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를 겸업해온 피아니스트 김선욱(35)이 경피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피아니스트 김선욱(35)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경기필)의 새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김선욱은 내년 1월 취임해 2025년까지 2년 동안 경기필을 이끌게 된다. 예술감독은 상임지휘자 역할에 더해 공연 기획과 단원 평가, 신규 채용 등 공연 전반에 관한 권한을 지닌다. 경기필은 지난해 7월 이탈리아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61) 퇴임 이후 1년 넘도록 예술감독이 빈자리였다.
김선욱은 2006년 18살에 라두 루푸, 머레이 페라이어 등을 배출한 영국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동양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적인 시선을 끌었다. 이후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 연주를 선보이는 등 국내와 독일, 영국 등지에서 독주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베를린 필하모니와 런던 심포니,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도 협연했다.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과 2종의 협주곡 음반을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발매했다.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2021년 지휘자로 데뷔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필을 관장하는 경기아트센터는 “젊은 지휘자 영입을 통해 생동감 있는 오케스트라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김선욱 예술감독 인선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김선욱은 지휘자로선 ‘신인’에 가깝다. 지난 21년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지휘자로도 공식 데뷔했으니 지휘 이력은 3년 안팎에 그친다.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 희망란에 ‘지휘자’라고 썼다는 김선욱은 2010년부터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석사과정 3년 동안 지휘를 전공했다. 지휘 무대 데뷔 이후 서울시향과 경기필, 영국 본머스 심포니, 마카오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다. 지난해 연말엔 ‘대타’로 서울시향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지만 아직 ‘검증받은 지휘자’라고 하긴 어렵다.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63),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피에타리 잉키넨(43), 국립심포니 다비트 라일란트(44) 등 수도권 주요 국공립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실력파 외국인 지휘자’들과 겨뤄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김선욱의 어깨에 드리워졌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를 겸업하는 김선욱(35)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리허설하는 장면. 경기아트센터
김선욱은 최근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를 겸업하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를 위해 김선욱은 당분간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의 작품 이외의 피아노곡은 연주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가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적으로 활동해온 다니엘 바렌보임(81)과 미하엘 플레트네프(66)의 경로를 밟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30대 중반의 피아니스트를 예술감독으로 맞은 경기필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1997년 창단된 경기필은 그동안 금난새(76), 구자범(53), 성시연(48) 등의 지휘자를 거치며 성장해왔다. 2016년과 2017년 경기필을 지휘한 명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81)는 ‘지휘자의 요구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오케스트라’라고 평했다. 2015년 세계적 음반사 데카(DECCA)에서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을 발매했다.
김선욱을 필두로 국내 주요 국공립 오케스트라들은 30~40대 ‘젊은 지휘자 시대’에 접어들었다. 정나라(43·공주), 김건(42·창원), 홍석원(41·광주), 정헌(41·목포), 안두현(41·과천), 정민(39·강릉) 등 30대와 40대 초반 지휘자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