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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술

“국가 성숙과 인문 복지 위해 이젠 기초학문 진흥할 때”

등록 2021-04-05 04:59수정 2021-04-05 08:25

‘기초학술기본법’ 뼈대 만든
김월회·안재원 교수 인터뷰
정청래 의원 등 10여명 최근 발의
인문사회·기초과학 지원책 담아
기초학술기본법안의 뼈대를 만든 안재원 서울대인문학연구원 교수(왼쪽)와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오른쪽)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재원 교수 제공
기초학술기본법안의 뼈대를 만든 안재원 서울대인문학연구원 교수(왼쪽)와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오른쪽)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재원 교수 제공

국가가 인문학, 사회과학 등 기초학술을 진흥하는 학술정책을 펴고 모든 국민에게 ‘인문복지’를 보장하려는 법적 체계에 관한 논의가 드디어 첫발을 뗀다. 지난달 24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인문사회 분야를 포함한 기초학술 진흥의 근간이 될 기본법이 있어야 한다”며 ‘기초학술기본법’을 발의했다.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국가 차원의 학술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근거와 체계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런 목소리에 정치권이 법안 발의로 호응한 것이다. <한겨레>는 이번에 발의된 법안의 뼈대를 만든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와 안재원 서울대인문학연구원 교수로부터 기초학술기본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 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기본법이 필요한가?

현행 법체계에도 국가가 인문사회·기초과학 분야의 학술 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학술진흥법이 있다. 그러나 김월회·안재원 교수는 “종합적 안목으로 인문사회를 포함해 기초학술 관련 모든 사항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부 학술진흥과와 한국연구재단 일부가 극히 좁은 범위의 지원사업만 맡아서 하고 있을 뿐, 기초학술 전체의 진흥을 아우를 종합적인 체계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는 과학기술 분야에 견줘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과학기술 분야는 1970년대에 뼈대를 갖춘 ‘과학기술기본법’이 있어, “정부는 과학기술발전에 대한 중장기 정책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심의를 거쳐 이를 확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자문회의가 뚜렷한 위상과 역할을 가지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과 함께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지난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24조원도 과학기술 분야(7조2천억원)에 압도적으로 많이 배정됐다.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2900억원으로 연구개발 예산의 1.2%에 불과하다.


법의 기본이념은 어디에서 왔나?

두 사람은 기초학술기본법의 기본이념을 헌법에서 길어 올렸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헌법 127조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인력의 개발을 통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하고, 대통령은 이를 위해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경제 발전 이외에 인간의 다른 활동 목적을 보장할 헌법적 가치는 없을까? 두 사람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제34조),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제22조) 등의 조항에 주목했다. 이런 조항이 국가가 기초학술을 진흥해야 할 근거라고 본 것이다.

김월회 교수는 “그동안 경제 발전에 치우쳐 소홀했던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기본법에 ‘인문복지’라는 개념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안재원 교수는 “과학기술기본법이 개발 중심의 성장을 추동하는 ‘입국’(立國) 구실을 했다면, 이젠 기초학술기본법이 보편적인 문명과 문화를 성숙시키는 ‘경국’(經國)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법안은 “기초학술은 국가의 성장과 성숙의 기반이자 미래경영의 원천”이란 규정을 마련했다.


‘인문복지’의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까?

이번 법안엔 “모든 국민이 평생복지 차원에서 차별 없이 인문을 활용하고 누릴 권리”인 ‘인문복지권’을 명시했다. 이를 위해 법안은 국가가 기초학술 진흥에 관한 중장기 정책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도록 했다. 또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 ‘국가기초학술심의회’(심의회)가 이를 확정한다. 심의회는 국무총리 산하에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조직이다. 이렇게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고 평가할 ‘국가기초학술진흥원’도 만들도록 할 방침이다.

김월회 교수는 “그동안 인문사회·기초학술 분야의 지원이라는 것은 어려우니 도와준다는 ‘구호 사업’ 성격이 강했다. 기본법 제정으로 안정적인 학문의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원 교수는 “당장 대중의 눈에 표가 나긴 힘들겠지만, 한국 사회가 가진 정신의 근육을 강화해주는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을 둘러싼 학계의 움직임은?

기초학술기본법 제정 발의가 자칫 ‘찻잔 속 태풍’이 되지 않도록, 학계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학술단체들과 학장협의회가 대거 참여하는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가 출범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정책 협력을 하는데,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처음으로 이런 단체가 꾸려진 것이다.

안재원 교수는 “‘우리가 왜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가’를 점검해야 할 시기”라며, 법 제정이 ‘좋은 나라’로 가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월회 교수는 “개인에게 전가했던 학문과 학술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는 것이 이번 작업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다만 “기초학술이 국가주의 또는 시장주의에 포섭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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