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모골 마을 북쪽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인 졸드바이는 취흥에 젖어 우연히 마을식당에서 만난 필자를 기어이 자신의 집까지 데려갔다. 유목민들의 둥근 천막인 유르트가 아닌 군용 천막 안에서 졸드바이의 딸 굴자다가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윤성제 제공
제일 먼저 ‘그 사람’과 ‘그 녀석’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 견딜 수 없겠다. 8월22일, 낮에는 즐거운 악몽을 꾸고 밤에는 꿈같은 현실을 경험한 그날의 이야기.
이야기에 앞서 키르기스스탄 파미르고원에서 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에 대해 잠깐 설명부터 하는 게 좋겠다. 중국의 서부는 숨통을 조이는 듯한 살벌한 통제 때문에 인류학 연구자들이 발붙일 틈이 없다. 나 역시 공안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다, 급기야 벌거벗은 채로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처럼 도망치듯 키르기스스탄의 사리모골 마을로 들어갔다.
나는 행복을 지상의 가치로 두기에, 연구를 위해 현장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첫 번째 선택 기준은 대지의 아름다움이다. 몇 해 전 주마간산 격으로 키르기스스탄 파미르를 넘을 때 그 압도적인 얼음벽과 초원의 풍경에 반해버렸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찾아와 시간을 보내리라던 다짐이 결국 실현됐다. 투르크인들의 소박한 품성처럼 그저 ‘크즐 수’(붉은 강)라 불리는 불그죽죽한 물줄기 남쪽에는 사람들이 레닌봉(해발 7134미터)이라 부르는 알라이 산지 최고봉이 자리잡고 있다. 그 까마득한 높이에도 불구하고 이 산은 등허리가 가없이 넓어 사계절 유목민들이 쓰고도 남을 물을 사방으로 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멀리 하류의 목화밭까지 물을 공급한다. 동서 양 능선이 감싸 안은 푸르스름한 빙하는 장대하지만 평평해서 무겁고 차갑기는커녕 거대한 목화밭인 양 따듯한 질감이 난다. 산줄기 4천미터 빙하 바로 아래부터 북쪽으로 크즐강까지 폭 30㎞의 광활한 풀밭이 동서로 100㎞ 이상 펼쳐져 있고, 강의 북쪽에는 구릉 초지와 자그마한 평지가 남쪽으로 평원을 마주 보며 이어진다. 남북으로 이어진 산은 바람막이 구실도 하고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풍이 부는 여름, 빙하 위로 분명 눈폭풍이 일고 있건만 초원에서 바람은 이상스레 살금살금 걸어 다니고, 언덕 움푹한 곳에는 바람이 쉬는 장소가 꼭 있어 야생쥐 타르박의 보금자리가 된다.
크즐강 북쪽 언덕 아래 자리잡은 졸드바이의 터전. 졸드바이의 아내와 딸들은 여름마다 이 목장으로 와 소를 키우고 젖을 짠다. 윤성제 제공
?“친구, 내가 양 잡는다. 우리 집으로 가자”
이 산에 한 ‘남성’ 혁명가의 이름을 붙인 이들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이 산은 대지가 제힘을 이기지 못해 부풀어 올라 무심코 풀과 짐승과 인간에게 물을 선물하는 곳. 성별은 여성이며,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어머니 산이다. 허리 아래로 평원을 드리운 산은 담백하여 숨기는 것이 없다. 맑은 날 이 산 아래 하루만 있으면 자신이 가진 천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아침에는 자기 그림자를 품다가, 낮에는 제 얼굴로 빛을 흩뿌려 화사해지고, 해가 질 무렵이면 서쪽 작은 산들의 그림자를 빠짐없이 보듬는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 한낮의 빛 아래 흐렸던 빙하의 윤곽이 선명해지면서 산꼭대기가 불그스름한 빛에 잠기면, 여행자의 눈에는 엄연한 물질계의 장엄함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한다. 이 북사면의 쥐벡 계곡이 내 일터고, 크즐강 건너 북쪽의 사리모골 마을이 내 피신처다.
그를 만난 그날, 난 크므스(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저도수의 발효주)에 적응하는 중인지, 고산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참기 힘든 설사에 시달리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사리모골 마을에 머물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마침 열린 장터에서 물건을 살피다가 장날마다 문을 여는 마을 식당으로 들어가니 순하고 어설프게 생긴 아저씨 한 명이 손님을 앞에 두고 연신 보드카를 들이켜고 있었다. 하지만 술병을 상 위에 올려놓고 마시는 대신 상 아래에 감추고 수줍은 듯이 마시는 동작을 통해 그 술꾼이 거칠지 않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이번 여정에 잠시 동행한 후배 역사학도 성제는 투르크계라면 어떤 언어라도 이해한다. 이곳에서 못난 선배가 처음 자리잡는 것을 돕겠다고 사진 찍고 통역하며 궂은일을 다 한다. 애초에 술꾼은 러시아어를 잘 못하는데다 내 러시아어 발음도 엉망이니 성제가 통역으로 나섰다. 그의 이름은 졸드바이. 마을 북쪽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였다. 검객들이 서로를 알아보듯 졸드바이는 마구잡이로 술을 권했다. 하필 속이 아픈 나 대신 성제가 연신 보드카를 받아 마셨다. 술이 두어 잔 돌자 이 친구가 슬그머니 제안을 했다.
