 정도로 무성하게 자랐으나, 광산 먼지와 너무 많은 가축 때문에 풀이 겨우 발목 높이 정도밖에 자라지 못한다.  방성환 제공
지난여름 키르기스 파미르고원에 작고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었다. 과거 키르기스 초원은 풀이 40㎝에 이를 정도로 무성하게 자랐으나, 광산 먼지와 너무 많은 가축 때문에 풀이 겨우 발목 높이 정도밖에 자라지 못한다. 방성환 제공
몸은 은빛 갈색인데 꼬리만 이상하게 하얀 여우가 뒷산으로 마지막 산책을 나간 우리를 내려다본다. 나는 녀석의 굴이 어디 있는지 대충 안다. 녀석도 우리를 알 것이다. 매일 언덕을 올랐다 달려 내려가는 실없는 인간 하나와 말. 언제나 능선을 하나 건너서 사냥을 하는 녀석. 빨리 가라고 손짓을 했다. 높다랗게 독수리가 한 마리 떠 있는 걸 보았으니까. 굴로 돌아가는 개활지를 건널 때 녀석은 숨을 곳이 없다. 목숨이야 한가지지만 얼굴을 익힌 녀석들이 면전에서 죽는 것은 싫다. 하지만 녀석은 나의 몸짓이 수상했는지 되레 움직이지 않고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나는 냅다 언덕 아래로 말을 달렸다. 아래로 달릴 때, 바람은 몸무게를 최대한 활용해서 질주한다. ‘독수리는 시선을 놓쳤겠지.’

하산하기 전날 바람을 새 주인에게 넘겼다. 그 녀석은 새 주인을 태우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넘길 마음에 며칠 우울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락까지 듬뿍 먹였건만. 주인이 바뀐 것을 녀석도 모르겠지. 새 주인은 테미르가 아닌 마무르다. 말을 마무르에게 넘기기 전날 밤, 선물 몇 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테미르를 찾아갔다.

“마무르 아버님이 아프니까, 약값이 필요하다. 자네는 차가 있지만 마무르는 말로 일을 해야 하니까, 마무르에게 말을 주자.”

말을 마치기도 전에 테미르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마무르에게 줘야지. 찾아와줘서 고마워.”

공원국 작가가 키르기스 초원에서 자신의 말 ‘바람’을 탄 모습. 바람은 유난히 덩치가 컸지만, 조심성과 경험이 없어 초원에서 주인을 여러차례 낙마시키기도 했다. 윤성제 제공
공원국 작가가 키르기스 초원에서 자신의 말 ‘바람’을 탄 모습. 바람은 유난히 덩치가 컸지만, 조심성과 경험이 없어 초원에서 주인을 여러차례 낙마시키기도 했다. 윤성제 제공
파미르고원의 돌 틈에 자란 식물이 지난여름에 꽃을 피운 모습. 방성환 제공
파미르고원의 돌 틈에 자란 식물이 지난여름에 꽃을 피운 모습. 방성환 제공
망아지 좋아하는 친구에게 ‘바람’ 넘겨

테미르는 술 한잔할 줄 아는 호남이다. 하지만 호남이 타는 말이 대개 마른다. 말은 어머니처럼 보살피는 이가 타야 살이 오른다. 여섯달 동안 마무르가 말을 다루는 걸 봐왔다. 언제나 잘 먹이고 재우고 쉬게 하니, 트레킹 일을 하느라 늘 밖에 있는 말들이지만 마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채찍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아버지 병구완을 하느라 가을이면 말을 팔아야 하니 한 마리만 남았다. 그는 술을 알지만 자제하는 호남이다. 무엇보다 그는 망아지를 좋아했다.

“친구, 내년 이놈을 풀어줄게. 암말 열 마리를 이끌도록 할 거야. 더 많아야 하나? 이놈은 다른 종류야. 녀석의 새끼를 얻을 거야.”

약속을 지키는 친구가 새 주인이 되었다. 바람은 내년에 소원대로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로 매일 싸워야 할 것이다. 나이 든 수컷은 노련하게 다가오고 젊은 녀석들은 막무가내로 달려들 것이다. 덩치는 크지만 싸움 기술이 부족하니 다른 우두머리 수컷들처럼 살갗이 성할 날이 없겠지. 그래도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녀석도 목 굵은 어른이 되겠지. 녀석은 나를 다섯번 떨어뜨렸고, 우리는 함께 비탈로 한번 떨어지고, 한번 도랑에서 엎어지고, 격류에 빠졌다 탈출했다. 그것만은 기억해줬으면 한다. 말에서 떨어질 때면 어른들이 더 작고 순한 말로 바꾸라고 했지만,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는 걸. 덕분에 우리는 이제 서로의 몸짓을 익혀 한 몸처럼 장애물을 건너는 법을 익혔지.

