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속에서 소똥을 옮기는 일은 분명 힘든 노동이건만 힘센 당나귀 썰매 덕분에 에센 아저씨의 세 딸에겐 놀이로 바뀌었다. 막내 굴지라가 썰매에 타고 굴다르는 당나귀에 올라타 몰며 필바르는 따라가며 장난을 친다. 윤성제 제공
사람들은 “왜 유목을 이야기하면서 짐승 이야기를 늘어놓느냐”고 묻는다. 실은 나는 산과 물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잠시 양보해 짐승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목이라면 페르시아 제국을 희롱하던 스키타이 군단이나, 폭풍처럼 나타났다 중국제국을 강타하고 사라지던 흉노, 세계를 정복한 칭기스칸의 몽골의 기마군단, 혹은 티무르나 아틸라 같은 무자비한 학살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사마천이나 헤로도투스 이래 혹은 모든 정주세계 역사가들의 기록은 반쪽에 불과하고, 심지어 고고학적 유물도 관념의 여과막을 통과하면 반쪽만 남을 뿐이다. 유목을 이야기하며 역사로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유목세계가 정주세계에 어떤 위협도 주지 못하는 삶을 연구하는 지금, 초원에 사는 사람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사라진 정복자들을 목놓아 부르는 것이 그렇게 화급한 일인가?
인간의 수많은 행동 중 전쟁,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제국에 모든 이야기를 종속시키면 이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은 꼬리를 감춘다. 무엇보다 유목은 물과 풀과 가축이 인간의 행동과 결합된 총체적인 경제-문화 형태였다. 지금껏 지극히 정형화된 묘사 속에 숨겨져 있다가 지금 막 드러나는 순간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슬 같은 운명에 처한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이제 관점을 바꿀 때가 되었다. 초원은 인간이 발을 들이기 전에 존재했고 짐승이 깃들었으며 인간은 마지막으로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다. 초원을 인간의 품으로 안긴 두 ‘탈것’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온전히 정당하다.
에센의 딸 필바르가 송아지를 돌보고 있다. 에센의 집은 바람 부는 언덕에 자리잡았다. 윤성제 제공
힘이 너무 세고 참을성이 많아 슬픈 짐승
8월25일 늦여름 해 질 무렵 계곡을 나서는 중이었다. 낮에 얼음이 녹아서 저녁 무렵에는 물이 크게 불어났다. 어렵사리 물을 건너 오르막을 오르는데 오른편 언덕 위에서 꼬마 아가씨 셋이 손짓 발짓을 섞어 우리를 불러댄다. 왜 주인은 저 바람 부는 언덕에 자리를 잡았을까? 바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일까? 언덕을 올라 유르트로 다가갔다. 해가 지는 중이었으므로 잘 곳이 필요했다.
우리를 부른 녀석들은 딸부자 에센 아저씨의 막내둥이 굴지라와 두 언니 필바르, 굴다르였다. 여름이지만 저녁이라 눈발이 섞인 빗줄기가 내리는데, 녀석들은 당나귀가 끄는 양철 썰매로 소똥을 나르고 있었다. 초원에서 소똥은 밤을 덥히고 음식을 조리하는 귀중한 연료다. 연기도 그을음도 없이 은근히 타는 소똥은 꼭 자기 어미인 소의 심성을 닮았다. 소똥은 벽돌처럼 떼어내 차곡차곡 쌓아 말린다. 우리에서 밟히고 밟혀 돌처럼 굳은 소똥을 떼내는 일은 상당한 완력이 필요한지라 나와 성제가 달려들었다. 물론 이 소소한 노동을 빌미로 숙식을 해결할 요량이었다.
