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의 커서는 두가지 질문지 앞에서 깜빡이고 있다. 하나는 듣기 좋은 말들의 향연이고, 다른 하나는 에두르지 않는 돌직구들이 담겨 있다. “솔직한 걸로 하죠. 노코멘트하면 되니까. 하하.” 가식적인 걸 싫어하는 그다운 대답이다. 2015년 스크린과 무대를 종횡무진한 조승우를 지난달 2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2015년은 조승우로 시작해 조승우로 끝났다. <지킬 앤 하이드><맨 오브 라만차><베르테르>에 이어 <암살><내부자들>까지 세편의 뮤지컬과 두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모두 잘됐다. 주연을 맡은 영화가 “<타짜>이후 9년 만에 흥행”했고, 우정 출연한 <암살>도 천만 관객을 넘었다. 그 힘을 3월1일 뮤지컬 <헤드윅>으로 이어간다.
“지난해 쉰 날이 없었을 정도”로 바쁘게 얼굴을 내비쳤지만, 조승우에 대한 묵은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소문, 남자 조승우의 사생활까지 정말 궁금했던 것들을 던지는 ‘솔직토크’의 첫 주자, 그와 마주앉았다.
영화면 영화, 뮤지컬이면 뮤지컬
2015년을 통째로 집어삼킨 배우
10개월간 계속된 인터뷰 요청 끝에
“스토커 같더라구” 가식없이 솔직
-10개월간 만나자고 했는데, 이제야 보네요. 이렇게 구애했으면 정말 연애라도 했겠다.
“어찌나 스토커처럼 찾아오시는지.(웃음) 이런 식으로 신문과 따로 인터뷰하는 건, 데뷔하고 처음이네요.”
지난해 4월2일 <지킬 앤 하이드>대기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단호했던 그는 여러 차례 기회 닿을 때마다 얼굴을 들이밀자 조금씩 마음이 동했다. <내부자들>을 세번 거절한 뒤 받아들인 이유 중에는 “이렇게 나를 원하는데”도 있었다고 한다. 이 남자, 은근 정에 약하다.
-<내부자들>이 관객 900만을 돌파하고 뮤지컬도 잘되고, 지난해는 조승우한테 의미있는 해였죠.
“기쁨을 길게 만끽하니 무뎌져요.(웃음) 이미 극장에서 내리고 있어서 천만 관객은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아쉽지는 않아요. 전 <내부자들>에서 한 게 별로 없는데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고생은 백(윤식) 선생님과 병헌 형이 다 했죠.”
-9년 만의 흥행작이라는 데 놀랐어요. 그러고 보니 조승우는 믿고 보는 배우이지만, 흥행 보증수표는 아니에요.
“그에 대한 책임감은 있어요. 그런데 영화는 정말 운 같아요. 시기도 잘 타야 하고. 내가 정말 좋아서 했던 작품들이 흥행이 안 되고. 그럼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해요.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은 정말 열심히 찍었는데 군대 가면서 홍보도 못 나가고 결과도 안 좋았어요. <퍼펙트 게임>(2011)도 그렇고.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성적 잘 나올 것 같은 작품을 의도적으로 택해볼 법도 한데요.
“뻔한 건 싫어요. 공장 찍어내듯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부류의 시나리오는 못하겠어요. <내부자들>했다고 대부분 범죄물이 들어와요. <후아유>(2002) 하고 나서는 80% 이상이 청춘멜로였어요. 내용도 다 비슷해요. 내가 재미가 없어요. 과정이 즐거워야 결과가 어떻게 되어도 후회가 없는데. 제가 이것저것 재고 하는 걸 잘 못해요. 그런 방면으로는 바보예요. 바보.”
-그래서 한류의 중심에서도 비켜나 있어요.
“아쉽지 않아요. 한류로 뻗어가는 스타들이 가진 재능이나 기운이 나한테는 없는 거고. 그들은 그들의 몫을 잘해주고 있는 거죠. 나는 여기서 열심히 연기할래요. 전 한국말로 대사하기도 힘들어요.(웃음)”
“스타라는 말이 오그라든다”는 그는 성공할 작품을 좇기보다는 연기 의욕을 부추기는 작품을 선택해왔다. 1999년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한 이후 <클래식>(2003)으로 로맨틱한 남자의 대표주자가 되나 싶더니, 곧바로 <하류인생>(2004)의 거친 남자로 그 ‘기대’를 깼고, 자폐증을 앓는 청년(<말아톤>·2005)이 됐다가, <복숭아나무>(2012)에서는 심지어 샴쌍둥이를 연기했다. 작품만 좋으면 규모, 주·조연도 가리지 않았다. 2013년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이상, 그 이상>에 출연하는 등 의외의 행보를 이어왔다.
