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바꼭질>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일본 영화 <링>에서 사다코가 티브이 밖으로 기어나온 지 15년. <장화, 홍련>이 지금도 깨지지 않는 한국 공포영화의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지 10년. 이제 귀신의 시대는 저문 것이 아닐까, 혼자 성급하게 결론 내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건,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공포영화 <숨바꼭질>(사진)을 본 밤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린 참 매정한 관객들이다. 퇴행성 관절염과 목디스크로 신음하면서도 두두둑, 뼈 마디마디 야무지게 꺾으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귀신들에게, 그 많은 케토톱 한장 붙여주지 않았고 그 흔한 추나요법 한번 권하지 않았다. 오두가단 차발불가단, ‘내 목은 칠 수 있을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단발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긴 머리로 부르카를 만들어 얼굴 가린 귀신들에게, 그 쉬운 앞가르마 한번 타주지도 않았다. 더러는 백내장이, 몇몇에겐 대상포진이 발병한 걸 뻔히 알면서도,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귀신들이 매년 여름 겹치기 출연으로 혹사당하는 것에도 우리는 침묵했다.
그러면서 한국 공포영화가 귀신을 활용하는 방식은 한국 축구대표팀이 김신욱의 머리를 활용하는 방식만큼이나 단조롭고 식상하다고 비아냥대기 일쑤. 귀신 대신 살인범과 납치범이 활개치는 영화로 잽싸게 몰려가기 바빴다. 심기일전, 권토중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이제 한국 공포영화의 귀신들은 피 묻은 단벌 원피스 곱게 차려입고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사람이 갈수록 악랄해지는 탓에 더는 귀신이 설 자리가 없는 까닭이다. 나부터도 죽은 귀신보다 산 사람을 더 경계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숨바꼭질>이란 영화가 참 오싹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늦은 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 검은 바지에 회색 점퍼, 그리고 완벽하게 얼굴을 가린 검은색 오토바이 헬멧. 찜찜하긴 했지만 일단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 그런데… 그가 버튼을 누르지 않고 서 있다. 그냥 우두커니. 계속 차려 자세로. 한참을 망설이던 여자가 떨리는 손을 뻗어 버튼을 누른 다음에야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여자가 누른 버튼의 바로 위층 버튼을 누르는 사람. 쿵, 문이 닫히고, 위이잉,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불안한 침묵. 팽팽한 긴장. 더디게 흐르는 시간.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이렇게 외치고만 싶은 것이다. 아 씨×! 나도 이 느낌 안다구!
“최근에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요소는 귀신이나 유령과 같이 초현실적인 존재가 아닌 피부에 가깝게 와닿는 현실적인 불안감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누군가 침입하거나,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현실적인 두려움을 건드리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솜씨 좋게 데뷔작을 만든 신인 감독 허정의 인터뷰는, 그가 우리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감독이 말한 ‘누군가’는 누구일까. 나를 위협하는 타인? 아니, 언제 나를 위협할지 알 수 없는, 그래서 지레 멀리하며 미리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타인! 나에게 다가오는 낯선 사람? 아니, 툭 까놓고 말하자면, 나에게 다가오는 가난하고(!) 낯선 사람!
<숨바꼭질>은 대한민국 중산층이 갖고 있는 아주 보통의 두려움을 집요하게 자극한다. 내 집, 내 가족, 내 자동차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안간힘. 그리고 나보다 더 가난한 그 ‘누군가’의 우악스럽고 억척스러운 삶의 풍경에서 최대한 멀어지려는 발버둥. 영화는 그 피로하고 수고로운 중산층의 일상을 자꾸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 ‘누군가’만큼 가난해질까봐 제일 두려웠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저 사람 같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고 이질감을 느낀다면 그건 ‘동정’, 반대로 ‘그래, 저 사람도 나와 다를 바 없구나’ 하고 동질감을 느낀다면 그건 ‘연민’이라고 가르쳐준 어느 시인을 기억하면서, 내가 그 ‘누군가’를 동정하지 못하고 연민하는 미래를 맞이할까봐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로 그 ‘누군가’로 낮아질까봐 두려웠다.
이제 귀신의 시대는 저문 것이 아닐까, 혼자 성급하게 결론 내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그날 밤. 다행히 오토바이 헬멧 쓴 사람과 마주치지는 않았다. 대신 엘리베이터 벽에 붙은 거울 속 나와 마주쳤다. 온갖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 소시민이 서 있었다. 그냥 우두커니. 계속 차려 자세로. 그래도 다행인 건, 어쨌든 내가 올라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더 낮아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김세윤 방송작가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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