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홀대받고, 부당이익을 취하면서 재산을 불리는 사람들은 떵떵거리며 산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무색한 요지경 세상이다. 법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커지고, 이와 함께 바보 취급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늘어나면서 세상은 악다구니의 소굴로 변해가고 있다.
가상의 문주시 만양읍을 배경으로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심리스릴러 <괴물>(제이티비시)의 이동식(신하균)은 악다구니 소굴에서 바보 취급당하지 않으려고 괴물이 된 인물이다. 21년 전 쌍둥이 여동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라이브카페에서 기타 연주를 즐기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당시 라이브카페 여종업원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기타 피크 때문에 용의자로 긴급체포되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납치되어 살해됐을지도 모르는 비극적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으로서의 슬픔을 위로받기는커녕 용의자로 낙인찍혔고, 급기야 신도시 택지개발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동네 사람들의 원망과 비난까지 감내해야 했다. 스무살 청년 이동식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조차 찾지 못한 채 이동식은 슬픔의 강에 빠졌다.
이동식은 “억울해서 억울한 놈 되지 않고 억울한 놈 만들지 않기 위해” 경찰이 되었다.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법률 조항을 읊어대면서 동네 아주머니들의 화투판을 단속하다가도,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실성한 채 갈대밭을 헤매는 중증 치매 할아버지를 찾아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가 하면,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는 여대생의 안전을 걱정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상실과 결핍의 아픔에서 비롯한 공감력으로 충실하게 경찰 업무를 수행하지만, 동료 경찰에게 총을 쏘고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피의자에게 앞뒤 안 보고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는 다혈질이다. 분노를 참지 못할 때도 잦다. 여대생 살해 현장 조사의 허술함을 지적하면서 동료 경찰들에게 “드라마에 나오는 형사냐”고 비아냥거린다. 만양읍 사람들이 그를 ‘또라이 경사’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선후배 경찰 모두 인정할 정도로 그의 사건 수사 능력은 뛰어나다. 한때 서울 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로 차출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21년 전 누군가에 의해 은폐된 사건의 진실을 은밀하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실종된 여동생이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당시 수사 기록들을 검토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여대생 살인사건이 또다시 발생하면서 그는 서서히 미쳐갔다. 그의 눈빛은 시시각각 변했고, 입가에는 능청스러운 미소와 그로테스크한 웃음이 교차했다.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를 부라리며 소리를 지르다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 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도 잦았다. 속내를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순간순간 돌변하는 감정 기복에서 그의 슬픔과 분노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동식과 비슷한 상실과 결핍의 고통을 겪고 있는 정육점식당 주인 유재이(최성은)의 말을 빌리면, 그는 “평생 끌어안은 슬픔이 넘쳐 미친 사람”이었다.
이동식에게 문주시 만양읍은 상실과 결핍의 근원이지만, 지역민들에게는 신도시 택지개발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기의 터전일 뿐이었다. 만양읍 사람들이 20여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발생한 실종과 상해 그리고 살인사건을 은폐하거나 애써 외면하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도 20년 전처럼 개발이 무산될까 우려해서다. 건설업자와 결탁한 시의원은 “‘같이’의 ‘가치’가 이뤄내는 기적! 새로운 문주 2021, 고속철도 노선 확장 추진, 문주에서 서울까지 20분”이라는 정치 구호를 내세워 지역민들의 개발에 대한 욕망을 자극했다. 자기가 소유한 토지를 포함하여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기려는 투기세력은 물론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실종과 상해 그리고 살인 때문에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 지역민들 모두 인간에 대한 예의 따위는 팽개친 채 탐욕에 빠진 괴물들이 되었다.
신도시 택지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내부정보로 신도시 예정지의 토지를 사들여 막대한 차익을 챙기는 비리가 난무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도덕과 윤리 그리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특히 공기업 임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불법적인 투기 행위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들 대부분이 박탈감과 상실감을 넘어 바보처럼 살았다는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개발이익에 현혹된 괴물들을 상대하다가 “법 잘 지키면서 좋은 경찰”로 살지 못하고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이동식이 묻는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각종 개발 공약에 현혹되어 탈법과 편법 혹은 불법의 이력을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더디어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나와 너 혹은 우리의 대답만 남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