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아이의 아버지인 자식 부자 드미트리(오른쪽)와 이론찌가 잡은 늑대를 들고 웃고 있다. 시베리아 늑대는 특히 덩치가 크고 사납다. 공원국 제공
타이가에 들어온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동상 입은 발이 부어올랐다. 올가 할머니가 장난기 섞인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안 얼어 죽었어?”
“더워서 죽을 뻔했는데요.”
그 후로 아침에 일어나면 듣는 인사가 “잘 잤니”가 아니라 “안 얼었니?”로 정해졌다.
마리야 할머니가 건네준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지만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냈다. 남자들이 썰매를 타고 순록몰이에 나갈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였지만 끙끙대며 누워 있어야 했다. 오른발의 감각은 여전히 없었으나 발가락 움직임의 폭은 커졌다. 지금은 이것이 가장 순수한 기쁨이다. 꼼짝없이 누워 있자니 마리야 할머니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온다.
“지금 한국과 북한은 친하냐?”
“아니요. 좀 틀어졌죠.”
우리 ‘형제’들의 불화 소식은 타이가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다.
사슴 가죽에 누워 낮은 천장을 올려다본다. 이곳에서는 집이 작아야 한다. 작지 않으면 이 작은 화로 하나에 기대어 겨울을 날 수 없다. 집이 커지면 화로도 커져 더 많은 나무가 필요하고, 나무를 구하자면 순록을 더 부려야 한다. 순록도 생명이라 너무 부리면 마르고 요절한다. 게다가 집 주위의 나무를 다 베면 바람이 덮친다. 바람이 강해지면 또 순록이 마르고 따라서 사람이 가난해진다. 심지어 예전 툰드라의 부족들은 얼굴에 달라붙은 모기도 잘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모기를 때리면 순록에게 몰려가 다 뜯어먹어 버릴 거라고. 이 깊숙한 타이가는 에벤키의 삶의 근본이지만 새부터 곰까지 만중생이 공유(公有)하는 땅이다. 현대인들 중 에벤키야말로 공유의 의미를 가장 완벽하게 체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덫에 걸린 어린 늑대를 잡아먹는 늑대들
그들이 세상 가장 춥고 가장 깊숙한 숲으로 들어간 것은 순전히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원래 이들은 바이칼호 부근의, 상대적으로 덜 혹독한 환경에서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틈틈이 순록을 키우고 살았다. 그러나 투르크계의 이동에 밀리고, 이어 모피에 혈안이 된 차르와 그 용병 코자크(카자크) 도적떼에게 약탈당하고, 간선도로를 따라 세워지는 러시아인 거주지들과 그들이 퍼뜨리는 질병에 놀라고, 적군 백군 할 것 없이 순록과 가죽을 약탈해 가는 내전의 파도에 쫓겨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자유를 추구하는 것에 관한 한 지구상의 어떤 족속도 그들을 당할 수 없으리라. 자유에 위협이 느껴질 때 그들은 순록이 끄는 가벼운 썰매와 순록 가죽을 댄 넓은 스키를 타고 더 혹독한 땅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언제나 무리 없이 그들을 받아준 곳이 이 깊은 숲이다.
1930년대 소련은 ‘원시 공산주의적’이던 이들의 삶을 부수어 ‘현대적인 공산주의’를 건설하고자 강제집단화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마저 숲속에 있는 이들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름뿐인 협동농장에 소속됐으나, 숲속에서는 여전히 그들의 방식을 따랐다. 그들은 예전부터 백인 공산주의자들보다 훨씬 공산주의적인 삶을 살아왔다. 타이가에서는 본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배타적인 소유도 없다. 특히 생계가 걸린 사냥과 순록치기는 반드시 짐승과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얻은 것을 똑같이 나눴다. 지금도 여기는 발동기 공동체, 우물 공동체, 방목·도축 공동체이자 음식물 공동체다. 여기에 무슨 쿨라크(부농. ※당시 계급투쟁 와중에 타도의 대상이었다)가 있단 말인가? 멀리 서쪽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땅에서 수백만이 굶어 죽을 때도 그들은 숲속에서 근근이 버텼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리 궁핍할 때도 숲의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지금 이 땅에서는 또다시 공존을 시험하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타이가의 이용권을 두고 벌이는 늑대와 인간의 싸움이다. 에벤키는 구수한 이야기로 이 투쟁을 풀어낸다.
