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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더 스파이’…평범한 이들도 ‘진짜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

등록 2021-05-01 14:32수정 2021-05-01 20:55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더 스파이>

1960년대 미-소 ‘쿠바 미사일 위기’ 실화
핵전쟁 막으려 기밀문서 서방에 넘기는
소련 정보국 대령과 그의 전달책 이야기

평범한 영국 무역업자 역 컴버배치
“당신 가족도 살아남지 못해” 경고에
모스크바-런던 오가며 민간첩자 활동
밋밋함과 전형적 접근법은 아쉬워
마블유니버스의 히어로들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 &lt;더 스파이&gt;는 ‘이리도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지구를 구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주는 실화 바탕 영화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마블유니버스의 히어로들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 <더 스파이>는 ‘이리도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지구를 구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주는 실화 바탕 영화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외국 영화의 경우 수입사 측에서 붙이는 제목이 국내 제목으로 굳어진다. 그중 드물게 ‘아무리 주최 측의 고유권한이라 해도, 그래도 이건 좀!’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때도 있는데 <더 스파이>(The Courier)는 그 경우 중 하나겠다. 이유는, 이 영화가 ‘스파이’가 아닌 그로부터 기밀을 전달받아 정보기관에 넘겨주는 ‘전달책’(courier)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말하자면 <아바타>의 제목을 ‘나비족’으로 바꾼 것과 흡사한 처사일 텐데, 물론 흥행을 고려하는 입장에서 곧이곧대로 ‘전달책’이나 ‘배달원’ 같은 제목을 붙이긴 대단히 저어되겠으나, 그래도 이건 좀.

각설하고.

일촉즉발 핵전쟁 막은 첩보 실화

<더 스파이>는 1960년대 초, 소련(현 러시아) 군정보총국(GRU) 고위장교로부터 기밀을 건네받아, 영국 첩보기관 엠아이식스(MI6)를 거쳐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 이어지는 서방 측 정보기관으로 넘겨주는 전달책 역할을 하게 된 영국 무역업자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실화를 다룬다.

그런데 그 시기는 바야흐로 미국과 소련 간의 핵전쟁 가능성이 코밑까지 찰랑찰랑 차오르다 못해, 소련이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직전. 그 상황에서 영화의 소련 군정보총국 소속 스파이 올레크 펜콥스키(메라브 니니제) 대령은 핵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하며 소련의 핵무기 관련 정보를 서방에 몰래 넘겨주기 시작한다.

이렇듯 영화의 대전제는 그야말로 전 지구적 중요성을 가진 사건이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그 규모 자체가 영화의 관람성을 제고해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결말에 대해서라면, 우리의 생존 그 자체가 스포일러이므로.

<더 스파이>의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이 거하디거한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주인공이 ‘지극히 평범한 민간인’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위에 적은 영화의 배경을 보고 아마도 <스파이 브릿지>를 곧장 떠올리신 독자들이 많으실 텐데, 비슷한 듯 여러모로 다른 이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파이 브릿지>의 주인공이 압도적 에너지와 불굴의 신념을 품고 사건에 뛰어드는 능동적인 인물(더구나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이었던 반면, <더 스파이>의 주인공 그레빌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끌려들어오는 수동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레빌은 접대 골프에서 일부러 고객들에게 져주는 굴욕을 참아가며 “23년 뒤의 은퇴”만 바라보고 뛰는 무역업자다. 일단 그가 스스로 꼽는 자신의 장점은 “술이 센 것” 정도인데, 이 “아마추어”가 흡사 히치콕 영화의 주인공처럼 난데없는 미-소 첩보전에 빨려들어가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누구의 이목도 끌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히치콕스러운 서스펜스나 존 르카레스러운 첩보 스릴러는 이 영화의 지향이 아니다. 영화는 그런 서스펜스 스릴러들이 흔히 양파 껍질 삼는 정보들을, 심지어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전에 모조리 밝히고 들어간다.

대신 <더 스파이>는 전혀 다른 것을 지향한다. 그것은 ‘이리도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지구를 구하게 되었는가?’이다.

출발점은 ‘평범한 영국 시민’ 그레빌의 모스크바에 대한 첫인상이다. 쇼스타코비치 풍의 애수 어린 왈츠를 배경으로 석탄 광산에서 3년 정도 먼지를 뒤집어씌운 듯 우중충한 모스크바의 풍경, 이를 굽어보는 레닌 동상, 그리고 어디서나 뚱한 표정으로 빤히 주시(=감시)하는 눈길들 등등, 구 공산권 국가들을 묘사할 때 거의 산업표준처럼 쓰이는 이 장면들은 그레빌이라는 인물의 평범함을 대변하기라도 하려는 듯 평범하다. 이어 영화는 그레빌과 올레크의 조심스러운 접촉과 정보반출 과정, 그리고 엠아이식스, 시아이에이 요원들에게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험을 알리는 올레크의 대사 등 ‘스파이 스릴러’에 해당되는 장면들 역시 정보들을 매끄럽고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이 역시 딱히 새롭거나 흥미롭지는 않다.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는 스파이와 전달책은 1962년 미-소 핵전쟁 위기를 막는다. 비밀을 공유한 두 남자의 관계는 국경을 넘어 우정으로 발전한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는 스파이와 전달책은 1962년 미-소 핵전쟁 위기를 막는다. 비밀을 공유한 두 남자의 관계는 국경을 넘어 우정으로 발전한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하여 흥미로운 쪽은 역시나 ‘배달책’ 부분이다. 그레빌은 배달책 노릇을 시작한 지 얼마 못 가, 미국과 영국 요원들에게 이 위험천만한 일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레빌은 시아이에이 요원 에밀리 도노반(레이철 브로스너핸)이 ‘핵미사일이 떨어지기 4분 전에야 발령될 경보’를 말하며 “당신 가족 중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에 자신의 요구를 접는다. 그러니까 이 대목은, 그레빌의 동기가 ‘울며 겨자 먹기’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상향조정되는 순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아마추어’인 그레빌은, 갑자기 별것 아닌 일로 아들에게 화를 내고 아내 쉴라 윈(제시 버클리)에게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등, 스트레스와 공포로 인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남편을 보다 못한 쉴라는 더 이상 모스크바로 가지 말라고 요구하지만 그레빌은 멈출 수 없다.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다.

