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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악마 같지 않은 악마 ‘3대 크루엘라’ 그의 죄는 무엇?

등록 2021-05-29 13:29수정 2021-05-29 13:37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 크루엘라
<크루엘라>가 제목인 영화에서 크루엘라보다 더 크루엘라스러운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가 크루엘라와 대결하는 악의 축으로 설정돼 있다고? 그럼 크루엘라는 대체 뭘 하는데? 바로 이 대목이 가장 큰 딜레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크루엘라>가 제목인 영화에서 크루엘라보다 더 크루엘라스러운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가 크루엘라와 대결하는 악의 축으로 설정돼 있다고? 그럼 크루엘라는 대체 뭘 하는데? 바로 이 대목이 가장 큰 딜레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101마리 달마시안’ 세번째 실사
단 세마리의 달마시안만 등장
‘에마 스톤과 에마 톰슨’의 열연

크루엘라의 모든 특징들은
이미 남작 부인이 갖고 있어
주인공 개성에 한계 엿보여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1961년작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라이브액션(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리메이크한) 버전이다. 그런데 <101마리…>는 이미 1996년에 한번, 그리고 4년 뒤 후속편 격인 <102마리 달마시안>으로 또 한번 실사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크루엘라>로 <101마리…>는 무려 세번째 실사영화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101마리…>가 멋진 작품이었긴 해도 그만큼 엄청난 작품이었던가? 여기엔 솔직히 의구심이 드는데다, <102마리…>가 보여준 참담한 난맥상까지 생각한다면 의문은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겠다.

그래서인가. <크루엘라>는 제목에서부터 101마리도, 102마리도, 달마시안도 모두 날리고 오로지 악의 축 ‘크루엘라 드 빌’ 캐릭터의 이름만 남기고 있다. 영화에서도 달마시안은 단 세마리만 등장한다. 1001마리 달마시안이라도 만들기 어렵지 않았을 디즈니의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로도 모자라 남은 세마리조차 그냥 사냥개라는 책무에만 충실한, 말하자면 액션영화에서의 총알쯤 되는 지위로 강등되어 있다.

 동물 영화에서 인간 영화로

이렇듯 <101마리…>는 고유의 동물영화적 노선을 버리고 인간영화로 완전히 방향을 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아니 말레피센트적인 전환을 감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이전 실사 버전 <101마리…>에서 케이크옷을 입고 전신이 컬러 시럽 덩어리가 되는 시각적 스턴트까지 감수하면서 전설적 몸 던지기 연기를 선보였던 글렌 클로스의 아우라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모두 아시다시피 21세기에 재등판한 <크루엘라>에서는 에마 스톤이 글렌 클로스의 아우라를 물려받고 있다. 워낙에 배경이 런던인지라 미국인인 에마 스톤이 부득이 구사해야 했던 영국 악센트에 대한 영국 관객들의 잇단 불합격 판정이 화제가 되는 것 같더라만, 한국인인 우리가 그런 거 알 게 뭐인 가운데, 에마 스톤의 캐스팅은 연기력이라는 면에서나 지금까지의 출연작들을 통해 구축해왔던 이미지와의 호환성 면에서나 일단 적절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거의 2분 30초에 육박하는 독백 연기는 그야말로 고군분투 자체였다 하겠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그런데 이 대목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이 영화의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의 2017년 연출작 <아이, 토냐>다. 이 영화에서 마고 로비가 연기한 토냐 하딩(좋은 쪽으로나 안 좋은 쪽으로나 아무튼 전설적인 미국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은 ‘악당(또는 악마?)의 모든 조건을 갖춰 보이긴 하되 연민을 품지 않을 수 없는 불운한 여성’으로서 대단히 강한 설득력을 보였더랬다. 그런데, 굳이 비교하자면 <크루엘라>의 크루엘라가 가지는 설득력은 <아이, 토냐>의 토냐 하딩이 가지는 설득력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아니, 굳이 다른 영화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크루엘라>에서의 크루엘라 캐릭터는 대단히 저조한 설득력 함량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에마 스톤의 연기 및 캐스팅에 있지 않다 사료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논하도록 하고, 계속하면.

이 영화의 또 한명의 에마인 에마 톰슨은 ‘남작 부인’을 연기하며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남작 부인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쯤에 해당되는 캐릭터인데(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시나리오팀에는 <악마는…>의 시나리오 작가도 포진되어 있다) 남작 부인은 패션계를 지배하는 절대강자이자 패션브랜드 오너이자, 우월의식/선민의식/오만함/무례함/건방짐/까탈스러움 등등 모든 안 좋은 성격용 키워드를 적은 메모지들을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드레스를 걸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예를 들어 남작 부인은, 분을 못 이기고 걷어찬 의자가 곁에 있는 하녀의 정강이를 타격하자 고통에 쩔쩔매는 하녀를 향해 “왜 거기 서서 걸리적거려?” 같은 대사를 날리는 등 가는 곳마다 폭언·폭행을 일삼는다. 이렇듯, 크루엘라 본인이 아닌 남작 부인이야말로 이 영화의 크루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남작 부인’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거지들은 크루엘라보다 더 크루엘라스럽다.