알라이 산지 최고봉 ‘레닌봉’(해발 7134미터)이 물에 비친 모습. 레닌봉은 까마득한 높이에도 불구하고 등허리가 가없이 넓어 사계절 유목민들이 쓰고도 남을 물을 사방으로 내려준다. 윤성제 제공
“친구, 내가 양 잡는다. 우리 집으로 가자.”
“집이 어딘데? 가깝나?”
“내 차로 가자. 가깝다.”
우리는 양을 잡는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 좋은 웃음을 거부할 만큼 모질지도 못했고, 또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곧 내 ‘일’이니 지금껏 초대에 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소비에트 시절부터 굴러다니던 녹색 지프차에 오르니 반취 상태의 졸드바이가 직접 운전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불안했다. 하지만 초원에서 지프차가 구른들 죽기야 하랴. 우리는 올라탔다. 자리는 운전석과 조수석뿐, 뒷좌석은 떼내고 짐칸으로 쓰고 있었다. 졸드바이는 차를 몰아 여기저기 가게를 다니며 보드카를 수집했다. 여섯 병쯤 모은 듯한데, 술병이 깨지지 않게 짐칸에서 꽉 잡는 것이 내 임무였다.
“양은 어디 있는데?”
졸드바이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더니 강 건너 초원으로 냅다 차를 몰았다. 크즐강의 철교를 지날 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한참 달리다가 차에서 내려 또 술을 권하고, 그때마다 성제는 괴로워하면서도 넙죽넙죽 받아먹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졸드바이도 만취 운전. 차는 졸드바이의 취흥에 따라 춤을 추듯 가다 서다 초원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한참 지나 그는 벌판 한가운데 차를 세우더니 대뜸 한 무리 양떼 곁으로 다가가 양치기 소년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아, 양을 사는구나’ 직감한 내가 달려가 돈을 지불하려다 그한테서 심하게 무안을 당했다.
“아니, 내가 여기 사람이야. 내가 친구한테 양 값을 내게 하는 사람인 줄 알아?”
양 값을 내려다가 그날 졸드바이에게 먹은 욕만 다 모아도 한 동이는 될 것이다. 달아나는 양떼를 덮쳐 운 나쁜 양 한 마리를 지프차에 올렸다. 초원의 바람이 한줄기가 아니듯, 졸드바이는 고정된 길을 따르지 않고 지나는 곳마다 멈춰 술을 마시고, 친구의 목장과 집을 차근차근 들렀다. 덕분에 성제는 졸드바이처럼 취해갔고, 나는 차가 서는 곳이면 화장실이든 벌판이든 급하게 주저앉았다.
졸드바이의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윤성제 제공
?짐승의 죽음에 인간의 삶이 달려 있다
도대체 몇 시간이나 초원을 돌아다녔을까? 결국 어둠이 내릴 때까지 나는 그 운 나쁜 양과 짐칸에서 살을 맞대고 요동을 이겨냈다. 헐떡이며 지프차 뒤 짐칸에 올라탄 녀석은 처음에는 제 운명을 알았던지 침울했다. 서 있다가 차의 요동에 자꾸 넘어지니 결국 엎드린다. 그래도 내 발을 밟지 않으려 노력하는 녀석의 마음이 안쓰럽다. 발등에 닿는 양털 안의 살이 부드럽고 덥도록 따듯했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거부하지 않는다. 서너 시간 나와 함께하더니 녀석은 되새김질까지 한다. 이제 녀석이 곧 잃어버릴 풀, 그 자유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왔다. 나는 어리석게도 나를 위해 잡혀온 녀석과 차츰 동화되어 갔다. 요동을 이기지 못하고 녀석은 앉아서 오줌 싸고 똥을 싼다. 똥오줌이 바지로 배어들었지만 풀만 먹은 녀석의 배에서 나온 것이라 역한 냄새 대신 풀 향이 났다. 순한 양이라더니, 가끔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선해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다. 이 먹이사슬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초원에서는 그 옛날부터 짐승의 죽음에 인간의 삶이 달려 있었다.