세 아이는 비바람 속에서 소똥을 옮기고 쌓으면서 논다. 분명 힘든 노동이건만 당나귀 썰매 덕분에 놀이로 바뀌었다. 굴다르는 당나귀에 올라타 몰고 굴지라는 썰매에 타고 필바르는 따라가며 장난을 친다. 썰매는 누렇게 마르기 시작한 풀 위를 미끄러지듯 자연스레 오갔다. 한데 당나귀 이 짐승의 힘은 끝이 있는 걸까? 나는 고원이라 삽질 몇 번이면 숨이 차는데 녀석은 한 명을 등에 태우고, 소똥 더미와 아이 하나를 썰매에 태우고 오르막을 오갔다. 덕분에 쉽사리 무거운 것을 나르고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지만, 비바람을 맞아가며 용을 쓰는 놈이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당나귀는 사람처럼 감성적이고 영리하다. 그러나 그저 힘이 너무 세고 참을성이 많아서 슬픈 짐승. 성제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제 관점을 바꿀 때가 됐다, 초원은
인간이 발을 들이기 전에 존재했고
짐승이 깃들었으며, 마지막으로
인간이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다
그림에는 엄연한 순서가 있었다
산이 먼저 오고 물까지 오고 나서야
사람이 오고 불이 왔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가축들에 기대어 산다
초원에서 소똥은 밤을 덥히고 음식을 조리하는 귀중한 연료다. 고원이다 보니 소똥을 떼어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는 삽질 몇번에 숨이 찼다. 윤성제 제공
“마호메트는 왜 당나귀를 더럽다고 묘사했지? 이슬람을 존중하지만 당나귀를 그렇게 묘사한 것은 인정할 수 없어.”
“그러게요. 제들끼리 싸울 때는 좀 방정맞지만.”
녀석은 타고난 능력자다. 무게는 말의 3분의 1에 불과한데 힘은 버금이고 훨씬 적게 먹는다. 양순해서 어른은 고사하고 아이들에게도 대들지 않는다. 되새김질도 안 하니 낮에는 종일 일하고 밤에 풀을 뜯겨도 되고, 양처럼 멀리 가지 않으니 굳이 돌볼 필요도 없다. 사람을 태우고 좁을 산길을 다닐 때는 말보다 유연하다. 게다가 오래 살며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메소포타미아의 군주들이 처음 말을 탈 때 고문들은 간절히 충고했다고 한다.
“전통을 따라 당나귀를 타세요. 왕께서 말처럼 더러운 짐승을 타다니요.”
유목지대의 값싼 보물. 어둠이 내리자 그놈은 이제 휴식을 얻어 유르트 주위에서 풀을 뜯는다. 멍에를 풀고 설산을 배경으로 풀을 뜯는 녀석의 모습이 그제서는 자못 당당했다. 나는 놈에게 천국의 자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성제가 말했다.
“정말 동물을 위한 천당이 있으면, 저놈은 분명 그곳으로 들어갈 거예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매일 두들겨 맞으니.”
유르트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이 왜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갈대 다발로 촘촘히 유르트를 두르고 그 위에 스스로 누벼 만든 양모 펠트를 둘렀다. 화로에 소똥이 소리 없이 타들어가면 내부는 더없이 아늑했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공간은 아니지만 이 모전 천막은 초원에서 무적이다. 종으로 내리누르는 바람이든 횡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이든 차별 없이 둥근 이 천막을 만나면 표면을 스치며 흘러갈 뿐 뼈대를 범접하지 못한다. 막내 굴지라는 손님들을 위해 서슴없이 연필을 휙휙 놀려 그림을 그려주었다. 꼬마의 그림은 그들 세계의 형성 과정과 실상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태초에 산이 있었다. 그 산에서 물이 나왔고 유르트와 길이 생겼다. 사람들은 유르트 안의 난로에 만족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화톳불을 피웠다. 사람들은 산과 물과 가축이 있는 곳에서 밤에도 그들과 함께했다.
