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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고주파 누나’ 캐리와 ‘꽃미남 오빠’ 왬…추억의 캐럴 열전

등록 2016-12-23 15:40수정 2016-12-23 20:44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1994년 11월1일. 이날은 크리스마스 캐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로 꼽힐 것임이 틀림없다. 최근 들어 크리스마스나 연말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다지만, 90년대에는 11월만 되어도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캐럴이 쏟아져 나왔다. 거리에서도, 라디오에서도 한 달 내내 캐럴을 들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다만 오직 크리스마스 한 철 장사라는 제약이 있기에, 가수 입장에서는 판매고를 많이 올린다거나 오래 동안 사랑받을 기대는 하지 않고, 팬서비스 개념으로 노래를 발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90년대 내내 지구촌의 디바로 군림했던 머라이어 캐리도 그랬다. 하얀 눈밭에서, 지금보다 두 배로 날씬한 몸매에 착 달라붙는 산타복장으로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담은 음반 <메리 크리스마스>를 발표할 때만 해도 자신의 노래가 수십 년 동안 최고의 캐럴로 사랑받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럴 ‘크리스마스에 내가 원하는 건 오직 당신 뿐’(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의 이야기다.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그해 방송과 거리를 휩쓸었고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1995년부터는 새로운 캐럴이 안 나왔냐고? 무슨 말씀. 여전히 수많은 가수들이 수많은 캐럴을 발표했지만 20년이 넘도록 이 노래를 겨울왕국의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셀 수 없이 많은 리메이크가 이루어지면서 이 노래의 아성은 더욱 단단해질 뿐. 게다가 역시 10년 넘도록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로 꼽히고 있는 <러브 액추얼리>에 삽입되면서 윈윈효과처럼 노래와 영화가 서로를 빛내주고 있다. 기록을 찾아보면 이 노래 한 곡이 벌어들인 돈이 5천만 달러가 넘는단다. 우리 돈으로 적게 잡아도 오백억 원이 훌쩍 넘는다. 당연히 캐럴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린 노래이기도 하다.

그냥 듣기에는 마냥 즐겁고 행복한 노래 같지만, 사실 부르려고 시도해보면 무척 어려운 노래다. 이 노래를 발표할 시절 머라이어 캐리의 성량은 최고치를 찍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하이노트 고음을 허밍처럼 쉽게 흩뿌려대던 그녀의 전성기 시절 노래이기에, 그녀조차도 요즘은 아주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이 노래를 못 부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다. 가장 부르기 어려운 캐럴이 가장 즐겨 불리는 아이러니랄까.

그렇다면 이 노래가 탄생하기 전에는 어떤 노래가 겨울왕국의 왕좌에 앉아 있었을까? 원조 꽃미남 듀오 왬(Wham)의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다. 이 곡은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이 나오기 꼭 10년 전인 1984년 12월에 발표되었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이 노래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방송과 거리에 흘러나왔다.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가 흥겹다면 이 노래는 애잔하다.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가 아니었다면 이 노래는 좀 더 오래 왕좌를 지켰을 것이다.

80년대 후반, 나도 이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던 여자애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지 마이클의 녹아드는 목소리와 첫눈처럼 청량한 실로폰 소리,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선율까지, 이 노래는 캐럴이기 전에 완벽한 사랑노래다. 가사 내용이 프러포즈를 거절하고 돌아선 여자에 대한 이야기여서 신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최고의 크리스마스 노래로 사랑받았다. 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고 있다. 사춘기 소년의 두근거림도 고스란히 살아난다. 자동적으로 그때 그 소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가 우리 아재들, 그리고 언니들이 각자의 추억과 함께 기억하는 캐럴들이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부모님들이 익숙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프랭크 시나트라보다도 띠동갑으로 나이가 더 많은 빙 크로스비. 우리나라에서는 구수하게 캐럴을 부르는 할아버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미국식 엔터테이너의 시초라고 부를만한 화려한 연예인이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있다고 한다.

그는 노래를 좀 할 줄 아는 보통 남자였다.’

겸손한 묘비명과 달리 그는 가수 뿐 아니라 배우와 코미디언으로서도 굉장한 활동을 펼쳤다. 먼 훗날 자신이 크리스마스 캐럴의 원조 할아버지로 기억될 줄, 그는 조금이라도 짐작했을까? 빙 크로스비보다 70년 늦게 태어난 머라이어 캐리도 2086년에는 캐럴 할머니쯤으로 기억되려나? 어쨌든 독자님들, 메리크리스마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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