대책 없는 사내 졸드바이는 밤까지 갈지자 행보를 계속하다 어느 집 마당에 도착해 운전대 위에서 그만 잠이 들었고, 그제야 그를 대신해서 다른 남자가 차를 몰았다. 알고 보니 졸드바이의 처남이었다. 크즐강 북쪽 광산이 있는 언덕으로 오를 때는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그때까지 그 녀석은 싸대고, 되새기고, 쌔근거리고, 가끔은 비벼댔다. 한밤중 차는 또 멈췄다. 이번에는 흔한 고장이 아니라 기름이 바닥났다. 어쩌면 이런 게 바로 기적인지 차에서 내려 얼마간 걸으니 바로 졸드바이의 천막이 있었다. 다르바다 타쉬(대문 바위 마을)였다. 졸드바이의 아내와 딸들이 여름이면 이 목장으로 와 소를 키우고 젖을 짰다. 이동하는 양을 여자들이 키우지 못해 소만 키우는 모양이다. 기름을 빌려 다시 지프차를 집 앞으로 끌고 오고 양을 우리에 넣었다. 다행히 졸드바이는 너무 취해 양을 잡을 기력도 없었다. 주정뱅이 남편을 반기는 여인은 한없이 푸근했고, 두툼한 입술에 입 매무새가 단정한 딸 굴자다(‘꽃의 딸’이라는 뜻이다)는 아버지를 보고 한심한 듯 미소를 지었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졸드바이는 순한 양 같은 아버지로 변했으니까. 취해서 비틀거리는 그와 성제, 배를 쥐고 있는 나를 위해 그의 아내가 상을 차려내며 묻는다.
“지금 양을 잡을까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배가 너무 아파서 먹을 수가 없어요.”
끝없이 권하는 음식을 간신히 뿌리치고 드디어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취한 졸드바이도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러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처남이 말했다.
“졸드바이, 술을 좀 많이 먹지만 정말정말 좋은 사람이죠.”
그렇다. 정말정말 좋지만 술을 좀 많이 마시는 친구. 술 앞에서 종종 허세를 부리는 나와 어딘지 많이 닮았다. 유르트(유목민들의 둥근 천막)도 아닌 군용 천막에서 그날 우리는 촘촘히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손님인 우리가 제일 두툼한 담요를 깔고. 밤새 성제는 폭음의 고통에 시달리고, 나는 두어 시간마다 천막 밖으로 나가서 일을 봤다. 낮에 자기 초지 앞에서 맨발로 껑충껑충 뛰던 졸드바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풀 좋지? 내 초지야, 내 초지.”
광부지만, 마음은 여전히 목동인 졸드바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크므스(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발효주). 윤성제 제공
?은하수의 무수한 별들은 모두 하늘의 양
나와 같이 짐칸에서 한나절을 보낸 ‘그 녀석’은 이제 잠자고 있을까? 주저앉아 일을 보며 별빛으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다 바지에서 녀석의 향기가 올라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이 없다면 완벽히 깜깜한 이 산중, 남쪽으로 설산에서 올라온 은하수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북쪽 산에 걸려 있었다. 파미르의 설산이 분화구로 얼음가루를 뿜어 올려 하늘을 뚫는 기둥이 되었다가, 그 기둥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 북쪽 산에 걸린 듯, 두 산 사이를 잇는 은하수는 잡힐 듯 가까웠다.
문득 은하수의 무수한 별들은 모두 하늘의 양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하수와 그 옆에서 풀을 뜯는 양. 지상을 떠난 양의 영혼들이 다 별이 되었기에 저토록 많은 것일까? 양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미안해 지어낸 이야기일까? 정말 저들은 살과 가죽만 남겨두고 하늘로 올라가 영원한 끝없는 평화의 빛이 되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날 밤 서서히 뱃속의 요동이 가라앉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졸드바이는 이미 광산으로 출근하고 없었다. 아이란(요구르트)이 처음으로 편안하게 내려갔다. 졸드바이의 아내가 넌지시 물었다.
“남편은 벌써 출근했어요. 지금 양 잡을까요?”
그렇지, 그놈. 나는 화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배가 아직 아파요.”
완강하게 거부하며 우리는 달아났다. 배앓이는 멈췄지만 조금 더 있다가는 녀석의 살을 먹어야 하겠기에. 저녁이면 녀석은 은하수로 올라가겠지만, 당장은 놈을 차마 먹을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배낭에는 녀석의 향기가 났고, 그때마다 졸드바이와 그 양이 떠올랐다. 이 초원이 아니면 어느 땅이 졸드바이와 같은 사람을 품을 수 있을까? 초원에서 사람은 양에게 얹혀산다. 양 같은 졸드바이와 별 같은 양. 사람은 양을 닮고 양은 별을 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