그림에는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순서가 있었다. 산이 먼저 오고 물까지 오고 나서야 사람이 오고 불이 왔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가축들에 기대어 산다. 양고기와 쌀을 섞어 만든 요리와 야생 버찌로 만든 잼에 치즈까지 잔뜩 먹고 누웠다. 유르트 안의 불이 꺼진 밤, 이 밤에야 자유를 얻는 두 짐승을 생각했다. 당나귀와 말, 낮에는 일하고 사람을 태워야 하는 두 짐승.
유목지대에서 지내자면 당나귀를 넘어 말타기를 배워야 한다. 이놈을 이해하면 이 세계의 내력을 알아낼 수 있을 터인데, 이해하자면 살을 비비며 친해져야 한다. 우리는 산을 내려와 말과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우리는 트레킹 안내자 마므르를 찾아 말을 빌리고 사리모굴을 스케치하기로 했다. 나는 등이 넓은 검둥이를 골랐다.
에센의 유르트 천장. 갈대 다발로 촘촘히 유르트를 두르고 그 위에 스스로 누벼 만든 양모 펠트를 둘렀는데, 내부는 더없이 아늑했다. 윤성제 제공
우둔하지만 꽤나 문화적인…
절벽이 아니라면 말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검둥이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속 보이지 않는 지면을 발굽으로 더듬어 건넌다. 육중한 덩치를 이끌고 널빤지 한 장 폭의 좁은 길을 갈 때도 네 다리를 붙일 한 뼘 땅만 있으면 녀석은 넘어지지 않는다. 녀석의 힘은 사람이 제어할 수 없어서 재갈을 물릴 수밖에 없지만 주인은 고삐를 함부로 당기지 않는다. 말이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놈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친하게 지내려면 녀석을 이해하고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한다. 걸핏하면 질주하는 놈, 웬만해서 움직이지 않는 놈 등 모두 개성이 있다. 그래서 말타기는 일대일의 매우 개인적인 접촉이다. 내 검둥이는 옆구리를 차도 슬금슬금 뛰며 내 말을 대개 무시했고, 영민해서 고삐를 잠깐만 늦추면 보리를 휘감아 올려서 재갈을 문 채로도 솜씨 있게 씹어댔다. 허리로 충격을 흡수하며 말과 함께 굼실대야 한다. 세상에 느긋한 말은 있지만 느린 말은 없다. 마지막 구간인 언덕을 오를 때 검둥이는 등에 붙은 성가신 녀석을 떨쳐버리겠다는 듯 힘을 과시하며 질주했다. 고속 엘리베이터에 탄 기분으로 말안장에 매달려 비탈을 오르자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용케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놈을 다시 봤다. 마므르는 이 검둥이를 특히 아꼈다.
“내년에 암말을 사서 검둥이와 함께 산에 풀어놓을 겁니다. 빠르지 않지만 힘이 좋고 순해서 사람을 잘 떨어뜨리지 않거든요. 하루 종일 걸을 때는 이놈이 제일 강해요.”
내년이면 녀석은 장가를 갈 것이고 안장을 내린 채 초원에서 신혼을 보낼 것이다.
