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가요의 맥을 잇는 가수들. 진해성, 이순정, 송가인, 윤수현.(왼쪽부터) 기획사 누리집과 티브이 프로그램 갈무리.
지난 편에 이어 트로트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지난 편에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해 글을 썼다면 오늘은 활동 중인 가수와 노래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아직도 트로트라는 말을 들으면 청승맞은 신세 타령이나 관광버스 메들리를 떠올리는 분들의 편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고심해서 골라보았다.
먼저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구태의연한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 남진의 노래를 소개한다. 다들 남진의 전성기를 1970년대라고 하지만 그건 연예인으로서 인기가 가장 뜨거웠던 때고, 가수로서 남진은 늘 꾸준히 노래를 발표하고 무대에 서왔다. 감탄할 만한 지점은 당대의 트렌드를 절묘하게 반영하면서도 남진만의 개성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 ‘님과 함께’, ‘가슴 아프게’, ‘그대여 변치 마오’, ‘빈잔’, ‘둥지’로 이어지는 20세기의 히트곡들만 이어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새로운 유행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호쾌한 남성미는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오늘 추천하는 노래는 남진이 21세기에 접어들어 발표한 ‘나야 나’와 ‘파트너’다. 대가의 여유로운 발성, 브라스 세션을 갖고 놀면서 노래하는 솜씨를 듣고 있노라면 감탄이 나온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는 이 시대의 트로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노래다. 발표하고 소리 소문 없이 몇년 동안 묻혀 있던 곡이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쓰이면서 뒤늦게 인기를 끌었다. 이디엠(EDM)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절묘하게 트로트에 결합했는데, 하필 이런 이종 교배가 주현미와 함께 정통 트로트의 적자로 꼽히는 김연자를 통해 성공했다는 사실이 아니러니하다. 하긴 주현미도 조
피디와 함께 트로트와 힙합의 만남을 시도한 바 있다. 주현미의 간드러지는 노래와 조피디의 감칠맛 나는 랩이 어우러진 ‘사랑한다’도 들어보시라.
‘아모르파티’가 워낙 히트하다 보니 이디엠 트로트라는 유행이 생겼다. 개그맨 김영철과 홍진영이 함께 한 ‘따르릉’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 비슷한 노래들이 참 많이도 나왔다. 그중에서 내가 추천하는 곡은 이순정이 부른 ‘찰떡’의 리믹스 버전. 민요풍 코러스가 인상적인 원곡도 좋지만 이디엠 편곡이 트로트 초심자들의 부담을 줄여주는데다 여전히 쫀득한 ‘뽕끼’가 귀에 달라붙는다.
이디엠 비트를 차용하거나, 트로트에 랩을 넣거나, 포크나 발라드적인 편곡을 가미한 세미 트로트 등등 새로운 트렌드가 득세하는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전통 성인가요의 맥을 잇는 가수들이 있다. 진해성과 송가인을 주목한다. 각자 ‘사랑 반 눈물 반’, ‘거기까지만’이라는 노래로 활동 중이다. 아직 20대인 나이를 생각한다면 10년, 20년쯤 더 원숙해진 뒤의 노래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노래에 담아내야 할 정서의 깊이를 생각할 때 트로트 가수로서 어린 나이는 걸림돌일 수도 있는데, 1990년생인 진해성보다 더 어린 가수도 있다. 무려 1995년생이란 앳된 나이에 ‘장구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은 박서진. 특이하게도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로 보면 감탄할 만하다.
수많은 신인 중에서 딱 한 명만 꼽으라면? 팬심을 가득 담아 윤수현을 소개한다. 2014년에 발표한 첫 앨범부터 10곡을 꽉 채운 정규음반을 내놨는데 아주 싹수가 파릇파릇하다.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넘치는 끼, 트로트에 대한 애정까지 충만하다. 일단 ‘천태만상’이라는 노래부터 추천한다. 처음에는 웃겨서 듣다가 그만 중독되어 버린, 이 시대의 괴작이다. 신나는 리듬과 멜로디 속에 래퍼 에미넴이 울고 갈 만큼 엄청난 양의 가사를 쏟아내는데 수십 가지 직업군이 총망라되어 있다. 땅꾼에 카투사까지 나오니 할 말 다 했지. 정말 꼭 한번 들어보시라. 두번 들으시라. 노래만큼이나 중독성 짙은 병맛 안무도 동영상으로 꼭 감상해보시길. 이 노래를 마스터한다면 회식의 여왕은 따 놓은 당상. 나도 맹렬히 연습중이다. 남진과 함께 부른 ‘사치기 사치기’는 어떤가? 파트너가 무려 남진인데, 전혀 꿀리는 느낌 없이 당당하게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연배로도 40년 넘게 차이나는 새파란 신인가수와 기꺼이 함께해준 트로트의 전설 남진의 마음 씀씀이도 존경할 만하지만 윤수현의 패기에 더욱 박수를 보낸다. 신나는 이디엠 트로트라고 할 수 있는 ‘사치기 사치기’와 전혀 다른 절절한 트로트 발라드 ‘꽃길’을 듣다 보면 같은 가수가 맞나 싶다. 서정적인 음색도 대단하다.
수년째 아이돌, 인디음악, 팝스타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갑자기 트로트 전도사처럼 굴어서 어리둥절할 독자들도 있겠다. 오늘 이 칼럼을 읽은 독자들 중에 한분이라도 트로트만이 줄 수 있는 흥과 정서에 눈을 뜬다면, 기꺼이 트로트 전도사를 자처하겠다. 사랑에 국경이 없고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클래식이 대중가요보다 우월하거나 따분하지 않듯 트로트 역시 다른 장르와 다를 게 없다. 내가 듣기 좋으면 그만인 것. 우리의 어깨를 흔들고, 마음을 두드리는 음악은 모두 똑같이 좋은 음악이다. 두려워 말고 들어보자. 천태만상 인간 세상 사는 법도 가지가지~ 아싸 조오타!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