타이가에서는 본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배타적인 소유도 없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얻은 것을 똑같이 나눴다
에벤키는 저들과 대결하면서도
타협점을 찾아낼 적임자다
그들은 수천년 숲속에서
늑대와 함께 살아온, 슬픔도
이야기로 녹여내는 사람들이다
턱없이 빨리 찾아와 끈질기게 물러가지 않는 타이가의 흑야. 예전 이곳의 어머니·할머니들이 아이들을 재우고 어르는 유일한 방법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어머니나 할머니라면 인기도 훨씬 없었을 테고. 이야기를 각색하고 전하느라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할머니들은 할 일이 있었으니 치매 따위에 걸리기도 참 어려웠으리라. 곰과 순록과 늑대와 담비, 이야기의 주인공은 거의 짐승들이었다. 통증을 가라앉히고자 누워서 두 어머니들의 삶을 관찰하며 드문드문 늑대 이야기를 들었다. 다섯 시, 날이 어두워지자 올가 어머니는 손바닥만한 창 밖을 내다보며 투덜거렸다.
“왜 아직도 안 와. 어두운데, 얼어 죽었나.”
그러다 향도 순록의 방울 소리가 들리자 어머니는 만들어놓은 음식을 서둘러 화로 위에 올린다. 순록치기들이 돌아오니 오두막이 부산해지고 늑대 이야기도 활기를 띤다. 근래에 엄청나게 늘어난 늑대는 순록치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모두들 지나가며 한마디씩 거든다.
“근데 늑대는 순록을 공격할 때는 이놈을 물어 죽이고 또 저놈을 죽이고, 근데 먹지도 않아. 너무 늘었어. 떼로 몰려다녀.”(올가)
“최근에 순록이 많이 희생되었나요?”
“많지. 여름에는 곰, 겨울에는 늑대. 세지도 못해.”(올가)
실상 곰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수도 적을 뿐 아니라 대량 살상은 하지 않으므로. 진중한 바실리 아저씨는 늑대 사냥의 고수지만 씽긋 웃기만 할 뿐 좀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항상 “밤에 이야기해줄게” 그 소리뿐이다. 사냥꾼에게 늑대 이야기는 여전히 일종의 금기다.
“늑대는 하룻밤에 80㎞를 이동해. 게다가 엄청나게 똑똑하지.”(이론찌)
“여기 있는 동안 늑대를 볼 수 있을까?”
“원국, 네가 본다고? 너보다 훨씬 똑똑하다니까. 그리고 동상 걸린 다리로? 가끔 소리만 들으라고.”(이론찌)
이론찌는 내 동상 발을 가지고 또 놀린다.
“늑대는 잔인하고 강해. 한 살짜리 어린 늑대가 덫에 걸리면 다른 늑대들이 와서 먹어버려. 새끼를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거지. 큰 늑대는 덫에 걸리면 자기 다리를 물어뜯고 달아나.”(이론찌)
에벤키의 귀중한 사냥감인 엘크는 늑대의 중요한 먹이다. 잡은 엘크를 앞에 두고 웃고 있는 마을 사람들. 공원국 제공
“늑대 한 마리 잡는데 상금 4만루블을 줘”
늑대가 덫에 걸린 어린것을 먹거나 자기 다리를 물어뜯고 탈출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이론찌는 사실 늑대 사냥을 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바실리는 이론찌가 말할 때 웃기만 했다. 다행히 일곱 아이의 아버지인 자식 부자 드미트리는 경험도 많고 말도 많다.
“늑대는 정말 얼마나 영리한지 몰라. 항상 지그재그로 달아나. 이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틈에 저쪽으로 달아난단 말이야. 이번 봄에 사냥할 때도 몇 번이나 속았는지. 더 달아나기 힘들다 싶으면, 아주 가까운 거리가 되면 거꾸로 튀어올라 공격해, 휴.”(드미트리)
“늑대 문제가 정말 심각해. 지금 정부에서 늑대 한 마리 잡는데 상금 4만 루블을 줘. 늑대 가죽은 3천 루블, 송곳니는 1천 루블이야. 이렇게라도 줄여 보려는 거지.”(이론찌)
2013년에 늑대 무리가 순록 수백 마리를 몰고 가다 그중 백 마리를 절벽으로 몰아 죽인 사건이 지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늑대 집단은 급속도로 커졌고 집단의 행동 양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확실했다.
“늑대 사냥은 조심해야 돼. 놓치면 복수를 해. 절대 잊지 않는다고.”(드미트리)
에벤키 사냥꾼들은 늑대는 분명 복수를 하고 복수심을 새끼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을 복수하는 것일까? 소비에트 시절 무차별 독살로 숲에서 거의 종적을 갖췄던 조상들의 죽음을 앙갚음하는 것일까? 멸종 위기에 처했다가 증식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젊은 늑대들이 사냥의 규칙을 벗어난 것일까? 늑대의 말을 해독할 수 없으니 확신할 수 없지만, 우두머리들이 살해된 코끼리 집단이 세대 간 지식 전파에 실패해 아노미에 빠지는 것을 보면, 코끼리만큼 똑똑한 늑대 집단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늑대 집단은 분명 인간이 보기에 복수로 볼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에벤키는 숲속에서 늑대와 경쟁할 수밖에 없다. 에벤키의 귀중한 사냥감인 엘크(말코손바닥사슴)는 늑대의 중요한 먹이다. 그러나 이제 늑대는 엘크까지 먹지 않고 죽인다고 한다. 소비에트 시절 행정관들이었다면 독극물을 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벤키 순록치기들은 시간을 믿고 있다. 전통적으로 그들은 인간이 만든 문제는 인간이 해결하고 자연의 일은 자연에게 맡겨두자고 말해왔다.
