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학교 정치학부 교수인 제임스 스콧은 예일대 농학부의 공식 창시자이자 인류학자, 정치학자다. <농경의 배신> <국가처럼 보기> 등을 통해 인류문명과 국가주의를 비판해왔다. ‘책과함께’ 제공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내가 깊이 공감하는 것은 제임스 스콧이 말하는 ‘농경의 배신’이다. 농경 자체는 완전한 인공생태계로, 채집경제에 견줘 밀집해서 사는 초기 농부들의 생활양식이 끌어들인 진드기와 곤충부터 쥐와 고양이, 참새와 비둘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이 전염병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특히 적합한 미생물로 인한 모든 전염병은 실제로 지난 1만년 동안에만 발생했고, 그중 많은 수가 지난 5천년 동안에만 발생했다. 따라서 수천년 전에 전염병을 일으킨 조건과 21세기에 발생하는 현상(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현재의 유행성 질병 등) 사이에는 명백한 유사성이 있다. 현저하게 다른 점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 인구에 영향을 미친 범위, 규모 및 속도다. 이는 인간 중심의 산업자본주의 문명, 특히 최근의 ‘세계화’ 때문이다.
스콧은 <농경의 배신>에서 인류가 수렵·채집민의 유목생활에서 농경에 의존하는 영구적 정착생활로 이행한 것이 진보, 문명과 공공질서, 건강 증진과 여가라는 혜택을 주었다고 본 종래의 문명사를 완전히 뒤집어 도리어 농경화가 인류에게 완전한 재난이었다고 주장한다. 최근 유발 하라리가 농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이라고 본 것과 통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스콧은 역사를 ‘길들이기’ 과정이라고 보는 점에서 하라리와 다르다. 처음에는 불, 이어 식물과 가축, 그리고 국가의 국민과 포로, 마지막으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여성 등을 길들이는 과정이 역사라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형성과 유지 및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은 소수의 지배층을 제외한 다수 국민에 대한 자유의 제한, 실질적 삶의 질 악화 내지는 생존 자체의 위협이었다고 본다.
특히 쌀, 밀, 보리 등 소수의 곡물들이 인류 대부분의 주식이 될 만큼 주요 작물로서 광대한 경작지에서 집중적인 노동력 투입을 통해 재배되어온 까닭은 안정적인 조세 수입과 인력 동원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될 수 있는 국가의 강제 때문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그런 통치술을 감추기 위한 꾸밈말이었을까? 홉스와 로크 같은 사회계약 이론가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한 국가의 비전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을까? 그렇다면 동서양의 학문이라는 것은 모두 국가주의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스콧은 더 나아가 국가가 유발한 빈곤, 세금, 속박,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변방으로 도주한 정치적·경제적 난민, 즉 비국가적 민족을 야만인 등 부정적으로 보기는커녕 ‘길들이기’에서 벗어나 수렵·채집민의 전통을 잇는 건강한 인류로 긍정한다.
반전운동, 아시아 현장조사
<농경의 배신>은 예일대학교 정치학부 교수인 제임스 스콧이 2017년 81살에 쓴 60여년 연구의 총결산이라고 할 만한 대저다. 그는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이고 예일대 농학부의 공식 창시자이자 저항 연구의 비공식 창시자다. 그는 46에이커, 즉 6만평 정도의 농장에서 소와 닭과 벌을 반세기 이상 키우며 살고 있는데, 이러한 농장 경험이 학문의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평생 농사를 지었기에 학문도 조금은 나은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양털깎기 실력을 자랑하며 저서에도 ‘예일대 교수’가 아니라 ‘양봉인’이라고 쓴다. 그 100분의 1인 600평 밭을 감당하기도 힘든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1년 내내 잡초와 씨름하며 기껏 푸성귀만 가꾸고 열댓마리 닭을 가둬놓고 키우는 신석기인인 나와 달리 그는 구석기인처럼 동물들을 그냥 방목하니 더 건강할 것 같기도 하다. 농장에 있는 그의 집이 19세기 초에 지어진 고저택인 점도 스무평 내 집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른 점은 나도 ‘농부’라고 자처하고 싶지만 흉내만 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 못 쓴다는 점이다.
