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도굴>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 오션스 일레븐!
대도심 번화가의 도굴이란 소재 참신
극 초반 ‘업계’ 전문성의 밀도는 글쎄
이제훈·송영창 등 배우 라인업은 기대
코미디로 직진하나 단발성 개그 소진
대도시 속 배수로를 가르고 구르며
애써 내놓은 반전은 감탄 아닌 탄식
<도굴>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 오션스 일레븐!
대도심 번화가의 도굴이란 소재 참신
극 초반 ‘업계’ 전문성의 밀도는 글쎄
이제훈·송영창 등 배우 라인업은 기대
코미디로 직진하나 단발성 개그 소진
대도시 속 배수로를 가르고 구르며
애써 내놓은 반전은 감탄 아닌 탄식
서울의 한복판, 선릉을 향한 도굴 활극이 벌어진다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영화 <도굴>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어떻게’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인가, 아니면 서울판 <내셔널 트레져> 또는 <다빈치 코드>인가 하였는데, 출토되어 나온 물건은 <오션스 일레븐>과 <도둑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뱅크잡>의 고미술품 도굴/도난 버전에 가까웠던 <도굴>. 이 영화는 ‘범죄오락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오늘도 언제나처럼 이 지향에 맞춘 감별을 시행한다.
범죄오락영화라면 모름지기 중요한 것은 언제나처럼 ‘어떻게’라는 대목이겠다. 아시다시피 아이디어란 그 자체만으론 엔진 없는 연료, 모터 없는 전지에 지나지 않으므로. 일단 영화의 후반 전체를 차지하며 총결산하는 사건인 ‘선릉 도굴’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영화가 그 앞 전반부에서 선보이고 있는 두 차례의 도굴에 대해 논하자. 강동구의 첫번째 도굴은 산속 고찰 석탑 내부의 부장품인 금동불상 훔치기다. 아시다시피, 이 ‘첫번째 범행’이라는 대목은 일반적으로 ‘범죄오락무비’에서 관객에게 업계 전문지식/기술을 선보이는 대목으로서, 그 전문성이 얼마나 섹시하면서도 그럴싸한가에 따라 관객이 영화에 품을 신뢰도/호감이 일차적으로 판가름나게 된다. 그런데 이 석탑 도굴 장면이 안기는 첫인상이 적잖이 미심쩍다. 강동구가 스님 변장/행세로 타 스님들을 속이는 것까지는 좋았다만, 컷은 곧바로 범행 후, 즉 그 높은(9층이다) 석탑의 중간 부분이 꺾여 있는 상태로 건너뛴다. 별다른 장비도 없이 혈혈단신이었던 강동구가 그 무거운 석탑 중간 부분을 기울여 놓은 뒤 그 안의 부장품을 빼낸 방법 등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처사는, 주최측이 ‘천재 도굴꾼’이라 일컫는 강동구의 면모를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보여주지 않는(또는 못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싹튼 의구심은 영화 중반의 고구려 고분 내부의 벽화 뜯어내기 장면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커지는데, 그것은 “꼭 다이아몬드 코팅이 된 실톱을 써야 돼” 같은 전문성 피력용 대사 정도로는 경감되지 않는다. 하지만 뭐, 됐다. 밀도 높은 고증이나 전문성 같은 것 없이도 ‘범죄오락영화’의 관람성은 얼마든지 확보될 수 있다. 우선 이 영화는, 땅굴 굴착 전문가 ‘삽다리’ 역을 맡은 임원희의 캐스팅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높은 코미디 농도를 지향한다. 게다가 이제훈, 송영창, 조우진, 신혜선 등 배우들의 라인업은 이 영화의 인물의 매력 및 입체성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기 충분하다. 바로 손에 잡히는 예를 굳이 들자면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익히 들어왔던 ‘유려유들한 말빨’ 함유량을 한껏 올린 대사, 그리고 이 대사를 윤활유 삼아 컷과 씬 사이를 미끄러지는 이제훈의 뺀질이 연기를 보는 것은 재미있다. 그의 맞은편에서 <도둑들>의 ‘예니콜’(전지현)과 ‘팹시’(김혜수) 사이를 오가는 듯한 초엘리트 큐레이터 ‘윤 실장’(신혜선) 캐릭터 또한 무리 없이 합을 이룬다. 하지만 그 약효는 짧다. 대사와 캐릭터는 이미 익히 보아온 풍에 머물고, 그 인물에게 “양파 껍질 까듯” 드러나는 새로운 면모 또한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삽다리’와 ‘존스 박사’(조우진), 두 캐릭터로 대표되는 코믹 캐릭터들 역시 남발되는 단발성 개그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주인공을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과 유효한 관계를 만드는 데까지 나가지 못한다. 그중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캐릭터는 영화의 수석 악의 축인 ‘진 회장’(송영창) 캐릭터인데, 문화재 도둑질로 출발하여 회장님의 반열에 올랐다는 설정부터가 그렇거니와, 결정적인 대목들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뚫리고 너무나 허술하게 당하는 관계로, 급기야 ‘이 냥반은 알고 보면 주인공 측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혹까지 고개를 든다. _______
