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이 21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 안 문호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 중 베토벤 소나타 ‘월광’을 연주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는 하나의 악보를 각자 방식으로 번역하는 번역가입니다.”
김선욱(29)이 생각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이다. “(외국) 고전소설은 번역자에 따라 읽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음반 매장에는 수십 개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이 있습니다. 하나의 고전소설을 번역한 수십 명의 번역가가 있는 셈입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밀도가 높아 엄청난 준비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월광 소나타도 베토벤 사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월광 이미지에 집착하면 작곡 의도와 다른 연주가 되기 쉽습니다”라며 직접 피아노를 치며 베토벤의 의도와 그 시대 피아노의 특성을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20일 새 앨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악첸투스)를 발매하고, 21일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베토벤 3대 피아노 소나타로 꼽히는 ‘비창’, ‘월광’, ‘열정’을 담은 음반 발매에 맞춰, 3월16일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17일 인천종합예술회관 대공연장,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김선욱은 2006년 18살에 세계적 권위의 리즈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회 40년 역사상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다. 이후 10년간 베토벤에 몰두했다. 2009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2012~13년 8회에 걸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2013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담은 첫 녹음 음반 발표 등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새 앨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빈체로 제공
“연주자의 삶이란 직장 생활과 거리가 멀어요. 제 목표는 ‘(연주를) 꾸준히 해서 살아남자’입니다. 지휘를 병행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책임감과 참을성이 더 생기면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는 2015년 4월 ‘깜짝 지휘자 데뷔’를 했다. 키릴 카라비츠의 지휘로 본머스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한 뒤, 앙코르 무대에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중 ‘그랑 파드되’를 지휘한 것. 그는 평소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 정명훈, 다니엘 바렌보임 등을 롤모델로 삼아왔다. “지휘자는 가능성을 끌어내는 영역입니다. 지금은 피아니스트에 집중해야 하지만, 만약 지휘 기회가 오면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너무 규모가 큰 9번 <합창>만 빼고요.”
3월 리사이틀이 끝나면, 7월 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뒤, 11월에는 베이스 연광철과 함께 독일 리트(가곡)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마크 패드모어와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녹음한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처럼, 이제 리트의 피아노 연주는 ‘반주’가 아닌 ‘협연’으로 자리잡고 있다.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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