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일단 읽어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의 주역들이 퀴즈를 푼다.
지에이치(GH·박근혜) “청기와집 들어갈 때부터 내가 키운 것은?”
이 부회장(이재용) “국정원.”
순시리(siri·최순실) “극우집회!”
차 감독(차은택) “최순실.”
순시리 “쟤 뭐래니?”
지에이치가 자꾸 부인하자, 보다 못한 순시리가 쐐기를 박는다.
순시리 “언니는 대립과 갈등, 분열과 혼란을 키웠고. 논란의 불씨도 키웠잖아.”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화는 한술 더 뜬다.
엠비 “독일 대통령이 일반인보다 은행 이자를 1% 싸게 받아 사퇴했대요.”
지에이치 “그런 거 보면 우리는 참 인정이 넘치지. 우리가 그 맛에 하는 거지.”
엠비 “봐줄 것 다 봐주고 너그러운 국민들 덕분에 저도 그동안 참 잘 놀았습니다.”
지에이치 “저도 잘 놀았습니다.”
엠비 “근데 너무 노셨더라. 세계 최고야. 기네스북에 들어가야 해.”
엠비 “연령대별 거짓말 조사를 했는데, 거짓말을 가장 안 하는 나이는 60대부터래요.”
엠비·지에이치 “푸흡흡흡흡.”
지에이치 “공들여 연구했을 텐데… 풉.”
이런 ‘쌔끈한’ 풍자를 봤나. 케이블채널에서 매주 수요일 밤 11시에 방송하는 <캐리돌 뉴스>(에스비에스 플러스(SBS+), 에스비에스 펀이(funE), 에스비에스 시엔비시(CNBC). 이하 <캐리돌>)의 한 장면이다. 한국에서 이례적으로 시도하는 50분짜리 독립된 정치풍자 프로그램인데,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응이 뜨겁다. 재미와 풍자를 다 잡았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매회 정치·사회·문화의 주요 인물을 본뜬 인형이 등장해 촌철살인의 풍자를 선보인다. <시사인>에서 ‘캐리돌 만평’을 연재하는 양한모 기자가 인형을 만들고, 성우 7명이 목소리를 연기한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염성호 제작본부장은 “4~5년 전부터 생각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시사에 집중한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봤다. 이 관심을 끌어올려 모든 연령대가 쉽고 편하고 재미있는 정치를 접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팩트에 기반한 풍자의 묵직함 ‘캐리돌’은 캐리커처와 돌(인형을 뜻하는 영어 doll)의 합성어다. <캐리돌>의 기본 구성은 <8시 뉴스>에서 따왔다. 지에이치가 스튜디오에서 국정농단의 주역들한테 문제를 내는 ‘4면 퀴즈’와 엠비·지에이치가 함께 진행하는 ‘밤참 뉴스’, 한 인물을 집중 해부하는 ‘그들이 알고 싶다’, 드라마 <도깨비>를 패러디한 ‘허깨비’로 짜였다.
만듦새가 기존 개그·예능프로그램의 말장난과는 차원이 다르다. <캐리돌>은 팩트에 근거한 촘촘한 구성이 풍자의 무게를 더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성적표를 얘기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떠안긴 비용’이라는 차트를 만들어 자원외교 42조원, 4대강 사업 84조원, 세금 감면 63조원의 사례를 설명한다. “엠비 정부 시절 돌이켜보고 경제 성적표를 매겨봐 주세요”(김성준 앵커) “에이!”(엠비) “에이?”(김 앵커) “내가 생각할 때 에이야. 근데 경제전문가들은 씨 얘기도 많이 하더라고. 합쳐서 에이씨?”(엠비)라는 풍자의 결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알고 싶다’에서는 이동흡 변호사가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사실 등을 전하며, 그가 소장이 됐다면 지금 탄핵이 어떻게 됐을까를 곱씹어보게도 한다. 염성호 본부장은 “처음부터 팩트를 기반으로 풍자하자는 철칙을 세웠다. 패러디는 팩트에 기인하지 않으면 장난이 된다”고 말했다.
이준호 피디가 “내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할 정도로 풍자 수위도 높다. “밤참 메뉴로 라면 대신 파면은 어떠신지”라는 말의 ‘요리’부터, 탄핵을 당한 지에이치가 “내가 드라마 보고 있는데 내일 이사 가야 한다고 실장이 그래. 나는 후임자 정해질 때까지 그냥 있어도 되는 줄 알았어”라는 등 상황과 유머를 절묘하게 섞은 노련함이 돋보인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등 풍자 라디오를 많이 했던 박찬혁 작가가 대본을 쓴다. 실제 뉴스 같은 현장성도 공감지수를 높인다. 가령 2회에서는 김성준 앵커 인형이 현장에 나가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소식을 전했다. 당시 촬영 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김 앵커 인형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이 피디는 “사실감이 높아야 시청자들이 공감한다”고 했다.
■
팩트 체크, 현장성 사회부 뺨치는 취재 묵직한 풍자를 위한 노력은 언론사 사회부 뺨친다. 매회 피디 4명, 작가 6명이 달라붙어 1주일을 쉴 틈 없이 일한다. 보통 프로그램 제작진 구성과 달리, 1주일 내내 기사만 확인하고 검토하는 작가 2명을 따로 뒀다. 인형이 출연하는 탓에 촬영 시간도 갑절이다. “사람이면 알아서 움직이면 되지만, 인형은 컷마다 제작진이 이동시켜 촬영한 뒤 이어붙여야 한다”는 게 이 피디의 설명이다. 10분 남짓 등장하는 ‘허깨비’ 촬영에만 하루 종일 걸린다. 스튜디오 모습은 실제 뉴스 스튜디오에 인형을 앉혀놓고 진행한다. 김 앵커, 지에이치, 김상중하(김상중) 인형은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했다. 제작진이 몸 뒤에서 손을 넣어 눈, 입을 움직인다.
■
풍자의 맛 살리는 성대모사의 달인들 풍자의 재미를 맛깔나게 살려주는 것은 성우들이다. 염 본부장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가장 공들인 부분도 성우”라고 했다. 모두 7명이 목소리를 낸다. 개그맨 배칠수는 엠비와 유시민, 개그우먼 전영미는 지에이치와 순시리, 개그맨 정성호는 김상중하, 개그맨 안윤상은 전원책 목소리를 맡았다. 전문 성우인 최정호가 김 앵커와 방귀문(반기문)을, 김일이 이재용·차은택·황교안을 담당한다. 특히 엠비와 순시리는 말투와 호흡까지 실제와 똑같다. 이 피디는 “최고의 목소리를 뽑아내려고 내부에서도 목소리 경선을 벌였다”고 했다. 짧은 대본을 주고 전화기로 녹음해서 파일을 받은 다음 제작진이 가장 비슷한 한 명을 선택했다. 경쟁률이 제일 높았던 건 엠비다. 가장 어려웠던 인물은 패러디 사례가 거의 없었던 김 앵커. 이 피디는 “김성준 앵커도 자신의 패러디를 흔쾌히 허락했다”며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시키는 방법도 고민중이다”라고 했다. 이들은 목소리를 흉내 내려고 한 사람의 목소리를 만 차례 이상 듣고 따라하기를 반복한다. 정성호는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연습을 하면 어떤 목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캐리돌에 ‘성역’은 없다. 염 본부장은 “정치뿐 아니라 문화, 스포츠 등 사안에 따라 장르를 다양하게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