“예전에는 큰 존재들은 이름도 안 불렀어. 늑대도 곰처럼 강하고 크지. 곰은 숲의 주인, 늑대는 숲의 치료사라 불러.”(이론찌)
늑대와 곰은 인간의 반열에 오른 존재다. 그들은 미울 때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타이가 공동체의 일원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늑대는 분명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이들이다. 원래 그들은 식물과 초식동물 사이, 야생동물과 가축 사이의 균형추 노릇을 해왔고 병든 개체와 설치류를 죽여 전염병을 막는 구실도 했다. 그러나 지금 숲의 치료사는 혹독한 과잉진료 행위를 하고 있다. 언제 이 행동이 끝날까? 하지만 시베리아에서 늑대의 복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무려 100년 전 차플리츠카는 이렇게 썼다.
‘툰드라 코랴크인들은 늑대를 거대한 순록떼를 거느린 툰드라의 주인이자 강력한 샤먼이며 사악한 영이라고 믿는다. 늑대는 자신을 사냥하는 이에게 반드시 복수한다고 했다. 그래서 늑대를 잡으면 반드시 순록 한 마리를 잡아 희생으로 바치고 밤새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늑대를 달랬다. 죽은 늑대의 친척들이 복수를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 또한 늑대에게 특별한 음식을 먹이고, 순록을 공격하지 말라는 의식을 시행하며, 늑대의 명복을 빌었다.’
예전에도 늑대는 분명 곰보다 덜 친근하면서도 더 난폭하고 무섭기에 경외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정교한 ‘복수 예방 의식’이 있는 것을 보면 늑대의 정교한 복수행위는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도 어떤 샤먼들은 강력한 늑대의 영의 힘을 빌려 사악한 영과 질병을 공격하는 주문을 왼다.
타이가는 에벤키의 삶의 근본이지만 새부터 곰까지 만중생이 공유하는 땅이다. 이웃에 팔려가는 순록을 썰매에 실었다. 공원국 제공
유독 왜 ‘큰 것’들이 사라졌을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늑대와 순록치기의 싸움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가족과 다름없는 순록을 잃은 이들은 생계가 막막하다.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인간도 늑대에 대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 초자연적이리만치 강한 짐승도 생태계의 일원이다. 에벤키는 저들과 대결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켜보는 타협점을 찾아낼 적임자다. 그들은 수천년 숲속에서 늑대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며 슬픔도 이야기로 녹여내는 사람들이다. 그 옛날 선조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늑대의 분노를 조절하고 다른 방향으로 돌릴 방도를 찾아낼 것이다. 술 한 방울 없이 이야기의 밤은 조용히 깊어갔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자 에벤키는 한때 그들의 삶을 옥죄었던 보드카의 유혹에서 벗어나 절주규정을 만들었다. 이제 밤은 더 깊어 손바닥만한 디브이디(DVD)플레이어를 켤 시간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드라마에 빠져들 때 나는 사슴 가죽 위에 누워 가만히 우리 숲에서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호랑이와 표범은 아주 일찍 떠났고, 늑대가 가고 곰이 사라졌다. 큰 사슴은 없고 산양은 깊은 산중으로 숨었다. 담비, 구렁이, 솔개…. 크고 강하거나 빠른 것들은 예외 없이 사라졌다. 나무가 우거져도 곰도 늑대도 없는 숲은 그 안에서 살며 우러러볼 대상이 아니라 도시생활자들의 주말 소비품이 되었다. 유독 왜 ‘큰 것’들이 사라졌을까? 큰 것들은 고립된 국부 세계가 아니라 촘촘하게 연결된 광역 세계, 즉 우리가 생태계라고 부르는 전체 안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 천 개를 모아도 숲이 될 수 없듯이 전 국토가 인공물로 토막토막 나뉘고 휴전선 철책까지 더한 곳에서 어떻게 연결된 세계를 구상하랴. 도심의 대저택 정원에는 나무가 소담스럽건만 우악스러운 담장을 둘러치고 보안업체 로고가 붙은 출입구 하나만 두었으니 아예 요새다. 없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이 가진 이조차 생태계는커녕 인간계로부터 고립된 섬, 꽃과 나무가 심어진 사유(私有)의 감옥 속에서 살고 있지나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