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23. 투고 요령과 독서 공동체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고
자기소개서·분량·타깃 독자
요약문·샘플원고 담아 투고
신간 많지만 훌륭한 책 적어
남의 책 발견하고 추천하는
‘독서공동체’의 1인부터 되길
23. 투고 요령과 독서 공동체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고
자기소개서·분량·타깃 독자
요약문·샘플원고 담아 투고
신간 많지만 훌륭한 책 적어
남의 책 발견하고 추천하는
‘독서공동체’의 1인부터 되길
![일러스트레이션=이내 일러스트레이션=이내](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27/1343/imgdb/original/2020/0911/20200911502655.jpg)
일러스트레이션=이내
마음 가는 원고, 마음 안 가는 원고 종합출판사 ㄱ사에는 문학과 비문학을 합해 투고 원고가 하루에 적으면 두편, 많으면 다섯편가량 들어온다고 한다. 역시 종합출판사인 ㄴ사 관계자도 “투고 원고가 한달에 300편이나 온다. 한 사람이 처리하기 곤란할 정도”라고 한다. 종합출판사인 ㄷ사에는 일주일에 20편 이상 온다고 한다. 물론 이 중에 실제로 출간으로 이어지는 원고는 극소수다. 거액 상금이 걸린 장편소설공모전의 경쟁률이 200 대 1에서 300 대 1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투고의 경쟁률이 낮다고 할 수 없는 셈이다. 어떤 면에서는 투고가 더 불리하다. 투고 원고는 보통 출판사의 막내 편집자가 맡아 살피는데, 그가 원고를 다 읽어본다는 보장이 없다. “솔직히 다 못 읽는다”고 고백하는 편집자도 있다. 내 경우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정식 데뷔한 뒤에도 여러 출판사에 소설 원고를 보냈는데, ‘원고를 잘 받았다, 검토하겠다’는 의례적인 답장이 오는 확률도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문학공모전이 여러 비판을 받음에도 개인적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가 되는 방법이 공모전밖에 없다면 기괴한 상황이다. 하지만 작가가 되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고 거기에 공모전도 추가된다면 작가 지망생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소설공모전에 대한 이야기는 졸저 <당선, 합격, 계급>에서 상세히 다뤘기에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하겠다.) 다행히 최근에는 웹소설이나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브런치북 같은 새로운 연재 플랫폼이 생기고, 크라우드 펀딩 같은 방법도 생겼으며, 출판 각 부문이 외주화되면서 독립출판의 길도 쉬워졌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된 <90년생이 온다>, 독립출판물이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책들이 대성공하면서 출판사들의 태도도 확연히 달라졌다. 플랫폼이 어떻든 기본은 같다. 출판사에서 책을 한권 펴내는 데 수백에서 수천만원이 든다. 그 돈을 나에게 투자해달라고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먼저 ‘번지수’부터 잘 찾아야 한다. 모든 분야의 책을 내는 종합출판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자기계발 서적 전문 출판사에 소설 원고를 투고하거나 학술서 전문 출판사에 육아 에세이를 보내봐야 응답은 없을 것이다. 출판사 홈페이지를 찾아가 어떤 책을 내는 곳인지 확인하는 수고는 들이자. 무엇보다 원고의 질이 중요하다. 이미 출간된 어떤 책과 비교해서 내 원고가 못하지 않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감성 에세이’를 출간한 출판사에는 자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 뭉치를 보내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내 글이 너희가 낸 책보다 못할 게 뭐 있느냐’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에세이 책들은 내용이 아니라 저자의 팔로어 수를 보고 출간됐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독자를 사로잡는 글과 편집자를 사로잡는 글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다. 편집자가 1차 독자이며, 투고든 청탁이든 편집자들도 원고를 검토할 때 독자의 눈으로 살피려 한다. 출간 제안서에 딱히 정해진 양식은 없다. 한 팀장급 편집자의 고백을 옮긴다. “한동안 똑같은 형식으로 출간 제안서가 수십건이 들어왔어요. 예비 작가들을 위한 책 쓰기 수업의 마지막 과제물인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더 마음이 안 가게 됐어요. 그냥 정해진 규칙 없이 솔직하게, 자신이 누구고, 이 글이 어떤 글이고, 어느 정도 분량이고, 타깃 독자는 누구인지 등 편집자가 궁금해할 내용들을 써주시면 좋겠어요.” 시간이 부족한 투고 담당자들을 위해 자기소개서, 원고 요약문, 목차, 샘플 원고를 넣으면 좋다. 저자 이력은 장황하게 줄줄 늘어놓을 필요 없이 원고와 관련된 사항만 적으면 충분하다. 간혹 자신이 자비로 몇부를 구입할 수 있다고 쓰는 저자도 있는데, 몇천부 단위가 아닌 한 출판사에는 별 의미 없는 수치라고 한다. 