그는 의사의 아들로 필라델피아 외곽의 퀘이커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970년대 초 위스콘신대학교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학자에게는 ‘경력을 죽이는’ 짓에 불과한 2년간의 현장조사를 위해 가족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베트남에 관심을 가지고 농민들이 권위에 저항하는 방식에 대한 최초의 저서인 <농민의 도덕경제>를 1976년에 발표했다. 농민들의 ‘도덕경제’라는 전통적 형태의 연대가 식민지 이후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도입되면서 무너지고 국가정치로 점점 통합되는 과정을 비판한 이 책은 30년이 지난 2004년에 스콧의 저서로는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되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어 자신의 이론을 세계 다른 지역의 농민들에게까지 확장시켜 농민을 비롯한 무력한 사람들이 중앙집중식 국가통제를 위협하기 위해 직접적인 대결보다는 회피와 계략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한 <약자의 무기>(후속 저서인 <지배와 저항의 기술>과 함께)를 썼지만, 저항 연구의 성경이라고 불리는 이 두권의 책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못했다.
2007년 미얀마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있는 제임스 스콧 교수. 후쿠오카 아시아문화상 위원회(Fukuoka Prize Committee) 제공
1998년에 출판된 <국가처럼 보기>는 소련의 집단농장이나 미국의 산업 영농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의 강제 촌락화나 남미나 인도의 신도시 건설과 같은 국가에 의한 하향식 사회계획에 대한 근본적 비판인데 한국에서는 2010년에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사회학자에 의해 번역되어 스콧을 같은 계열로 오해하게 만든 점도 있다. 그러나 스콧은 그 앞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화전민이나 이동 경작을 하는 농민이 넓게 퍼져 생활하는 비국가적 공간이 국가적 공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비판하고, 농업을 산업으로 대체해야 한다거나 농민을 노동자로 대체해야 한다는 경제발전론을 따르지 않는다. 국가개발이 내세우는 사회복지 담론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언제나 비국가적 자원이었던 과거의 공동체를 거의 항상 파괴하거나 분열시켰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가가 지역 고유의 다양한 삶을 표준화하고 단순화하는 파괴에 맞서 국가처럼 보지 말고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중앙집중화되고 상품화된 삶에서 벗어나 자치와 자급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전면 부정 안 하는 아나키스트
스콧이 2009년에 출판한 <지배당하지 않는 기술: 동남아시아 고지대의 아나키스트 역사>는 우리말로 2015년에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로 번역되었는데,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타이, 버마(미얀마), 중국에 걸친 조미아라는 고지대 주민들이 지난 2천년 동안 국민국가의 지배를 피한 기술을 산악지대에 흩어져 사는 것과 화전 경작, 구전문화의 유지 등에서 찾는다.
스콧이 2012년에 발표한 <아나키즘을 위한 두 번의 응원: 자율성, 존엄성, 의미 있는 일과 놀이에 관한 여섯 편의 쉬운 에세이>는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라는 제목으로 2014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스콧의 아나키즘은 그가 공상적 과학주의라고 부르는 전통적 아나키즘과 달리 국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오랫동안 주장한 ‘길들이기’에 대한 거부임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 ‘길들이기’가 신원 확인을 위해 아버지 성을 따르게 한 것을 비롯하여 조세, 법원, 토지, 징병, 경찰, 학교, 공장, 표준어, 가족, 심지어 신호등 등등이었고, 최근에는 유전자(DNA)니 폐회로티브이(CCTV)니 하는 감시와 통제 장치로 더욱더 ‘발전’하고 있다. 스콧은 그런 타율성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제대로 바꾸려면 ‘아나키즘은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상식이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 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