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 아이네아스, 바울…몰타에서 떠오른 세 사람 불멸의 삶, 사랑, 예루살렘 버리고 새로운 모험 찾아 떠나
바울의 모습이 새겨진 임디나 정문. 김헌 제공
[책&생각] 신화와 축제의 땅, 김헌의 그리스 기행(20) 마지막 여정, 몰타튀니지에서의 이틀째, 안토니누스 목욕탕을 들렀다. 바닷가에 세워진 거대한 목욕탕 유적은 아프리카 북부에 찍힌 로마 문화의 흔적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오현제(五賢帝) 중 네번째 황제였던 안토니누스 피우스(재위 138~161년)가 세웠기에 그의 이름이 붙었는데, 커다란 돌덩이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지중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한가로이 풍경을 즐겼을 로마인들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광활한 목욕탕 흔적을 이리저리 다니며 상상을 했기 때문일까, 나는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고향 못 잊은 오디세우스 튀니지에서의 3박4일 일정을 마치고, 제주도 6분의 1 크기의 작은 섬나라 몰타로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세 사람의 모험을 떠올렸다. 첫번째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목마 작전을 세웠던 오디세우스였다. 10년의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오디세우스 일행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3년 동안 지중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혹독한 폭풍에 난파되어 동료들을 모두 잃은 그가 표류하다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작은 섬이 바로 몰타 북쪽에 있는 고조섬이라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에 7년을 갇혀 있었다. 분명 억류인데, 그게 좀 묘하다. 그를 붙잡아둔 이가 아름다운 여신 칼립소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처음 본 순간 반했고 함께하길 원했다. 매일이 축제였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요정들의 시중, 그리고 칼립소와의 뜨거운 사랑. 이보다 더 달콤하고 짜릿한 낙원이 또 있을까? 이런 감금이라면 대박이 아닌가!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디세우스는 모든 향락의 시간이 지나면 한밤중에 몰래 칼립소의 동굴을 빠져나와 멀리 고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참전하며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그는 사무치게 귀향을 원했다. 쾌락의 절정을 매일 누렸지만, 애타는 그리움을 잠재우진 못했다. 결단의 시간이 왔다. 칼립소는 그를 곁에 두기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대가 나와 이곳에 머문다면, 신들이 먹고 마시는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주겠다. 그러면 그대는 신처럼 영생할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생은 간절한 꿈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여신과 풍요로움이 영원히 보장된다니,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단호했다. ‘당신은 아름답고 그대와의 영원한 삶은 달콤하지만, 그래도 난 집으로 돌아가겠소.’ 그의 결단을 되새기면서, 나는 고조섬의 우뚝 솟은 바닷가 절벽에서 멀리 지중해를 바라보았다. 불멸의 삶을 버리고 필멸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 유한하기에 무한한 삶보다도 더 찬란한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이라는 듯이 그는 안락한 섬을 박차고 거친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새로운 트로이아 만든 아이네아스 두번째 인물은 아이네아스(아이네이아스)였다. 그는 10년 동안 오디세우스와 싸웠던 트로이아의 왕족이다. 목마 작전에 무너져 불타는 트로이아를 버리고 새로운 트로이아를 건설하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크레타를 거쳐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기항한 후, 그곳을 떠나 카르타고(튀니지)로 갔다. 그 항로 가까이에 몰타가 있었다. 시칠리아섬 남쪽에 있는 몰타에 아이네아스가 들른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 곁을 지나갔을 것만 같다. 그때 오디세우스는 고조섬에 갇혀 있었다. 아이네아스가 배를 타고 가다가 그 섬을 바라보고, 그 섬의 오디세우스도 아이네아스의 배를 바라보았을 것만 같다. 기약 없는 상황에서 전쟁의 승자도 패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상상은 운명처럼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렇게 몰타와 고조섬을 스쳐간 아이네아스는 마침내 카르타고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함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며 사랑과 성취를 만끽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네아스에게도 결단의 시간이 왔다. 천상의 유피테르(제우스)가 아이네아스에게 새로운 트로이아 건설을 위해 당장 디도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신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택할 것인가? 아이네아스도 떠나기로 결심한다. 사랑을 버리고 조국의 재건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향한 곳은 이탈리아반도 중부 동쪽 해안. 그가 세운 도시는 수백년 후에 로마가 되었고, 지중해 서부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세차례에 걸쳐 포에니 전쟁을 벌였다. 사랑을 나누던 디도와 아이네아스는 헤어지면서 원수가 되더니, 마침내 그들의 자손들이 사생결단의 전쟁을 치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카르타고의 영토였던 몰타는 기원전 218년에 로마의 손에 넘어갔다. 로마에 기독교 전파한 바울 세번째 인물은 신약성서의 바울이다. 서기 59년, 바울은 아이네아스의 후손이 세운 도시 로마로 가고 있었다. 당시 로마는 거대한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지중해 세계의 중심지였다. 바울은 재판을 받기 위해 그곳으로 갔지만,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바울 일행은 크레타섬을 거쳐 로마로 가던 중, 광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배가 난파되어 죽을 뻔했다. 그의 일행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가까이 몰타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바울은 3개월을 머물렀다. 단단한 요새로 조성된 작은 마을 임디나는 바울이 몰타에 온 것을 온통 기념하고 있었다. 마을로 통하는 정문 위에는 바울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난파한 배에서 빠져나온 그가 섬에 도착하여 불을 피우다가 장작에서 나온 독사에게 물리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그가 살인죄를 지어 신들의 벌을 받아 죽을 것이라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독사를 떼어내어 불 속에 던져버렸고, 그는 죽기는커녕 조금의 상함도 없이 멀쩡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그를 신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바울은 몰타섬의 총독이었던 푸블리우스의 아버지가 앓던 병을 치료해주었다. 무슨 의술을 부린 것이 아니라, 손을 얹고 기도했을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었다. 총독과 섬사람들은 그가 가르치는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신도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의 행적을 기록한 신약성서의 표현들이다. 그의 배에 닥친 폭풍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 ‘티폰’을 연상시키며, 몰타에서 그를 문 독사는 ‘에키드나’로 표현되어 있는데, 티폰의 아내 이름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그리스어로 읽던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을 테니, 그들은 바울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거대한 두 괴물을 이겨낸 위대한 ‘기독교적 영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바울은 폭풍을 이겨내며 모험에 성공한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로마의 영웅 아이네아스에 비견되었을 것이다. 우연치 않게 바울은 아이네아스와 비슷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네아스가 멸망한 트로이아를 버리고 새로운 트로이아를 건설하기 위해 ‘로마가 될 곳’으로 갔듯이, 바울은 예수를 죽임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갔고, 로마에서 기독교를 전함으로써 로마를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세우려고 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로마는 그의 순교를 바탕으로 결국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바티칸은 가톨릭의 중심지로 우뚝 서 있다. 에필로그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이집트를 거쳐 몰타까지, 두 차례에 걸친 지중해 문명 탐사의 여정을 총 20회의 글에 담아보았다. 몰타를 떠나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아이네아스와 바울처럼 로마로 갈 꿈을 꾸었다. 지중해 문명은 로마에서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세계를 괴롭히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부디 로마 문명을 탐사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연재에 마침표를 찍는다.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끝>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