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나의 오래된 취미. 만들지 못할 영화를 상상하는 것. 결코 시나리오가 되지 못할 허튼 시놉시스를 혼자 머릿속에 썼다 지우는 것. 그중 몇개를 소개한다. 그냥 웃자고 쓰는 글이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이야기다.
1.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사진)의 한국형 후일담 <엄마는 브라자를 입는다>! 패션지 편집장 ‘아놔 윈투어’도 글로벌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쫄딱 망함. 어쩌다 보니 어린 딸들 홀로 키우기 위해 한국의 스트립쇼 무대로 흘러든 주인공. 동료들이 가장 예쁜 브래지어 골라 입느라 분주한 대기실에서 남몰래 ‘브라자’를 꺼내 착용하는 장면이 승부수. 딸들에겐 명품 브래지어를 사 입히면서 당신께선 마트에서 산 옅은 핑크색 브라자 하나면 됐다 하시는 전직 패셔니스타의 고결한 모성 앞에 절로 숙연해질 즈음 마침내 봉에 매달리는 오십줄의 엄마. “꺼져라”는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빌리 엘리어트>의 라스트신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아놔~ 윈투어! 정지된 화면 위에 특히 한국 관객의 심금을 울릴 자막 한 줄이 새겨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우리 엄마는 브라자를 입는다.”
모든 것을 잃고 무대에 선 어느 비정규직 돌싱 엄마의 눈물겨운 재기 노력을 통해 <풀몬티>의 감동을 재현하는 초특급 한미 합작 프로젝트. 메릴 스트립이 매일 스트립하는 영화임을 내세워 남성 독거 노인을 상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예정.
2. ‘철의 여인’ 대처를 닮았다는 여성대통령 집권 후, 외딴 암자로 숨어든 어느 대처승의 아내 이야기 <절의 여인>. 이 사찰은 스님보다 민간인 수가 더 많은 일명 ‘민간인 사찰’로, 진짜 신분이 밝혀지길 꺼리는 속세의 무리들이 속속 모여드는 곳. 한 사람당 보통 16개의 법명을 만들어 쓰며 사찰내 여론 조작에 힘쓴 결과, 비정규직 스님들의 전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대웅전 처마 끝에 매달린 최병승(僧)을 내치고, 막말 스님 윤창‘중’에게 사찰 실무를 맡기면서 본격적인 정치 풍자 코미디가 시작됨.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벌을 치는 ‘밀봉’의 아침에서 사대강사업(業)의 업보를 짊어지고 구천을 떠도는 녹색 귀신의 밤까지. 철의 여인 시대, 대처(帶妻)의 아내가 된 절의 여인 눈에 비친 2013년 대한민국의 웃픈 자화상! 사찰 주변 산천에 외래종 꽃 민영화(花)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목불인견의 클라이맥스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함. 제 입으로 “뼛속까지 친미”라 고백한 전 주지가 법당에 들여놓은 미국산 와불(臥佛) 앞에서 ‘내 미제와불’을 노래하는 장면은 <레 미제라블>에 비견할 최고의 뮤지컬 시퀀스로 평가받을 것.
3. 남영동의 한 보육원. 최근 부모와 헤어져 이 시설에 들어온 신입 김종태는 형편없는 식단에 식욕을 잃고 끼니를 거르기 시작함. 그러자 일명 ‘조리사’라 불리는 전설의 급식기술자 이근안(수십명의 식단을 돼지고기 2근 안에 다 해결한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음)을 전격 투입. 그가 직접 고안한 식판 칠성판(칠성급 호텔의 음식 사진을 식판 바닥에 붙여 놓고 그 위에 멀건 무국을 담아 내놓으며 상대적 박탈감을 극대화시키는 식판)만 보아도 체증을 느끼는 아이들. 고춧가루 탄 물로 밥을 지어 억지로
퍼먹이는 어른들. 그래도 새해 예산안만 통과되면 우리도 3500원짜리 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보지만…. 뭐? 국회의원 아저씨들이 올려준 한끼 급식비가 고작 100원이라구? 열받은 1만6000여명의 시설 아동들이 식판 집어던지고 국회로 달려가는 대규모 군중신이 클라이맥스. 대열 선두에 선 김종태가 소리 높여 명대사 작렬! “옜다, 너나 먹어라!”
적나라한 식기 노출로 등급 분류의 난항이 에상되는 문제작. 한끼 밥값 1520원으로 아이들의 꿈을 짓밟은 여의도 텔레토비들의 잔혹동화. 믿기 힘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보육원 푸드 호러 <남영동 1520>. 3D로 만나요!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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