고맙다, 바람. 네 덕분에 빙하 바로 아래 핀 솜다리를 보았고, 거침없이 물을 건너고 언덕을 올랐다. 덕분에 수박을 나르는 할머니들 손을 덜어주고, 때때로 길 잃은 여행객의 다리를 쉬게 했다. 너로 인해 나는 초원에서 사람답게 살았다. 정말 내생(來生)이 있다면 한번쯤은 내가 말이 되고 네가 기수가 되어 달려보자. 나는 기회를 봐서 너를 한번 떨어뜨리고, 너는 내 엉덩이에 채찍을 먹여라. 조금이라도 남은 앙금이 있으면 그렇게 훌훌 털어내자. 새 주인도 네 왼쪽 발굽이 아픈 것 안다. 겨울에 쉬면 다 나을 테니 걱정 마라. 내년에 들판에 있는 너를 보러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지내라, 내 검둥이 말 ‘바람’.

바람을 보내고,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75살 가장 나이 든 차반(직업 목동) 졸도쉬. 1968년 이곳으로 와서 줄곧 목동 생활을 잇고 있다. 감자 구덩이를 만들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한다. 그의 이야기를 타고 지나가버린 시절의 향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고통은 되도록 담담하게,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을 회상할 때는 처연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그는 그렇게 옛일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95년 이전에는 겨울에도 투르파르켈에서 지냈지.”

소비에트를 겪은 이들은 모두 그 시절의 안정감을 말한다.

“그때는 정부가 목동에게 월급을 줬지. 나는 가축을 잘 불린다고 상여금과 훈장도 받았지. 산에서 완전히 돌아온 것은 3년밖에 안 돼. 지금은 아들이 내 일을 이었어.”

그렇게 사계절 산에만 지내는데 언제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할까.

“벌판에 유르트뿐이었잖아. 아버지가 다니다 어떤 유르트에 좋은 처녀가 있는지 유심히 봐 둬. 그리고 부모들끼리 이야기가 되면 결혼했지. 나도 그렇게 했고.”

그 시절 다 그렇게 결혼했고, 그것이 유목지대의 방식이었다. 소비에트 권력은 그 높은 산의 풍습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렇게 아저씨는 1남5녀의 아버지가 되고, 아직도 부인과 해로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 여기까지는 못 들어왔어. 기술자들 몇명 있지만 여기서 살지는 않았어. 마을에 겨우 150가구만 살았어. 물가에 옹기종기.”

여름에는 광대한 초원에 드문드문 깔린 유르트에 살다가 겨울에야 돌아오는 마을의 집이 고작 150채. 그때는 오염 따위는 아예 몰랐을 것이다. 그는 90년대 초에 벌어진 일들을 뚜렷이 기억했다.

“소비에트 붕괴 뒤, 정말 너무 힘들었어. 갑자기 일이 없어졌으니까.”

붕괴가 앗아간 목록은 광범위했다. 직업과 상품은 물론, 그나마 소비에트 시절 파미르가 간직한 자연의 보물 목록이 지워졌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야생동물이 국경을 넘어 움직였어. 이 산 저 산 마르코폴로(큰 뿔을 가진 영양)가 거대한 무리를 지어 옮겨 다녔어. 타지크, 중국 국경을 넘어서.”

옛 소련의 연방국가 가운데 키르기스만큼 레닌을 좋게 기억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국경 없는 소비에트 시절을 그리워하는 키르기스인들이 많다. 사진은 오시 시내의 레닌 동상. 공원국 제공
옛 소련의 연방국가 가운데 키르기스만큼 레닌을 좋게 기억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국경 없는 소비에트 시절을 그리워하는 키르기스인들이 많다. 사진은 오시 시내의 레닌 동상. 공원국 제공
그 많던 늑대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여기서 영양을 한 마리도 본 적이 없다.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사라졌을까.

“그때(90년대 초)는 너무 먹고살기 힘들었어. 도시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들이 다 잡아먹어 버렸어.”

일부는 더 높고 척박한 타지크 파미르로 떠났을 것이다. 생태계란 임계치를 넘는 순간 완전히 붕괴하고 만다. 겨우 몇십년 전에 이곳 설봉 아래 영양이 무리지어 다녔다고 하면 오늘날 누가 믿을까.

“영양이 떠나면서 늑대도 떠났지. 그때는 겨울에 가축을 늑대로부터 지키는 것이 일이었어. 그놈들이 득실거렸지.”

그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을 가축과 함께하며 늑대로부터 지켜냈고 훈장도 탔다.

“그때 양 한 무리가 1천 마리 이상 됐거든. 고기, 털, 젖을 위한 가축으로 나뉘어 있었어. 하지만 지금보다 가축 수는 훨씬 적었지.”

그들은 정해진 가축만 키우면 되었다. 그 가축은 이 광대한 벌판의 풀을 다 뜯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구가 일곱배 이상 늘었다.

“그때는 풀이 무릎까지 자랐어. 40센티미터. 가을이면 저쪽 타지크 무르가브 쪽으로 풀을 실어 날랐어. 타지크 쪽 목장 겨울 건초는 다 여기서 나갔다고. 지금은 매년 풀이 짧아지고 있어. 가축이 너무 많고, 먼지 때문에.”

