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천금같은 추석 연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요? 취향도 담당 분야도 모두 다른 <한겨레> 문화팀 기자들이 소개합니다. ‘나 추석에 이거 하고 놀래!’
<한국방송>(KBS) 1텔레비전의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 화면 갈무리.
요즘 가장 애정하는 프로그램이 <한국방송>(KBS1)의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다. 아쉬운 건 방송시간. 토요일 저녁 7시10분이라 여간해선 본방사수가 쉽지 않다. 집안행사가 있거나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더라도 저녁식사 시간대이다보니 방송의 절반은 놓치는 게 다반사다.
지난주엔 큰맘먹고 시간맞춰 티브이를 켰더니 결방이었다. 태풍 링링 북상으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전문자에 하루종일 집에서 지내며 식사도 일찍 끝낸 뒤 리모콘을 들었건만 뉴스특보를 내보내며 재난방송만 나왔다.
머쓱했지만 재난방송 주관 방송의 역할을 강조해온 미디어 기자로선 박수 ‘짝.짝.짝’ 하지만 다짐했다. 이번 추석 연휴엔 동네 한 바퀴를 미친 듯 돌아보고 말리라.
<동네 한바퀴>는 지난해 7월 2부작으로 파일럿 편성 뒤 반응이 좋아 11월 24일부터 정규 편성됨에 따라 지금까지 39회 이어온 프로그램이다. 서울 마포 망원동을 시작으로 강릉 정동진, 창원 마산합포와 진해, 군산, 춘천, 포항, 목포 유달동, 대구 교동·칠성동, 안산 단원구 등 전국 곳곳의 좁은 골목길을 누볐다. 선정된 동네에 배우 김영철씨가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주변의 유적지, 시장, 맛집 등을 찾는다. 이곳 저곳을 찾아간다는 점에선 ‘로드 다큐’지만 동네 사람들의 희로애락 스토리가 담긴다는 점에선 ‘휴먼 다큐’다.
지난 3월2일 방송된 ‘기억하라 그 언덕 - 서울 효창동·청파동’ 편을 예를 들어보자. 김영철씨가 가장 먼저 축구동호회팀들이 운동하는 효창운동장과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의 백범기념관을 찾는다. 이어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는 김밥집 사장을 만나고, 동네 주변의 색소폰 부부의 인생사도 듣고 숙명여대생들이 잘가는 와플집과 하숙집도 들른다. 또 홀로사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먹거리와 생필품을 전하는 사랑의 나눔행사에도 참여하는 방식이다.
우리네 일상과 이웃들의 따뜻함이 잔잔하게 전해진다. 보고 있으면 갈등과 긴장없이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는 진짜 착한 프로그램. 화면으로 위치도 표시해줘서 이동 장소에 대해 입체감을 갖게 한다.
김영철이 동네를 걷다가 들르는 식당은 주로 국숫집. 김영철이 워낙 밀가루를 좋아한단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난 음식을 야무지게 먹는 김영철은 “나만 혼자 먹어 시청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동네 어르신들이 해주는 옛날 음식을 먹으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울컥할 때는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촉촉한 이슬비가 내린다.
그는 동네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한때 카리스마 쩌는 ‘궁예’였던 그는 이젠 동네 사람들에게 이웃 아닌 이웃으로 여겨진다. 어른들은 “아이구, 여기 웬일이냐”며 악수를 청하고, 아이들은 ‘4딸라 아저씨’라며 반긴다. 특별히 급할 것 없이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나 역시 뒤따라 걷는 듯한 기분이다.
영철씨, 올 추석엔 우리 함께 ‘동네 한바퀴’ 여러 바퀴 돌아요!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