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EBS 다큐 <민주주의>
EBS 다큐 <민주주의>
2일 오후, 서울 도곡동 이비에스(EBS) 사옥 내 편집실에서 유규오 피디가 자신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민주주의>의 타이틀 장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무지개색 바탕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다큐 연출을 위해 관련 서적 30여권과 각종 논문을 읽었다는 유 피디는 시종 웃는 얼굴로 차분하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사진 오승훈 기자
세계적인 석학인 아담 셰보르스키의 방송 인터뷰 화면 갈무리.
세계적인 석학인 토마 피케티의 방송 인터뷰 화면 갈무리.
세계적인 석학인 노엄 촘스키의 방송 인터뷰 화면 갈무리.
분배 해법으로 민주주의 다뤄 호평
촘스키·피케티 등 석학 22명 인터뷰
삽화와 재연 등 만듦새도 이채로워
교양물로 유명한 유규오 피디 연출 자유경제원, 이념편향적이라 시비
“민주주의는 그런 다양성까지 포괄
좌우 양쪽서 홀대받은 민주주의
불평등 완화할 유일한 정치 대안
한국 민주주의 미래 낙관적이다” 무페·셰보르스키 등 열정적 인터뷰 -촘스키, 피케티, 셰보르스키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석학들의 인터뷰가 줄을 잇는다. 몇 명의 학자들을 어떻게 섭외했나? “외국 학자만 22명을 인터뷰했다. 2014년 9월부터 기획했는데 인터뷰 요청을 일찌감치 지난해 1월에 보냈다. 4월과 9월에 미국, 5월과 10월에 유럽에 갔고 출장 전에 질문지를 보내드렸다. 4월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5월에 만나는 식으로 진행했다.” - 만나보니 어땠나? “다들 보내드린 질문과 관련해서 준비를 열심히 하셨더라.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써서 국내에서도 유명한 샹탈 무페 교수는 문답으로 하지 말자며 본인이 40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궁금한 건 따로 물어보라고 하는 등 굉장히 성의있게 인터뷰에 응했다. 아담 셰보르스키 뉴욕대 교수는 ‘큰 숙제를 한 거 같다’며 부담감을 털어놓더라. 나중엔 ‘잘 만들라’고 격려해줬다.” - 인터뷰 비용을 지급했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인터뷰 요청을 할 때 이비에스를 미국의 피비에스(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 같은 공영방송이라고 소개를 해서 그런지 다들 공짜로 인터뷰를 해줬다.(웃음) 셰보르스키 교수의 열정적인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옷차림도 마치 블루칼라 노동자 같은 캐주얼이었고 세계적 명성에 비해 뉴욕대 연구실도 작았지만 아주 즐겁고 뜨겁게 인터뷰를 해줬다. 정말 뜨거웠다.” - 대부분의 교수들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을 듯하다.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언급은 없었나? “예일대와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로 있는 제이컵 해커와 폴 피어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수들이 한국에 대해서 인연이 있었다. 베르나르 마냉 뉴욕대 교수를 만났을 때 그가 쓴 <선거란 민주적인가?>(후마니타스)라는 책 내용 가운데 ‘청중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한국 미디어 구조는 보수과점이라고 했더니 당혹해하면서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냉의 청중민주주의는 공적인 여론장과 선거 경쟁을 여론 전문가, 선거 전문가, 기자들과 같은 미디어 전문가들이 지배하게 됨에 따라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청중으로 전락했다는 개념이다. 이로 인해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간극, 인민의 의지와 대표의 결정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지게 됐다고 마냉은 지적한다. 선거의 귀족제적 측면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갔나 보다. 방송에 도움이 된 민주주의 관련 책들을 추천한다면? “관련 서적 30권은 넘게 읽은 것 같다. 관련 논문들까지 합치면 이참에 정치학 석사 수준은 되지 않겠냐고 동료들이 농담하고 한다.(웃음) 방송 부별로 언급을 하자면 우선 1부는 앞서 언급된 마냉의 책이, 2부는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후마니타스), 3부는 역사학자 토니 젓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플래닛), 4부는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후마니타스), 경제학자 마저리 켈리의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북돋움), 5부는 제이컵 해커, 폴 피어슨 교수가 같이 쓴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21세기북스)에서 도움을 받았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로버트 달이었다.” - 삽화 애니메이션과 남북전쟁의 시발이 된 렉싱턴 전투 재연 장면 등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렉싱턴 전투 장면은 사실 렉싱턴시 시민들이 매년 4월에 하는 행사를 촬영한 거다(웃음). 그래서 4월로 첫 해외촬영 일정을 잡았다. 나머지 아일랜드 기근과 아테네 민회 재현 장면 등은 현지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일반 시민들을 섭외해 촬영했다. 삽화 애니메이션은 우리와 줄곧 작업한 업체가 그쪽 분야에서 워낙 실력이 뛰어난 점이 주효했다.” - 해외촬영 시 어려움은 없었나? “그리스 아테네에서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드론을 띄워 촬영하기로 하고 150만원을 관광청에 지급했는데 알고 보니 해가 8시에 뜨는 거다.(웃음) 그래서 결국 8시30분에 찍었다. 미국 연방의회 건물에서 촬영을 할 땐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면 바로 연락이 오더라. 우리와는 다른 미국의 빡빡한 취재환경이 느껴지기도 했다.(웃음)” “방송사들 교양 다큐에 더 투자해야” 대학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기자가 되려 했지만 1994년 이비에스에 털컥 입사해 프로듀서가 됐다. 2002년 ‘도올, 인도를 만나다’를 연출했던 그는 이듬해 ‘아기성장보고서’로 한국방송프로듀서상을 받기도 했다. 피디가 돼 민주주의 같은 다큐를 만들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교양 다큐를 안 보는 시청자들을 탓하기보다 방송사들이 교양 다큐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면 시청자들도 눈길을 줄 거라 믿는다는 그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낙관적으로 본다. 윗세대는 학력수준이 낮지만 40대 이하는 대졸이 다수다. 기본적으로 고학력인데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따른 문제점을 모두 느끼고 있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총선 결과가 그 증거다. 20대 국회가 성과를 내면 민주주의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지속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로 귀결될 것이다.” 정치학자를 방불케 하는 인문주의자 피디의 낙관은 자신이 만든 다큐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저서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의 말미에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당신은 경제적 불평등과 법인 기업의 비민주적 권위를 원하는가, 아니면 정치·경제적 평등과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에 동참하려면 포털에서 이비에스 다큐프라임 민주주의를 검색하면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쓸 만한 시청각 교재가 거기에 있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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