가축이 많으면 건초용 경작지를 늘려야 한다. 봄과 가을에 거센 바람을 타고 경작지에서 먼지가 일어난다. 먼지 탓에 자연초지의 풀은 더 짧아진다. 거기에 석탄광산이 가세했다. 처음에는 금광만 먼지를 일으켰다고 한다.

“마멋(마르모트) 굴에서 석탄이 발견되었어. 여기가 타지크 관할일 때는 크게 개발하지 않았어. (키르기스) 정부가 적극적이었지. 예전에는 여름에 바람은 심했지만 먼지는 없었는데. 이제 광산 때문에 풀이 더 짧아져.”

모두 사람이 초래한 문제였다. 30년 전과 지금 키르기스 파미르의 날씨는 큰 변화가 없다고 했다. 겨울 눈이 많이 쌓이면 그다음 풀이 좋고, 적으면 풀이 짧아지는 정도의 편차는 언제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늘었다. 그것도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들이.

“(소비에트 붕괴 직후) 타지크 무르가브에 있던 키르기스 사람들이 많이 왔지. 카라콜에서도 많이 왔고. 겨울에 땔감이 없었어. 관목을 죄다 땔감으로 없애 버렸어. 연료를 살 돈이 없었으니까.”

짐승은 관목 순만 먹지 줄기나 뿌리를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서쪽에서 오는 바람에 섞인 먼지가 동쪽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이유가 있었다. 땅을 잡아주고 먼지를 막아주던 관목이 다 사라졌으니까.

10월 초 파미르고원에 눈이 내려 쌓였다. 올겨울에는 많은 눈이 쌓일 것으로 보인다. 눈이 많으면 이듬해 초원의 풀들도 무성해진다. 공원국 제공
10월 초 파미르고원에 눈이 내려 쌓였다. 올겨울에는 많은 눈이 쌓일 것으로 보인다. 눈이 많으면 이듬해 초원의 풀들도 무성해진다. 공원국 제공
“발근 나무, 그리고 체체카나크라는 것이 있어. 자르기만 했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뿌리까지 캐냈지.”

초원 복원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물가의 관목림 복원이 될 것이다. 몇 킬로미터마다 남에서 북으로 물길을 따라 띠처럼 군락을 이루던 관목림만 복원해도 벌판의 풀은 훨씬 길어질 테니까. 그러나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 중 누가 강변에 ‘무익한’ 관목을 다시 심을까. 물과 전기도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정부는 이런 일에 아예 관심이 없다.

“예전에는 자기 것이 없었어. 양 몇 마리가 다였지. 그렇지만 정부는 우리를 위해 일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우리들 모두 자기를 위해 일하지. 그리고 정부도 이제 자기 살길만 생각하지.”

“문재인 그분께도 안부 전해줘”

소비에트 시절을 말할 때 그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우정이다.

“여기 (150가구 중) 타지크인 가구 열 집이 있었어. 지금은 두 집만 남았지만. 사이도 참 좋았지. 형제들이었어. 그리고 타지크에 뭐가 부족하면 우리가 주고, 여기 부족한 게 있으면 타지크에서 가져왔지.”

사람이 적은 초원, 초원인들의 인사는 차 한잔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예전의 풍속은 많이 바뀌었다. 타지크인은 타지크 땅으로 키르기스인은 키르기스 땅으로 다시 움직이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어떤 이방인들은 처음부터 섞일 마음이 없었다. 그는 6년 전 가스전을 뚫으러 들어왔다가 시설을 철거하지도 않고 떠난 중국인들을 온전히 기억했다.

“그들은 이곳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어. 몇번 말을 붙여 봤지만 언제나 ‘나 시간 없다’는 말만 했어. 우리들과 어울리지 않았지. 한 6, 70명이 일했던 것으로 기억나. 마을 사람들도 서른명 정도 거기서 일했지.”

가스 매장량이 시원치 않았던지 중국인들은 하루아침에 말없이 떠나버렸다. 철탑과 저장 시설은 지금도 언덕 위에 우두커니 서서 말없이 삭아가고 있지만, 그 중국 노동자들은 이름 하나 남기지 않았다. 양 한 마리가 지나도 흔적을 남기는 이 초원에서 사람들끼리 그렇게 만나고 어이없이 헤어진 예는 없을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10년 뒤를 예측해 보라고 주문했다.

“10년 후? 나는 몰라. 하지만 매일 알라께 기도하지. 더 좋아지라고. 한국에 가면 모두들에게 인사 전해줘. 기도한다고.” “물론이죠.” “아, 한국 대통령 이름이 뭐지?” “문재인입니다.” “문재인, 그분께도 안부 전해주시고.”

산을 내려와 이틀 동안 크게 아팠다. 우리는 왜 귀중한 것들을 잃은 뒤에야 아파할까. 현대는 많이도 만들고 그만큼 부쉈다. 나도 나름대로 사라지는 것들을 보며 자란 세대다. 어릴 때는 물에서 가재와 퉁가리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커서는 도시민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오시로 내려온 날 밤 꿈에 바람 녀석이 또 나타났다. 고삐를 하지 않은 얼굴만 시커먼 백마로. 만지려 하자 녀석은 들판으로 달아났다. 꿈속에서도 바람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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