-솔직히 인기와 돈을 좇고 싶지 않나요?
“20대 초반에 뮤지컬을 고집하는 제게 주변에서 방송을 해야 인기를 얻고 광고를 찍고 돈을 번다며 바보 같다고 했어요. 내 고집으로 영화와 뮤지컬만 하면서도 광고를 몇개씩 찍었어요. 큰 회사에서 스타로 키워주겠다며 제안한 적도 있었지만, 전 무대가 좋고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요.” 그는 지난해 오랜 매니저가 차린 회사와 계약했다.
“베르테르는 이제 더 못할 것 같아
순수함 감정 느끼기엔 너무 때 타
영화 하면 영사기 소리·팝콘 냄새
아직도 낭만이 좋은 옛날 감성파”
-지금껏 선택한 작품은 어떤 기준이었나요?
“세월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은 작품이에요. <타짜>가 10년 됐는데 지금 봐도 식상하지 않잖아요. <클래식><후아유>도 풋풋하고. 그런 것들을 만나기를 원해요. 드라마 <신의 선물-14일>(2014·에스비에스)이 그랬어요. 대본이 너무 재미있었고, 색다른 거 해보고 싶다는 의도가 느껴졌어요. 당시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던 <기황후>(문화방송)와 맞붙겠다고 하는 패기도 좋았고. 최란 작가님이 쪽대본 주는 작가가 아니니까. 너무 행복해하면서 찍었어요.”
-선택한 작품들이 좀 ‘올드’한 느낌도 들어요.
“제가 좀 옛날 감성이에요. 아직도 낭만을 중요시해요. 작품도 연애도. 난 아직도 영화 하면 극장이라는 공간이 먼저 떠올라요.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팝콘 냄새, 사랑이 싹트는 공간. 그런 장소가 주는 낭만이 있어요. 난 아직도 손편지를 써요. 작품도 옛날 이야기에 더 끌려요. <내부자들>은 낭만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우장훈이 어릴 때 살던 집은 정말 좋았어요.”
-새로운 작품을 찾는다면서 지난해 뮤지컬은 했던 작품만 계속 했어요.
“10년, 15년 등 의미있는 해가 되어서 그런 것도 있고, 아직 찾을 게 많아서라고 할까요. 나이 들면서 예전과는 달라진 감정에서 오는 연기 변화도 있고. 보물찾기 같은 재미가 있어요. 그런데 ‘베르테르’는 이제 정말 못할 것 같아요. 그런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내가 너무 때가 탔어요.(웃음)”
-작은 무대는 왜 안 서나요?
“너무 하고 싶어요. 연극도, 저예산 영화도 작품이 좋으면 주·조연, 단역 가리지 않아요. 단막극도 좋아해요. <춘향뎐>하고 나서 대학로 지하 180석짜리 극장에서 공연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대본이 안 들어와요.”
-출연료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것 아닐까요?
“작품이 좋으면 적게 받고 할 수 있어요.”
중학교 때 <맨 오브 라만차>를 본 이후 운명처럼 뮤지컬을 품은 그는 2005년 <지킬 앤 하이드>로 티켓 완판 시대를 여는 스타가 됐다. 특정 배우에 대한 팬덤 현상이 이때 처음 폭발했다.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도 우리 나이로 37살이 됐다. 전매특허였던 ‘매진’ 행렬이 김준수, 규현 등의 젊은 세대로 옮아가고 있다.
-곧 40대예요. 두렵진 않나요?
“오히려 기대돼요. 40대에는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질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로서는 긴 시간 에너지를 쏟아야 해 나이듦이 더 크게 다가올 것 같아요. 힘이 달릴 수도 있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20살 이후 처음으로 헬스를 해요. 체력은 오히려 20대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20대 때는 요령이 없어서 첫공(연)을 막공(연)처럼 했어요. 지금은 전체를 보면서 체력 안배를 하니까, 여유가 생겨요.”
