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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식사 대접한다고 주민 총출동, 섬 무대는 되레 날 감동시킨다”

등록 2013-07-15 20:09수정 2013-07-16 13:29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2008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메시앙’ 탄생 100돌 기념 연주회를 떠올리며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백건우씨는 “매일 5~6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한다. 음악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연습을) 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2008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메시앙’ 탄생 100돌 기념 연주회를 떠올리며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백건우씨는 “매일 5~6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한다. 음악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연습을) 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섬마을 콘서트’ 연 피아니스트 백건우

‘건반 위의 구도자’, ‘음악의 순례자’, ‘피아노의 시인’, ‘학자와 같은 피아니스트’, ‘완벽주의자’….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67)씨에게 붙은 별명들이다. 그는 10살에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며 데뷔한 이래 반세기 넘게 열정적인 연주자의 삶을 걸어왔다. 그런 그를 세계 클래식계는 “진실하고 진정한 비르투오소이며 위대한 음악인”(프랑스 <피가로>), “전설의 유령을 부르는 천둥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진 피아니스트”(미국 <뉴욕 타임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25년째 빠듯한 국내외 연주 일정을 쪼개어 지방 공연에 힘을 쏟고 있다. 또 두 해 전부터는 전문 콘서트홀이 아닌 한국의 섬들을 찾아다니며 ‘섬마을 콘서트’를 무료로 열고 있다. 2011년 9월 연평도와 위도, 욕지도를 방문했고, 올해 6월에는 울릉도와 통영 사량도에서 야외 연주회를 열었다. 그가 ‘자연의 연주장’을 찾아간 사연은 뭘까?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려고 했다”고 이야기했다. “좋은 음악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지난달 3일 저녁 경북 울릉군 울릉읍 저동항의 촛대바위 아래에 마련한 특설무대에서 울릉도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선사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지난달 3일 저녁 경북 울릉군 울릉읍 저동항의 촛대바위 아래에 마련한 특설무대에서 울릉도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선사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클래식과 섬의 만남
난 음악을 베푸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은 거다
그리고 활력을 얻어가는 거다

-섬마을 콘서트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은 엘리트를 위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은 인간이 창조한 것 중에 가장 훌륭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순수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클래식 음악은 내가 일생을 바칠 만큼 훌륭한 것인데 사람들의 그런 고정관념과 상업적인 이유나 지리적 이유 등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급문화’를 접할 수 있는 인구는 제한되어 있다.

나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대화는 개인 대 개인이 직접 대면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같이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더욱더 귀중하다. 그리고 우리가 절대로 거기서 멀어지면 안 되고. 그래서 나는 그전부터 지방 공연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문화란 모든 사람들의 권리 아닌가.”

-올해 섬마을 콘서트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나를 감동시킨 것은 울릉도의 스펙터클한 자연의 힘과 모습, 또 통영 사량도의 아름다움, 넓고 따뜻하게 품에 안아주는 그런 것이 감동적이었다. 또 섬사람들의 순수한 마음, 따뜻한 마음은 내가 정말 그리던 만남이었다. 사량도의 조그만 마을에 갔더니 온 주민들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다 나왔더라.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한국인으로 죽을 테니까 그런 것은 특히 나한테는 큰 활력소가 되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인가?

“결코 책임감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나는 계급이라든가 등급을 매기는 것을 싫어한다. 서로 마음을 주는 것은 똑같은 위치에서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고귀한 음악을 들고 섬을 찾아간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영화배우인 부인 윤정희씨가 지난달 7일 경남 통영시 사량면 사량도 덕동마을에서 열린 ‘섬마을 콘서트’를 앞두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영화배우인 부인 윤정희씨가 지난달 7일 경남 통영시 사량면 사량도 덕동마을에서 열린 ‘섬마을 콘서트’를 앞두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그는 인터뷰 도중에 느닷없이 아내 윤정희(69)씨에게 “한눈팔지 마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씨가 “한눈팔지 않을게”라고 대꾸해 주위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말수가 적고 어눌한 백건우씨가 말문이 막히면 윤씨에게 이렇게 사인을 보낸다. 윤씨는 “섬 주민과의 만남은 우리 부부에게 항상 신선한 자극을 준다. 정말 굉장히 값지고 귀한 경험”이라고 거들었다.

-워낙 ‘연습벌레’로 소문이 자자하다. 매일 연습을 해야 하나?

“연주자라면 당연히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매일 꾸준히 5~6시간 연습한다. 그 이유는 수준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음악이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파블로 카살스(첼로 연주자·1876~1973) 선생님은 연습을 다르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분은 매일 아침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로 연습을 시작했고, 음정을 정확히 짚는다는 것은 어떤 음악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옳고 정확하고 고르게 잡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내가 연습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좀더 정확하게 진실되게 이 곡에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음악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

백건우씨는 15살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로지나 레빈(1880~1976), 그리고 독일에서 빌헬름 켐프(1895~1991) 등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을 사사했다. 1971년 나움버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고 1972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지휘자 제임스 콘론(63)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함으로써 뉴욕 데뷔를 했다.

