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워 위드 그랜파>
로버트 드니로, 우마 서먼 등 명배우들
할아버지에게 방 뺏긴 손자 ‘전쟁선포’
치약·면도크림…상상해봄직한 장난부터
시신, 틀니 등 기발한 공방으로 ‘재미’
포복절도 글쎄, ‘나 홀로…’보다 슴슴
가족영화 공식 따라 다소 안전한 선택
싸움 뒤 화해하는 예상 가능한 구조
코로나 잊을 만한 부담없는 가족영화
<워 위드 그랜파>
로버트 드니로, 우마 서먼 등 명배우들
할아버지에게 방 뺏긴 손자 ‘전쟁선포’
치약·면도크림…상상해봄직한 장난부터
시신, 틀니 등 기발한 공방으로 ‘재미’
포복절도 글쎄, ‘나 홀로…’보다 슴슴
가족영화 공식 따라 다소 안전한 선택
싸움 뒤 화해하는 예상 가능한 구조
코로나 잊을 만한 부담없는 가족영화
할아버지에게 방을 뺏겨 다락방으로 밀려난 손자는 사뭇 진지(?)하게 선전포고를 한다. ㈜키다리이엔티 제공
예의범절 슬랩스틱? 알고 보면 웬만한 호러영화들을 훌쩍 능가하는 잔혹한 응징·보복액션을 선보였으면서도 전체관람가 등급을 유지해낸 전체관람가의 전설 겸 크리스마스 무비의 전설 <나 홀로 집에> 시리즈를 계승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려는 듯, 드니로의 막내둥이 손녀딸 생일파티를 ‘9월의 크리스마스’ 콘셉트로 만들어 이를 슬랩스틱의 하이라이트를 위한 세팅으로 설정해두고 있다. 하여 우리의 관심은 이 영화가 두어시간가량 큰 무게나 자극 없이(운이 좋다면 속 시원히) 웃어보고 싶은 작금의 관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는지 여부에 가장 먼저 쏠리게 된다. 위 줄거리 브리핑에서도 말씀드렸듯 이 영화에서의 ‘워’(war)는 열두살 손자 피터(오크스 페글리)와 할아버지(로버트 드니로)의 치고받기 대결이다. 물론 이 치고받기란 특정 신체부위를 수반하는 육체적 치고받기는 아니고(범죄물이 아닌 코미디인 이상 당연) 서로를 예상치 못한 생활 속 함정/덫/부비트랩에 빠뜨리는 식의 치고받기인바, 무엇보다 이 치고받기 대결에서 얼마나 높은 함량의 기발함 및 의외성 그리고 그로 인한 코믹함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워 위드…>의 일차적인 성패가 판가름 날 것이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이 에피소드들 자체는 충분히 섭취 가능하다. RC카+모바일기기+스피커를 조합한 손자의 첫번째 어택을 필두로 할아버지와 손자의 치고받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치약이나 면도크림 같은 일상 생활용품을 활용한 어택부터 상대방의 애장품, 동물, 그리고 드론 등을 동원한 어택까지 다종다양한 재료와 기법들이 이어진다. 심지어 관 속의 시신까지도 이 대결에 동원되고 있다. 그중 필자 개인적으로는 ‘펄떡이는 틀니’ 장면이 가장 웃겼는데(이는 어택 그 자체가 아니라 부산물로 등장하는 것이긴 하지만) 여러분께선 어떠실지. 하지만 그 반복되는 치고받기의 약효는 길어야 30분을 넘기기 어렵다. 그 액션이 매우 참신하거나 기발하더라도 그럴진대, <워 위드…>가 선보이고 있는 만우절 조크풍의 에피소드들인데다, 그것이 나열되는 리듬 역시 지극히 단조롭다. 많은 슬랩스틱 코미디들이 이러한 단조로움과 그로 인한 따분함을 중화시키는 방법으로 채택하는 것이 바로 현실초월적 액션이다. 즉, 멀게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초기작들(특히 도널드 덕, 구피 등의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부터 <나 홀로 집에> 시리즈까지, 현실적 물리·화학·의학·생리학 법칙을 훌쩍 초월한 단계로까지 슬랩스틱을 밀어붙이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아쉽게도 <워 위드…>는 애초에 이러한 막 나가는 슬랩스틱을 도입하기 어려운 전제를 처음부터 깔고 있다.
전형적인 가족 코미디지만 그 속 배우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키다리이엔티 제공
전형적인 가족 코미디,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가 다친 사람들뿐.” 영화는 손자 ‘피터’가 처음 다락방으로 쫓겨난 뒤 읽는 책으로 미국사 교과서, 그중에서도 미국 독립전쟁사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미국의 대영 선전포고문을 흉내 낸 고풍스러운 선전포고 메모를 날리고, 할아버지는 손자의 전쟁 선포를 받아들이면서 일, 민간희생자를 내지 말 것, 이, 누구에게도 전쟁 사실을 말하지 말 것이라는 ‘교전수칙’을 일러준다. 물론 이 교전수칙은 지켜지지 않고, ‘실제 전쟁을 겪어본’ 할아버지가 전쟁을 걸어오는 손자를 만류하면서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가 다친 사람들뿐”이라고 한 말 그대로 전쟁은 아빠(롭 리글), 엄마(우마 서먼), 막내딸(포피 개그넌)과 맏딸(로라 마라노), 그리고 맏딸의 남자친구까지 두루 아우르는 민간희생자를 낸다. 그 민간희생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위에 말했던 생일파티에서의 재난인데, 규모 면에서는 상당하되 안타깝게도 짜임새 면에서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슬랩스틱이 마무리된 이후(그렇다면 ‘짜임새 좋은 슬랩스틱’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패딩턴 2>의 이발소 장면이나 창문닦기 장면 등이 좋은 예일 것 같다), 할아버지는 울음을 터뜨리는 막내손녀딸을 보며 손자에게 전쟁의 무익함 및 참담함을 재삼 확인시킨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애초에 이 영화에 기대한 것이 이런 ‘전쟁은 좋지 않아’라는 가르침인가? 더구나 그 가르침 자체도 이렇게 애써 들여다봐야만 간신히 드러나는 수준으로 수줍게 논해지고 있는 마당에? 영화는 상당히 인공적인 막판 위기, 그리고 ‘가족영화’로서의 산업표준 철저히 엄수하는 마무리 화해 절차를 밟으며 2편까지 암시하는 엔딩으로 마무리짓고 있지만, 완성된 해로부터 3년이나 지난 시점에야 어렵사리 개봉된 이 영화의 2편을 기대하는 성인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여 결론. 성인 관객들은 10세 이하 관객들의 엄격한 관찰 및 지도하에 관람가.
▶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 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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