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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납작한 활자를 입체 카드로…생생한 글의 6가지 비밀

등록 2020-08-15 15:08수정 2020-08-15 20:03

[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21. 논픽션 쓰기 (3) 문제의식과 현장을 연결하는 기술

증언 중요하면 현장 인터뷰
현장 없을 땐 소설적 재구성
체험·스케치·실험·사고실험

체험 논픽션 ‘호들갑’ 금물
스케치할 땐 크로키 그리듯
현장 묘사하며 살 붙여가길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논픽션에 현장감을 더하는 방법에는 내가 추천하는 방법이 세가지, 다소 까다로운 방법이 세가지 있다. 앞의 세가지는 현장 인터뷰, 체험, 스케치이고, 후자는 실험, 소설적 재구성, 사고 실험이다.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는 △특정 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이 중요한가 △구체적인 현장을 다시 볼 수 있느냐 △저자가 직접 체험 혹은 실험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지난 회에서 소개한 논픽션들과 몇몇 다른 책들의 예를 들어가며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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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인터뷰

특정 인물의 증언이 중요하고, 구체적인 현장이 있어서 그가 하는 행동을 옆에서 볼 수 있다면 이 방법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신문의 르포 기사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며, 특히 공장이나 공방 르포를 찾아보면 기자들이 사용한 기법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책의 주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대상 인물이 일하는 장소에서 할 수 없는지, 그 장소를 보여줄 수 없는지 요청해보자. 그런 인터뷰를 할 때에는 말만 받아 적지 말고 상대의 행동에서부터 표정이나 몸짓도 잘 메모해놓자. 그 현장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냄새는 어떤지, 온도나 습도, 인상과 분위기는 어떤지도 살피자. 그런 감각 정보들이 독자에게 바로 그 현장에 있는 듯한 효과를 줄 수 있다.

지난 회에서도 소개했던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에는 저자가 중무장한 마약 단속 요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재배 농가들을 방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드먼은 작전에 참여한 병사와 통역사의 말 사이사이로 호송 차량의 무장 상태에서부터 도로의 흙먼지, 푸른 밀밭, 하늘의 흰 솜털구름까지 자세하게 묘사한다. 살벌한 근경과 평온한 원경이 대비되어 독자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맛보는 한편, 이 비극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무의식중에 느끼게 된다.

현장 인터뷰를 정리할 때에는 독자가 인터뷰이의 행동을 보면서 동시에 그의 말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인터뷰 현장에서는 인터뷰이가 자기 행동을 보여주면서 말을 하기는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런 경우 인터뷰와 현장 스케치를 순차적으로 한 다음에 교차편집하는 것도 당연히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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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 재구성

특정 인물의 말과 행동이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현장이 없거나 재연할 수 없을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흔히 평전이나 범죄, 혹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논픽션에서 쓰는 기법이다. 미국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가족 살해 사건을 소설처럼 써내려간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가 이 방면으로 가장 유명한 책이겠다.

