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천금같은 추석 연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요? 취향도 담당 분야도 모두 다른 <한겨레> 문화팀 기자들이 소개합니다. ‘나 추석에 이거 하고 놀래!’
지난 8일 ‘로큰롤 명화극장’ 공연이 열린 서울 홍익대 앞 생기스튜디오 벽에 붙어 있던 추억의 영화 포스터들. 서정민 기자
발단은 지난 주말에 본 공연이었다. 8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 생기스튜디오에서 열린 공연의 제목은 ‘로큰롤 명화극장’.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 타틀즈, 로큰롤 밴드 제8극장, 그레이트볼스 등 세 팀이 펼치는 연합공연이다. 셋 다 1950~60년대에 유행한 로큰롤을 추구하는 밴드라 공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명화극장’이라는 타이틀이 색달랐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콘셉트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추억의 영화 포스터들이 공연장 벽에 빼곡하게 붙어 있었던 것이다. <빽 투 더 퓨쳐> <펄프 픽션> <라 밤바> <영웅본색> <화양연화> <첨밀밀>…. 모두 1980~90년대 개봉 당시 봤던 영화라는 게 반가우면서도 묘하게 씁쓸했다. ‘나 옛날 사람인가봐.’
무대 뒤 스크린에서 <명화극장> 오프닝 화면과 시그널 음악이 나왔다. <명화극장>은 <한국방송>이 1969년부터 2014년까지 방영한 영화 프로그램이다. 케이블방송도 없던 시절, 주말마다 <문화방송>의 <주말의 명화>와 함께 챙겨보곤 했다. ‘이 화면이 이렇게 익숙하니 나 진짜 옛날 사람인가봐.’
먼저 타틀즈가 나왔다. 비틀스의 초창기 로큰롤 곡들을 거의 그대로 재연했다. 스크린에선 비틀스가 직접 출연한 1964년작 영화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가 상영됐다. 비틀스 음악은 흥겹고 감격스러웠지만 딱히 그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오는 18일 개봉하는 <예스터데이>가 더 기다려진다. 비틀스가 사라진 세상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자신의 것인 척하는 무명 가수의 이야기라고 한다.
두번째로 나온 밴드는 제8극장이었다. 명화극장 콘셉트에 충실하게 공연장 불을 모두 끄고는 스크린에 영화를 비추며 해당 영화의 오에스티나 그에 어울리는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줬다. 하이라이트는 <영웅본색>이었다. 장국영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죽는 명장면을 보여주며 주제가 ‘당년정’을 들려줬다. 홍콩 누아르의 다소 과한 비장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촉촉해진 눈을 크게 뜨고 물기를 말려야 했다.
마지막 순서는 그레이트볼스였다. 1950~60년대 로큰롤에 충실한 밴드답게 로큰롤의 대부 척 베리의 ‘자니 비 굿’을 연주했는데, 뒤에서는 <빽 투 더 퓨쳐> 장면이 나왔다. 영화 속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제이 폭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대로 간다. 엉겁결에 파티장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곡이 ‘자니 비 굿’이다. 영화에선 이 무대를 보고 놀란 연주자가 척 베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네 요새 새로운 거 찾고 있다고 했지? 이거 들어봐” 하고 수화기를 무대 쪽으로 돌리는 장면도 나온다. 척 베리가 마티 맥플라이의 연주를 듣고 ‘자니 비 굿’을 만들었다는 상상력이 기발하다.
공연장을 나오며 이번 추석 연휴에 <빽 투 더 퓨쳐> 시리즈를 정주행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1985년작 1편부터 1990년작 3편까지 완벽한 3부작을 말이다. 그런데 보고 싶은 영화 1순위가 바뀌었다. 페이스북 댓글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당년정’ 무대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옛날 사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누군가가 <영웅본색> 1편과 2편의 오에스티가 헷갈린다고 하자, 다른 누군가가 장국영의 ‘당년정’은 1편 주제가이고 2편 주제가는 역시 장국영이 부른 ‘분향미래일자’라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영웅본색>을 100번 넘게 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번에는 또다른 누군가가 ‘당년정’은 1편 주제가인데 영상은 2편 장면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댓글피디아’를 부를 만큼 많은 이들의 추억과 애정을 여전히 간직한 영화가 얼마나 될까? <빽 투 더 퓨쳐>보다 먼저 <영웅본색> 시리즈를 정주행하며 그 시절 감성을 만끽하고 싶어졌다. <영웅본색 1>과 <영웅본색 2>가 걸작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앞선 두 편 이전의 얘기를 다룬 프리퀄 영화 <영웅본색 3>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 걸로 기억한다. 2018년 개봉한 <영웅본색 4>는 망작이었다. 왕대륙 등 젊은 배우들로 1편을 리메이크했는데, 안 하느니만 못했다. 네이버 평점에는 이런 글이 달렸다. ‘1, 2는 울면서 봤고 3은 씁쓸하게 봤다. 4는 보면서 술병 던졌다.’
그럼에도 나는 1~4편을 정주행할 것이다. 4편을 보다가 술병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나온 리메이크작을 보면서 ‘역시 옛날 원작이 최고지’ 정도는 해줘야 진짜 ‘옛날 사람’이다. 요즘 트렌드가 뉴트로(뉴+레트로)라는데, 나는 이번 추석 연휴에 고색창연한 ‘레트로’ 인간이 되어보련다.
아, <영웅본색>에 <빽 투 더 퓨쳐>까지 정주행하고도 시간 남으면 노래 하나 들어야겠다. 원더버드의 ‘옛날 사람’.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