뭐라. 제목부터 <크루엘라>인 영화에서 크루엘라보다 더 크루엘라스러운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가 크루엘라와 대결하는 악의 축으로 설정돼 있다고? 그럼 크루엘라는 대체 뭘 하는데?

바로 이 대목이 <크루엘라>가 빠져 있는 가장 큰 딜레마다. 영화는 크루엘라가 아직 ‘에스텔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어린 시절인 1960년대에서 시작된다.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 에마 스톤의 내레이션이 계속해서 깔리는 이 15분가량의 어린 시절에서, 에스텔라는 엄마와 함께 런던으로 상경하던 중 뜻하지 않게 엄마를 사망하게 한다. 그리고 에스텔라는 ‘에스텔라’를 버리고 크루엘라로 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우리가 이전 작품들을 통해 알고 있던 크루엘라의 모든 특징들은 이미 남작 부인이 가지고 있다. 물론 크루엘라는 남작 부인을 만나면서 갑자기 친구이자 동거인들이자 가족인 재스퍼(조엘 프라이)와 호러스(폴 월터 하우저)를 부하처럼 부리면서 까탈과 불친절을 일삼아 이들로부터 ‘에스텔라가 변했어’ 등등의 불평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전개는 별다른 개연성이나 자연스러운 흐름 위에 얹어지지 않고 산발적으로 흩뿌려지는지라 적잖이 뜬금없게 느껴진다.

하여 결국 크루엘라의 손에 남는 크루엘라스러움은 크루엘라의 외관뿐이다. ‘크루엘라’ 이름 넉 자(알파벳으론 일곱 자)와 특유의 흑백 좌우양분 헤어 말이다.

사실 이 두가지를 빼고 나면 크루엘라는 다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실제로 크루엘라는 ‘에스텔라’로 생활할 땐 빨간 가발을 쓰고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데, 영화 속 누구도 그녀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 다분히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이 대목은, 영화가 주인공의 캐릭터적 공허함을 본의 아니게 노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크루엘라에게도 자신만의 뭔가가 한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독창성’이다. 열악하고 불우한 성장과정 덕분에 더욱 단련된 크루엘라의 패션 독창성(또는 창의성 또는 상상력)은 곧바로 남작 부인의 먹잇감이 되며, 남작 부인은 그것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고, 또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크루엘라는 당연히도 이에 대한 복수에 착수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나쁜 놈 출신 주제에 감히

요컨대 <크루엘라>의 악의 축 남작 부인의 핵심 죄목은 더러운 성격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독창성 없음’과 ‘독창성 도둑질’이다. 그리고 이것이 크루엘라와 남작 부인 간 갈등 및 대결의 핵심을 이룬다.

하여 전반 3분의 1 지점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형국으로 흐르는 것 같던 영화는, 3분의 2 지점에 이르러 남작 부인과 크루엘라 사이의 패션 디자인/쇼/기습 이벤트 대결을 거쳐 결국 남작 부인의 독창성 도둑질을 만천하에 폭로하기 위한 금고털이 범죄영화(하이스트 무비)의 형국으로 흐르게 된다. 단, 여기에 함유된 치밀함이나 재치 함량은 ‘오션스’ 시리즈 등 관련 분야 간판 작품들을 1천배가량 희석한 정도의 함량이다. 하여 결국 남는 것은 남작 부인의 왕정시대 귀족파티, 1970년대 런던 백화점의 럭셔리한 면모들, 그리고 제니 베번(의상)이 디자인한 화려무쌍한 옷들을 입고 나오는 에마 스톤의 도발쇼 등등의 비주얼이다. 이는 물론 시각적으로는 매우 즐거운 것이긴 하지만 이야기의 관점에서 발휘하는 효과는 소리 큰 공포탄 정도다.

영화는 후반에 두개의 굵직한 반전을 내놓으며 스리슬쩍 햄릿적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전통 깊은 프랜차이즈로서의 뼈대를 세우려 분전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데다 그 회심의 일타까지 가는 과정 및 뒤처리 또한 그리 치밀하지 못한지라, 영화는 결국 쿠키 영상조차 궁금해지지 않는 영화(이 영화에는 쿠키 영상이 첨부되어 있다)로 귀결되고 만다.

전 버전 크루엘라의 공통분모인 폭언과 난동을 제외한다면, 1대 크루엘라(애니메이션 버전)와 2대 크루엘라(글렌 클로스 버전)의 첫번째 대죄는 ‘못생김’, 두번째 대죄는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살해하려던 ‘동물살해기도’ 죄였다. 그렇다면 3대 크루엘라의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태생의 죄, 즉 나쁜 놈 출신 주제에 감히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것으로 하지 못한 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죄만한 죄도 없는 것 같다. 크루엘라이되 함부로 크루엘라일 수도 없는 그 태생의 죄는, 그 누구보다도 관객에게 실망과 하품이라는 환란을 안기고 있으니 말이다.

▶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 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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