그보다는 자신과 책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을 소개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는 게 여러 편집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과거에 전자책으로 출간한 적이 있는 원고라면 미리 사실을 밝혀줘야 한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으로 수십만부가 팔린 원고라는 둥 터무니없는 과장을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독립출판물이라도 그렇게 판매됐다면 출판계 인사들이 모를 수가 없다. 당연히 저자와 원고 전체를 의심의 눈길로 살피게 된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지 말자. 어느 정도 감정을 다스리고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많은 예비 작가들이 투고 과정에서 좌절한다. 그러면서 편집자를 원망하고, 거절당한 원고가 보기 좋게 성공해서 자신을 놓친 출판사들이 눈물 흘리며 후회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원고가 거절당하면 거절 사유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진 말자. 물건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다가 마음이 동하지 않아 매장을 나올 때 상점 주인이 “왜 그냥 가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런 설명을 요구할 권리는 상점 주인에게도, 예비 작가에게도 없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 투자 대상의 미래 가치를 알아보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어느 주식이 오를지, 어느 아파트 가격이 뛸지 모른다. 으리으리한 학위와 경력을 쌓은 분석가들 수천, 수만명이 코앞에 닥친 경제위기를 못 본다. 아무리 선구안이 좋은 타자라 해도 안타를 칠 확률보다 아웃될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출판사들은 유망한 신인 저자를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동물농장>이, 그토록 거절을 당했겠는가? 나 자신은 지금 주변 사람들의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가? 아닐 거다. _________________
안 나와도 되는 책이 넘치는 서점에서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말을 하고 다니면, 더구나 이렇게 투고 요령까지 설명하고 있노라면,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씀하신다. “지금 한국에서는 오히려 책이 너무 많이 나와서 문제 아닌가요? 안 나와도 괜찮은 책이 서점에 넘쳐 나요.” 그렇다. 심지어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기 때문에 계속 베스트셀러가 되는 악순환도 일어난다. 그러는 사이 진짜 괜찮은 책이 주목받지 못하고 잊힌다. 그런데 그렇게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은, 내 생각에는 신간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책이 훌륭한 책인지 발견하고 추천하고 입소문을 낼 독서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순위와 고전 목록, 호평 일색인 신문 서평, 그리고 이제는 정말 소수 취향이 되어버린 듯한 소위 ‘문단’의 평가 외에 일반 독자들이 책을 고를 때 믿고 의지할 판단 기준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런 농담도 한다. 한국에서 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한달에 한권씩 책을 읽는다면 성인 인구 독서율이 이렇게 낮지 않을 거라고. 뼈아픈 지적이다. 내 원고를 편집자가 선택하고 독자들이 읽어주길 바란다면, 나 역시 남의 책을 발견하고 추천하는 독자의 한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내가 쓰려는 분야의 책들은 시장조사 차원에서라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독서 공동체라는 게 별게 아니다. 책을 성실히 읽고, 길지 않은 감상을 인터넷 서점이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책 추천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데 일조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다.
▶책 한권은커녕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시대, 카드뉴스를 넘어 50초짜리 동영상이 글자를 대체하는 시대에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많은 이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사회다.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왜 이로운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장강명 작가가 ‘책 쓰는 법’을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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