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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진짜 추억은 아쉬워야 하는 법

등록 2016-12-09 17:04수정 2016-12-12 11:04

추억 속의 날라리 누나 - 신디 로퍼

신디 로퍼.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라디오 피디라는 직업상 가끔 신청곡이 들어올 때면 노래를 틀긴 해도, 그때마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녀의 추억이 제대로 되살아난 계기는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때문이다.

극중 괴짜 의사 한석규의 테마곡으로 빌리 조엘의 ‘스트레인저’가 쓰이는 장면을 봤을 때만 해도, 드라마 <밀회>에서도 빌리 조엘이더니 무성의하게도 똑같은 아티스트를 고새 또 우려먹나 싶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진심이 관객들을 감동시켰던 10화 엔딩 장면에서 신디 로퍼의 ‘트루 컬러스’가 흘러나올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올드팝들이 그냥 듣기 좋으라고 넣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노래를 골라 정성껏 심은 곡들이었구나. 그러면서 10대 시절 신디 로퍼에게 열광하던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나는 경상북도 울진이라는 시골에 살던 초등학생이었다. 티브이(TV)가 있는 집도 몇 집 안 되던 깡촌 시골에 살던 내가 팝음악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사촌형 덕분이었다.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던 사촌형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혹은 다리가 불편한 덕분이었는지 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팝송 박사였다. 얼마나 팝송을 좋아하고 많이 알았는지, 형은 결국 조그마한 음반가게를 차렸다. 그 이름도 고색창연한 목마레코드. 20대 청춘들은 한 번도 본 적 없을지 모르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레코드판과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음반가게가 스타벅스만큼 흔했다. 음반가게들은 대부분 출입문 옆에 외부로 향한 스피커를 마련해놓고 하루 종일 노래를 틀어댔는데 그 음악이야말로 거리의 비지엠(BGM)이자 매일매일 우리 일상의 사운드트랙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내가 가장 탐내던 장소가 바로 사촌형의 음반가게 목마레코드의 턴테이블 박스였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사촌형의 음반가게에 매일같이 들락거리며 음악을 듣고 레코드판을 뒤적이던 나는 제법 팝송을 흥얼거리게 되었다. 그 당시 내 꿈이 내가 고른 음악을 직접 틀어보는 것이었다. 음반가게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얹는 그 순간을 얼마나 꿈꿨는지.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 장소로 낙점할 정도로 외진 시골이긴 해도, 거리에 내가 튼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 장면!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일 정도로 행복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사촌형에게 나도 음악을 틀어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대답은 매몰찼다. ‘까불지 마 인마.’

그 시절, 상상 속에서 어떤 노래를 제일 먼저 틀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아하의 ‘테이크 온 미’였다가,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였다가, 어떤 날은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의 테마곡을 틀고 싶기도 했다. 너무 자주 바뀌는 머릿속의 선곡에 못마땅하던 나는 첫 곡은 정해놓고 그다음 곡들 순서를 고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정해진 노래가 바로 신디 로퍼의 ‘걸스 저스트 워너 해브 펀’이었다.

팝 디바의 계보는 이상하게도 라이벌전으로 이어져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그랬고, 그 전에는 머라이어 케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그 전에는 데비 깁슨과 티파니가 있었다. 그런 팝의 여왕 라이벌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두 아티스트가 바로 마돈나와 신디 로퍼 누님 되시겠다. 사실 음반 판매량이나, 공연 동원 관객 수 등등 여러 가지 지표를 보자면 마돈나와 신디 로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돈나의 압승이다. 그러나 추억의 영역으로 들어가자면 얘기가 다르다.

팝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사진 100장을 나보고 꼽으라면 분명히 집어넣을, 집시여인풍의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신디 로퍼의 모습을 재킷으로 내세운 음반 <그녀는 참 특이해>(She’s so unusual)는 그야말로 명반이다. ‘시 밥’(She bob), ‘타임 애프터 타임’, ‘걸스 저스트 워너 해브 펀’까지 한 곡 버릴 것 없는 80년대 팝음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수십년째 왕성한 활동과 세계적인 인기를 누려온 마돈나와 달리 신디 로퍼는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또 너무 빨리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련한 추억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진짜 추억은 아쉬워야 하는 법.

아, 사촌형의 음반가게에서는 음악을 틀어봤냐고? 목마레코드와 사촌형에 관한 눈물겨운 이야기는 나중에 마돈나 편으로 미루겠다. 낚시꾼이라고 욕을 먹으려나? 일단은 다음 화 크리스마스 특집 편을 기대해주세요.(윙크)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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