아이디어보다 중요한 것 하지만, 이 또한, 됐다. 위에서도 얘기했듯, 이 영화가 내놓은 메인요리는 단연 ‘선릉 도굴’이다. 영화의 후반을 거의 점유하고 있는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의 난맥상을 타개하고, 소기의 ‘오락’ 함량을 보여준다면 <도굴>은 제 소임을 다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도심 한복판이라는 입지 조건은 각종 빌딩, 그 빌딩의 지하, 지하도, 배수로 등등의 지형지물을 아기자기하게 활용토록 해줄 천혜의 조건이겠다. 즉, 이는 ‘조선의 왕릉’이라는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단조롭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비주얼을 상대적으로 꽤 쉽고도 저렴하게 끌어올리게 해준다. 더구나 선릉 바로 옆에는 두 개 선의 지하(!)철마저 지나가지 않는가. 영화는 이 선택지들 중 1층 카페, 다세대주택 반지하방, 지하 룸살롱, 배수로라는 비교적 소박한 지형지물을 선택한다(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지하철이라는 천혜의 조건을 포기한 것은 못내 아쉽다). 그리고 여기에 도굴 기초 시설물인 땅굴이 당연히도 가세한다. 사실상 <도굴>의 도굴 과정 및 비주얼의 핵심을 이루는, 땅굴을 파고, 토사를 처리하고, 망을 보고, 작업 소음을 은폐하고 위장하고, 돌발적인 경찰 단속을 따돌리고 등등등의 수제 가정식 토목공사 과정에서 필시 많은 분들은 <뱅크잡>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도굴>은 여기에 배수로라는 지형지물을 가미하여 차별화를 꾀한다. 이를 위해 ‘선릉 주변은 상습침수지역’이라는 설정과 예상치 못했던 폭우,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돌발상황 및 돌발역경을 투입한다. 하여, 점점 차오르는 물 등등이 쪼이기용 카운트다운 상황을 만드는 데 활용될 것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시리라. 하여, 알전구 줄줄 매달린 땅굴에서 벌이는 흙투성이 백색 내의 차림의 주인공들의 생고생부터 지하 발파의 소음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사고까지, ‘도심 한복판에서의 도굴’이라는 컨셉을 관객에게 납득시킴과 동시에, 관객을 지루치 않게 할 조치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보기만 해도 배우와 제작진의 고생이 절절히 전해오는, 빠지고 구르고 뒤집어쓰고 소리 지르고 싸우는 등등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저것은 대체 뭘 위해, 뭘 하고 있는 상황인가,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난해함의 원인은 사실, 이 영화가 준비해둔 막판 대반전에 있다. 즉 선릉 도굴 부분 전체 이야기는, 영화가 줄곧 노렸던 회심의 일타인 막판 반전의 폭발력 극대화를 위해 각종 핵심 정보들을 숨기면서 전개되고 있다. 이 ‘안 가르쳐주지’ 전략은 물론 <오션스 일레븐>의 반전의 충격량 및 쾌감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도굴 멤버 모집 과정부터 적을 속이는 수법까지 <도굴> 곳곳에서는 <오션스…>의 지문이 발견된다. 도굴 중 발파 장면에서 돌출하는 ‘배터리의 문제’ 장면에서는 아예 <오션스…>의 해당 장면을 그대로 재연(오마주?)하고 있다. 문제는, 반전이 드러나기 전부터 상황 전개가 충분히 납득/몰입 가능했던 <오션스…>와는 달리 <도굴>의 반전 이전 상황은 이해/몰입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는 꼭 얘기해야 할 것들을 얘기하지 않으면서도 얘기가 얘기를 이루도록 하려는, 이 곡예 같은 전개를 위하여 각종 앞뒤 맞추기용 장면을 계속 투입하고 있지만 그것이 내는 효과는 명쾌함보다는 오히려 혼란 가중 및 속도 저하 쪽으로 점점 기운다. _______
유쾌한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하여, <도굴>이 그리도 각종 공을 들인 끝에 내놓는 반전은 정말이지 안타깝게도 감탄보다는 탄식을 자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반전뿐만이 아니라, 뭘 위해서라도) 관객에게 반드시 알려줬어야 할 정보들까지 제공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고, 그 실수의 결과는 거의 복원불가다. 권선징악-사필귀정-인과응보-2편예고 모두를 충족시키며 오픈카 질주하는 유쾌한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물도 오래되면 보물 된다”라는, 영화가 두 번씩이나 힘주어 날리던 대사를 애써 질끈 믿고 50년 전쯤 지나 한 번 더 봐야 하려나. 더구나 이 영화는 고물도 아닌 반짝반짝 신품이니 말이다. 흠….
<도굴>에서 주인공들은 도시 밑에서 빠지고 구르고 뒤집어쓰고 소리 지르고 싸운다. 배우들의 합은 볼만하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