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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언제나 ‘그 다음’이 문제다

등록 2014-10-17 19:02수정 2014-10-18 14:47

영화 <메이즈 러너>
영화 <메이즈 러너>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영문도 모른 채 어디론가 끌려온 아이들. 까마득히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터만이 그들에게 허락된다. 벽 너머는 겹겹의 미로. 벽 사이 문 하나가 낮 동안 열려 있어 문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문이 닫히기 전에. 미로의 괴물이 깨어나기 전에.

드디어 선택의 순간. 벽 너머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문 앞에서 멈춘다. 더 이상 벽 너머를 두려워하며 살기 싫은 아이들이 문 밖으로 달려나간다. 밤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벽 안에 갇히는 삶을 거부한 것이다. 처음엔 짜릿했다. 마침내 벽을 넘었으니까. 하지만 곧 지쳐간다. 괴물을 피해 쉼 없이 도망쳐야 하니까. 벽을 넘는 기쁨은 짧고 미로를 헤매는 공포의 밤은 길다. 영화 <메이즈 러너>(사진)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미로에서 시작된다.

줄기세포 사기극을 제보한 심민호 연구원(유연석). 그의 제보를 믿고 꿋꿋하게 방송을 만든 윤민철 피디(박해일). <메이즈 러너>의 아이들처럼 그들도 거대한 벽을 넘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역시 <메이즈 러너>의 아이들처럼 그들 역시 겹겹의 미로에 갇혀버린다. 2005년 겨울, 그땐 아예 온 나라가 괴물이었고 제보자의 손을 잡고 함께 뛰려는 친구도 거의 없었다. ‘메시아로 추앙받는 과학자’의 벽을 넘자마자 곧바로 궁지에 몰린 두 남자. 영화 <제보자>의 진짜 이야기도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게걸스럽게 진실을 집어삼킨 맹신과 광기의 미로에서.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본 뒤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드라마 <모래시계>. 20년이 지나도록 좀처럼 잊히지 않는 마지막 장면. 지리산 노고단의 붉게 물든 구름 위로 태수(최민수)의 유골을 뿌리면서 혜린(고현정)은 물었다. “이 사람, 이렇게 보낸 걸로 뭐가 해결됐어?” 혜린과 나란히 앉은 우석(박상원)이 대답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그런데 꼭 보내야 했어?” “아직이라고 말했잖아. 아직은 몰라.” 그리고 이어지는 우석의 독백.

“그럼 언제쯤이냐고 친구는 물었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먼저 간 친구는 말했다. ‘그다음이 문제야.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그걸 잊지 말라’고….”

태수가 옳았다. 언제나 ‘그다음’이 문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아직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앞장서 벽을 넘은 이들의 ‘그다음’을 벌써 모른 체하는 사회. 참 못됐다.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미로에 그들만 버려두고 먼저 빠져나온 우리. 참 나쁘다. 그러므로 영화를 본 관객들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의 밤을 우리가 너무 쉽게 모른 체한 다음.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영화 <제보자>의 실제 모델 류영준 교수가 진실을 제보한 뒤,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 기사를 찾아 읽었다. 딱 한 문장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어렵게 다시 얻은 직장의 동료들이) 그가 다가가면 하던 말을 멈추기도 했다.”(월간 <나.들> 3월호)

‘제보자’에게 ‘배신자’의 낙인을 찍는다. ‘유가족’을 ‘데모꾼’으로 몰아세운다. 노동자를 손해배상소송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가둔다. 악착같이 시간을 끌고 덫을 놓고 벽을 높인다. 사람들이 결국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미로는 절대 출구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지금 미로의 왕국. 우리는 모두 미로(maze) 속을 달리는 사람들(runners).

그러므로 다시 한번 ‘그다음’이 문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영화를 본 다음, 그래서 ‘벽을 넘는 일’보다 ‘미로를 빠져나오는 일’이 훨씬 더 고되다는 걸 확인한 다음,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김세윤 방송작가
김세윤 방송작가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짐만으론 부족하다. 벽은 죽은 것이지만 알은 살아 있는 것이니. 만일 살아서 그 단단한 벽을 넘는 알이 있다면, 벽 너머 겹겹의 미로에서도 끝까지 그 알의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미로 속의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실타래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리아드네가 되어야 한다.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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