가족을 지키려는 노력 자체가 가족을 위기로 몰고 간다는 아이러니. 하지만 이 역시 그다지 우리의 흥미를 끌진 못한다. 왜냐하면 남편 그레빌과 마찬가지로 쉴라는 처음부터 ‘남편, 가족에 충실한’ 캐릭터이고, 쉴라에게는 가정을 떠날 별다른 동기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이 아이러니를 겪는 것은 올레크 쪽 역시 마찬가지다. 소련과 미국의 수뇌들이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가운데(영화는 이 내용을 거의 실제 티브이 방송 화면으로 처리하고 있다), 올레크는 그레빌에게 자신의 딸만큼은 ‘이 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며 미국 망명을 결행할 뜻을 비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국 쪽 스파이를 통해 내부 스파이의 존재를 알게 된 소련 당국의 감시망도 점점 좁혀지며, 그의 가족 또한 위험에 빠진다.

물론 올레크와 그레빌의 압박감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은 외로움’이라는 점에서 이는 두 남자 사이의 또 하나의 정서적 연결회로가 된다.

그리하여 반강제로 시작된 스파이-전달책 관계는,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는 두 인물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비밀을 공유한 두 남자의 우정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소련 당국의 의심을 받기 시작한 올레크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미·영 정보당국에 반해, 올레크의 망명을 돕기 위해 위험천만한 소련행을 감행하는 그레빌이, 모스크바의 호텔 방에서 올레크와 망명 계획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는 스파이와 전달책은 1962년 미-소 핵전쟁 위기를 막는다. 비밀을 공유한 두 남자의 관계는 국경을 넘어 우정으로 발전한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하려는 스파이와 전달책은 1962년 미-소 핵전쟁 위기를 막는다. 비밀을 공유한 두 남자의 관계는 국경을 넘어 우정으로 발전한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브로맨스 눈길, 곳곳 군더더기는 아쉬워

올레크는 도청을 피하기 위해 볼륨을 최대로 높인 라디오를 손에 든 채, 귓속말을 나누기 위해 그레빌의 얼굴에 빠르게 자신의 얼굴을 가져간다.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 가운데, 서로를 잡아끌며 바짝 얼굴을 밀착시키는 두 남자의 옆모습을 담은 투샷은 그렇다, 영락없는 키스 신이다. 영화 종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깜짝 신체적 변화’보다 훨씬 인상적인 이 장면이 말하는 바는 명백히 두 남자의 우정이 ‘사랑’의 수준까지 승격됐다는 것인데(물론 퀴어적 의미로는 아니다), 이는 그 뒤에 이어지는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의 피날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레빌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확정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국’과 ‘자유’와 ‘인류’ 등등의 거한 단어들을 논하며 그레빌을 압박하던 미국과 영국의 ‘프로’ 스파이들보다 훨씬 큰 것을 실현한다.

영화는 그레빌의 마지막 모험에, 그에게 깊이 공감한 시아이에이 요원 에밀리를 동참시킨다. 하지만 에밀리의 동참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든 그레빌과 비교하면 거의 풀장에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든 정도다. 하긴 영화 내내 에밀리는 해설자의 역할 이상에서 더 나간 적이 없다. 그레빌의 아내 쉴라 또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풍의 수동적 역할에 머물러 있고 말이다.

이 고지식한 영화의 아쉬움은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고리타분한 접근뿐이 아니다. 사실 영화의 후반 30분가량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역할에 대한 헌신과 근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기능성은 물론 달성하고 있으나, 극적인 면에서는 사실 군더더기와 장황한 설교의 중간 어딘가쯤에 위치한다. 그 분량을 차라리 올레크와 그레빌,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의 관계와 심리를 더 깊이 있게 파고드는 데 할애했더라면 영화는 ‘우리가 몰랐던 평범한 사람이 인류를 구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목적에 훨씬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스파이>의 고지식함과 밋밋함은 더욱 아쉽다. 성찰 없는 얄팍함과 약삭빠른 잔재주가 훨씬 쉽고 빠르게 보상받는 요즘, 그 어렵디어려운 일이 성공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우리를 북돋워주는 것도 또 없는지라.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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