서기전 4000년 전 흑해 초원 데레이프카, 혹은 그보다 약 500년 후 카자흐 보타이 초원에서 처음 말을 길들였다고 한다. 이 짐승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유목 문명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에 걸친 최초의 세계제국인 페르시아는 바로 이놈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말 위에서 활을 쏘며 싸우는 시절은 끝났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초원에게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 말은 당나귀보다 우둔하지만 꽤나 문화적인 동물이다. 문화적인 동물이 있다고? 말은 분명 문화적이고 감탄을 자아내는 동물이다. 하루만 함께 보내면 녀석에게 동화된다. 고삐를 푼 말은 새끼가 누워 있을 때 암수가 함께 둘러싸고 보호한다. 누운 새끼를 둘러싸고 꼿꼿이 서서 망을 보는 어른 말들의 모습은 영험스럽다. 이런 행동 덕분에 초원에서 말떼는 자기들만의 자그마한 공화국을 누린다. 목동은 말을 믿기에 안장을 내린 말을 성가시게 하지 않고 밤에도 우리에 넣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보호하며 자치를 행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행동은 으레 본능으로 치부하지만 그들의 행동도 대부분 문화다. 젖을 먹고 누워 쉬는 것은 본능일지 모르지만, 젖을 먹이고 누워 있는 새끼들을 여럿이 보호하는 것은 명백히 배운 것이요, 본능이 아니라 문화다. 그들의 문화는 문자로 기록되지 않고 오직 행동에서 행동으로 전해지기에 깨지기는 쉽지만 새로 구성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더 고귀한 문화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리모굴의 한 소년. 말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유목 문명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윤성제 제공
키르기스인들이 마유주를 숭배하는 이유
처음 말에 올라탄 사람의 심정은 어땠을까? 초원에서 가장 강한 힘을 길들이는 그 순간. 그러나 바로 그날 이후로 말도 사람을 길들였다. 말이 살기 좋은 곳은 인간이 살기에 가장 어려운 곳이다. 바람을 막을 나무도 없는 혹독한 추위와 변덕스러운 날씨가 기다리는 북방의 초원, 말에 안장을 올리는 순간 사람도 초원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셈이다. 녀석의 복잡한 생리를 익혀야 다가갈 수 있고 그 리듬에 맞춰야 달 수 있기에, 말은 태워주고 사람은 보호하며 대개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길들여졌다. 유목민이 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사람이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사람을 태우는 듯하다. 이리하여 말과 사람이 하나 된다 해도 지형의 굴곡을 거스를 수 없으며 심지어 바람도 거스를 수 없다. 사람은 말과 함께 초원의 바다 위를 흐르는 동지다.
역설적으로 안락한 온대의 도시에 살며 말과 멀어질 대로 멀어진 지금, 우리는 오히려 더 열심히 말을 흉내 낸다. 가장 정교한 규칙을 가진 스포츠는 대개 달리는 말 흉내내기다. 힘과 속도와 방향전환은 현대 스포츠의 특징이다. 말 등에 올라타기 전에 사람은 속도 경쟁을 하지 않았다. 말에 올라타고 말이 끄는 살 달린 바퀴를 개발하면서 인간은 사냥을 전쟁의 영역에 돌입했다. 현대 스포츠는 바로 사냥과 전쟁을 규범 아래 종속시킨 것이다. 말의 잘못은 아니로되 어느 날 말은 살코기 공급자에서 전쟁 무기로 바뀌어 인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앞으로 1년 후 처음 안장을 올리는 신참 말을 마음대로 다룰 때까지 말을 타련다.
내 몸의 일부가 말의 근육과 동화될 때 초원 이야기의 한 끝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장이 마유주에 익숙해지자 나는 마유주를 숫제 들고 다니며 먹었다. 이처럼 귀한 음식을 물처럼 마실 수 있는 곳은 세상에 다시 없을 테니까. 이것을 계속 먹으면 고원에서 말처럼 뛰어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기대마저 가지고서. 그러다 하산 길 비슈케크의 여관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여관 안에서 자꾸 부풀어 오르는 마유주 통이 내내 불안했다. 혹시라도 폭발할까봐 살짝 뚜껑을 열어 김을 빼려는 순간 마유주는 뿜어져 나왔다. 탄산음료 백 개를 한꺼번에 터트리는 듯 제어할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여관 방 전체가 마유주로 도배되고 말았다. 말은 제 젖에도 힘을 숨겨놓은 것일까? 고인들이 이 음료를 숭배한 이유를 알겠다. 지금도 키르기스인들은 땅에 이 신성한 음료를 떨어뜨리는 것을 죄악시한다.
내 몸의 일부가 말의 근육과 동화될 때 초원 이야기의 한 끝을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 윤성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