그는 광범위한 연주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스크랴빈, 리스트, 무소륵스키 피아노 전곡을 녹음했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과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으로 프랑스의 ‘디아파종’ 금상, ‘누벨 아카데미 뒤 디스크’ 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2007년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다.

-아직도 연주가 힘든 작업인가?

“지금은 다음에 나올 슈베르트의 <소나타> 음반을 편집하고 있다. 그 작업 때문에 연습하고 녹음하고 편집하면서 새롭게 매번 느낀다.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깊이가 있는가? 인간의 힘으로 쓸 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이런 음악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백건우에게 음악은 무엇인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음악은 신이 내려준 고귀한 선물인 것 같다. 곡이 쓰여진 것도 그런 (신의) 도움 없이는 아마 힘들 것 같다.(웃음)”

-가장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곡가는?

“모르겠다. 첫번은 아무래도 테크니컬한 것 중에서 어려운 것을 생각하겠지. 그다음에는 그 곡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만 어느 정도 내 나이가 되면 나와 상통하는 음악이 뭐라는 것을 대강 알게 되니까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접할 수 있겠지.”

-연주자로 살아오면서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워낙 많다. 아내한테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인생을 그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음악도 마찬가지다. 아마 예술이라는 것은 인생뿐만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세계까지 그리는 것이겠지. 광범위하고 넓은 세계를 그리는데 음악이 가장 추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가능성이 크고 많다. 그 세계가 굉장히 넓다는 이야기다.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요즘 음악하는 후배들 보면
성공하려는 조급증 탓에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긴’ 것 같다
좀더 성실했으면 싶더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는?

“요즘은 거꾸로 된 것 같다. 전에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는데 요즘은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긴’ 것 같다.(웃음) 너무 성급히 빨리 성공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충분히 알고 좀더 성실한 태도로 음악에 종사해야 된다. 충고하고 싶은 말은 ‘절대로 음악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실 자기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거든. 참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요즘 세상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를 잃지 않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각자의 행복이 있겠지. 거짓없는 행복을 찾아야지.”

-제자를 키울 생각은 없나?

“나는 레슨을 안 받아도 많이 배웠다. 젊은 피아니스트들도 나한테 레슨을 안 받아도 충분히 생각할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공부할 때와는 다르게 요즘 한국에도 좋은 선생들이 많다. 그리고 음악은 자기가 찾는 것이다. 기초적인 것은 좋은 스승한테 다 배우는 것이고 그다음 단계에 개개인이 찾는 것이다. 또 그래야 진정한 음악이 나오게 된다.”

그는 아내 윤정희씨와의 결혼을 두고 “나에게 영원한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백건우에게 아내 윤정희는?

“인생의 동반자? 윤정희는 윤정희이고 백건우는 백건우이니까.(웃음) 하지만 윤정희씨는 누구보다 예술가의 생활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특히 내 음악을 잘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음악 자체를 굉장히 깊이 이해하고 있다. 어떤 때는 나보다도 음악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웃음)”

그러자 윤정희씨는 “백건우씨는 남편이자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라며 “음식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그 덕을 많이 본다”고 말했다. 또 “내가 너무 ‘길치’여서 항상 어디를 갈 때마다 꼭 남편이 손을 잡고 다닌다”고 밝게 웃었다.

-연주 생활 이외에는 파리 자택에서 어떻게 소일하는가?

“어려서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일 궁금한 것은 남은 인생이다. 세상은 어떤 것이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다른 문화는 무엇이고 그런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두 사람이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는 음악으로 전도사가 되고 싶다. 물론 한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나한테 주어진 인생은 음악이기 때문에 거기에 될 수 있는 한 충실하려고 한다. 내가 어느날 음악보다 중요한 의무를 느낄 때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지금의 나 자신은 변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어보니까 종교인이고 철학가이고 음악가이고 의사이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분이었다. 많은 분야에서 뛰어나신 분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분이 그렇게 모든 생물체를 존중했다는 것이다. 개미떼를 발로 밟지 않고 자라는 풀을 자르지 않고 육체적으로나 영혼적으로나 그렇게 모든 생물체를 존중할 수 있고, 그런 삶을 행동으로써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

그는 9월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D.899>, <음악적 순간 D.780> 중 2·4·6번, <3개의 피아노 소곡 D.946>으로 독주회를 연다. 전국 순회 연주회를 마치면 일본, 중국 투어도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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