-뮤지컬 스타들이 늘고 있어요. 위기감을 느끼나요?
“오히려 좋아요. 준수도, 규현도, 박효신도, 이지훈도 어쩜 그리 잘할까, 자극받아요. 자극되는 배우가 한명씩 나와주고 뮤지컬을 대중화시키는 게 너무 좋죠.”
-이젠, 조승우 표만 매진되는 게 아니에요.
“나도 이제 완판, 매진 별로 없어요. 매진의 시대는 갔어요. 이제 정상적으로 돌아왔구나, 거품이 좀 빠지고 있구나 싶어요.”
아직은 건재하다. 조승우의 <헤드윅>표는 이미 매진됐다. 애초 조승우는 2~3월 두달여 시간을 비워뒀다. 좋은 드라마 한편 하고 싶었다고 한다. 드라마 <피리 부는 사나이>에 출연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뒤 바로 <헤드윅>을 잡았다.
-왜 안 쉬는 거죠?
“쉬어도 할 게 없는데. 애인이 있으면 쉬겠죠.”
-쉬어야 애인도 생기고, 충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전 일할 때 스트레스가 없어요. 하루 중에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 극장에서 몸 풀고 메이크업하고 밥 먹고 공연하는 5~6시간이에요.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서 혼자 메이크업을 지울 때가 가장 외로워요.”
-끊임없이 연애를 갈구하는데, 소개팅도 하나요?
“안 하니까 못하는 거죠. 시도는 해보려고 해요. 올해 목표는 좀 더 사람을 만나는 걸 넓혀보자예요. 제가 집돌이예요. 강아지 밥주고 미드 보고 놀아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대시도 하나요?
“실제로 길을 가다가 첫눈에 반한 여성분한테 연락처를 묻고 사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연애를 오래(4년) 안 하다 보니 용기가 부족해졌어요. 연애도 일도 전기가 찌릿 와야 해요.”
-만나보니 의외로 다정한데, 왜 조승우 하면 까칠하고 예민하다는 말이 나올까요?
“조승우가 까칠하다는 말은 내가 만들어낸 부분도 있어요. 영화도 뮤지컬도 데뷔 초기에는 순수하고 바른 청년 같은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지킬 앤 하이드><하류인생><타짜>에 캐스팅되니 다들 미스캐스팅이라고 했죠. 그래서 조금 성깔 있어 보이자, 생각했어요. 차가워 보이게 말도 잘 안 하고. 광고 촬영 때문에 나온 소문이기도 해요. 권위적인 것에 대한 완전한 거부감이 있는데, 권위로 찍어누르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정의감 같은 게 생겨서 총대를 메서.(웃음) 가족들은 입바른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하죠.”
“까칠하고 예민하다고요?
극 역할 위해 일부러 만든 부분 있어요”
지방공연도 여행가듯이 기차타고
“혹시 알아요, 예쁜 여자 앉을지”
-의외로 소문이 많아요. 같이 작업한 여배우들과 죄다 사귀었다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웃음) 오죽했으면 팬들이 상대 배우와 잘 어울리면 사귀라고 부추겨요. 전 일할 때 동료들과 정말 잘 지내요.”
-눈빛이 ‘헤프다’고 해요. 의식하고 레이저를 쏘나요?
“제 눈빛이요? 일부러 남발하지 않는데.(웃음)”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해요?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인물 훤하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어요. 아줌마들한테.(웃음)”
-키가 작은 게 콤플렉스인가요. 포털에서 뺐어요.
“아닌데. 요즘은 안 넣어도 되기에. 다시 넣을까요?”
-올해 목표는 뭔가요?
“인생을 계획하며 살지는 않는데, 올해는 수영이든 테니스든 악기든 뭐든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연애. 그는 인터뷰 뒤 <베르테르>부산 공연을 위해 케이티엑스를 타러 간다고 했다. “여행가는 기분도 들고. 또 혹시 알아요, 영화처럼 예쁜 여자가 옆에 앉을지. 근데 눈치 없이 매니저가 한좌석만 따로 있는 자리를 잡아줘서. 아우 눈치가 없어.(웃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