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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그의 기타스킬 따라올 자 없었다

등록 2018-01-26 16:46수정 2018-01-26 19:32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속주 기타리스트(1) 잉베이 말름스틴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끼리 묻고 답하던 고색창연한 질문이 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는? 이런 질문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마는, 에릭 클랩턴, 지미 페이지(레드 제플린), 제프 벡을 꼽는 것이 정설이었다. 셋 중 한 명을 빼고 조금 앞서 활동했던 지미 헨드릭스를 넣는 사람도 있다. 소싯적에 정말 많이도 묻고 답했던 또 다른 질문. 세상에서 기타를 제일 빨리 치는 사람은? 아이고 유치해라.

록 음악이 내용 면에서 극적으로 진화한 시기가 1960년대와 70년대라면,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반까지는 기교와 하드웨어(악기, 녹음기술 등등)의 급속한 발전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실제로 2018년 지금의 록 음악과 1990년대 록 음악을 비교해 봐도 트렌드가 다를 뿐 연주 기교나 음질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때문인지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은 테크니션들, 그중에서도 이른바 속주 기타리스트들도 전성시대를 누렸다. 오늘은 누가 누가 기타를 빨리 치나 경쟁하던 그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속주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나오기 전에도 꽤나 빠른 속도로 기타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들이 있었다. 딥 퍼플과 레인보를 이끌었던 리치 블랙모어, 미국 하드록의 자존심 밴 헤일런의 ‘에드워드 밴 헤일런’ 등등의 연주는 록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소년들을 좌절케 했다. ‘와 미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치지?’ 그러나 이분께서 등장한 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름부터가 북유럽의 왕가 혈통 같은 포스를 가진 잉베이 말름스틴. 워낙 특이한 이름이라 잉위 맘스틴이나 잉베이 맘스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잉베이는 196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열 살도 되기 전에 기타에 심취해 지미 헨드릭스와 리치 블랙모어를 연습했고, 클래식 음악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다양한 악기와 고전음악의 기초를 어릴 때부터 닦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곡과 연주에는 고전음악의 영향이 물씬 느껴진다. 그와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후배 밴드들의 음악에 ‘바로크 메탈’이라는 괴이한 이름이 붙여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의 색채는 양념일 뿐, 잉베이 말름스틴의 알파와 오메가는 속도다.

저 멀리 스웨덴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기타를 빨리 치는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미국의 명프로듀서 마이크 바니가 직접 날아가서 사실을 확인한 뒤 스웨덴 꼬마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졌다. 헤비메탈계의 거물에게 발탁된 잉베이는 스무 살의 나이에 스타플레이어로 떠오른다. 스틸러와 앨커트래즈 같은 거물 밴드의 기타리스트로도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일찍이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겨우 20대 초반에 발표한 데뷔 음반 <라이징 포스>는 이후에 펼쳐질 속주 기타리스트들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혁명적인 음반이었다. 단순히 빠르고 정확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테크닉뿐 아니라 전에는 들어본 적 없던 접근법을 제시한 록의 명반임이 틀림없다. 곳곳에 배어 있는 클래식 음악의 향기는 덤이다. 음반 수록곡이자 잉베이의 대표곡인 ‘파 비욘드 더 선’을 들어보면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전율이 느껴진다. 시간이 없다면 차라리 이 칼럼을 읽을 시간에 그 곡을 들어보길 권한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뒤 잉베이는 더욱 빠르고 정확하고 강렬해졌다.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과 보컬리스트들을 기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성공적이었다. 음반도 많이 내고 공연도 무수히 치러냈다. 팬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수많은 기타리스트 지망생들이 그를 추종하고 숭배했다. 물론 성공의 크기에 비례해 그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가장 흔한 비난의 패턴은 이런 식.

“잉베이 말름스틴은 그저 빨리 칠 줄밖에 모른다.”

“그의 연주에는 감동과 드라마가 없다.”

정말 그럴까? 물론 잉베이는 게리 무어처럼 풍부한 감정을 담아내지 못한다. 인정. 에릭 클랩턴처럼 음 하나하나가 영롱한 것도 아니다. 위대한 선배들뿐만 아니라 후배 기타리스트인 슬래시처럼 끈끈한 필도, 잭 와일드처럼 압도적인 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언급한 어떤 기타리스트들도 잉베이처럼 칠 수는 없다. 요리사에게도 전공이 있듯 연주자에게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스테이크의 달인에게 된장찌개를 못 끓인다며 타박하는 꼴이 아닐까? 네모에게 넌 둥글둥글한 맛이 없다며 야단치는 건 아닐까? 어쨌든 판단은 듣는 사람의 몫. 다만, 판단하기 전에 인터넷에 널려 있는 그의 연주를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화질과 음질은 좀 떨어지지만 1980년대 후반 레닌그라드에서 펼친 공연도 좋고, 스티브 바이와 조 새트리아니와 협연한 공연도 멋지다.

그래서 잉베이 말름스틴이 세상에서 기타를 제일 빨리 치는 사람이냐고?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다. 다음 화에서 확인하시길.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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