2010년대 들어 국내 신문업계에서는 나날이 독자를 잃어가는 데 대한 돌파구로 뉴 저널리즘, 혹은 내러티브 기사라 부르는 이런 소설적 재구성 방식의 기사들을 시도했다. ‘내러티브 리포트’ 등의 열쇳말로 검색하면 여러 신문들이 시도한 이런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한편 한편이 다 언론사로서는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들로, 관심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뉴스 플랫폼이 나날이 더 짧고 파편적인 기사들에 유리한 방식으로 변하는 통에 이런 시도들이 더 퍼지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확실히 이 방식은 단순한 스케치보다 훨씬 더 깊은 몰입감을 준다. 문제는 취재하는 분량이 훨씬 더 방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에 필요한 묘사는 보통 논픽션에 필요한 묘사와는 초점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런 공란을 허구로 채우다 보면 원고가 점점 논픽션의 경계를 넘어 ‘팩션’이 되어버린다. 범행을 저지를 때 범인이 풍겼던 냄새를 피해자에게 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상상으로 써도 괜찮은가? 쉽지 않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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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특정 인물의 증언이 중요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장이 있으며, 저자가 그 현장의 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신문 기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체험해보니’ ‘직접 해보니’ 등의 키워드가 제목에 들어간 기사를 찾아보면 된다. 노숙인, 아이돌 연습생에서부터 야구장 볼보이, 애인 대행 서비스, 여론조사원 등등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체험 방식의 장점을 살리려면 옆에서 보거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고백이 나와야 한다. 체험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우와, 진짜 그래?’ 할 정도로 놀라운 팩트나 예상치 못한 느낌들을 부단히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때 체험을 하는 당사자의 몸이 고되다고 거기에 비례해서 저절로 글이 좋아지는 것은 아님을 명심하자. 어떤 일을 고작 한나절가량 겪은 뒤에 고통을 지나치게 호들갑스럽게 강조하면 역효과가 나리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훌륭한 교재로, 지난 회에서 소개한 한승태 작가의 <인간의 조건>을 다시 한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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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특정 인물의 증언이 중요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장이 있지만, 저자가 그 현장의 활동을 직접 참여할 수는 없고 관찰할 수만 있을 때 사용하면 좋은 방법이다.

스케치 자체는 특별히 어려운 기술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글의 흐름과 관련이 없는 세부 사항이나 풍경을 묘사하는 데 지나치게 공을 들인 과제를 받곤 한다. 무조건 자세하게 묘사한다고 해서 생동감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때로는 글이 지루해지기만 할 수도 있다. 그 현장의 문제성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요소들을 자세히 전달할 때 그 문제성이 더 제대로 전달이 될 수 있는지 고심해보자. 그 현장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떤 질서와 규칙을 따르는지 살펴보자.

진귀한 구경거리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반드시 주제의식이 담기는 것도 아니다. ‘왜 이 장소를 묘사해야 하나? 왜 그렇게 묘사해야 하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현장을 살펴보자. 한가지 팁을 제안한다면, 단 석줄로 스케치를 끝낸다고 생각하고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다. 정밀화가 아니라 크로키를 그린다고 여기며 현장을 묘사한 뒤 거기에 살을 붙이면 길을 잃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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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특정 인물의 증언이 중요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장도 없을 때, 저자가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방법론에 입각해 실험을 설계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국산 맥주는 정말 맛이 없는가’라는 문제로 원고를 쓰면서 친구들을 모아 맥주 시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독자들은 저자가 재미있는 현장을 만들었다고 환영할 것이다. 논픽션 문학에 그 정도 삽화가 들어가는 것까지는 허용된다. 하지만 그런 실험의 결과는 엄밀히 말해 통계적·과학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으며, 거기에 기대 어떤 주장을 펼쳐도 곤란하다. 학자들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실험 설계를 하고 싶다면 대학에서 관련 수업을 받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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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실험

특정 인물이 실제로 한 말이나 행동이 중요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현장도 없거나 재연할 수 없으며, 저자 한 사람의 힘으로는 제대로 된 실험도 벌일 수 없을 때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은 1848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청나라 대사 앞에 무릎 꿇고 중국의 식민지가 되는 장면을 다섯 페이지에 걸쳐 근사하게 묘사한다.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대체 역사물인 셈이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올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앤드루 양의 저서 <보통 사람들의 전쟁>은 중간에 에스에프(SF) 기법을 쓴다. 소규모 화물차 회사 사장이 최근에 도입된 자율주행 트럭 때문에 파산을 앞두고 있다. 그가 시위를 벌이자 화물차 기사 수백명이 합류하며, 얼마 지나 시위대는 수만명으로 불어난다. 폭동은 진압되지만 국수주의 정당이 미국 남부에서 득세하면서 분리독립 운동의 열기가 높아지고, 곳곳에서 로봇 소유자를 겨냥한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

재미있는 기법이지만 이는 이미 논픽션의 범위를 벗어난 테크닉이다. ‘논픽션 속 픽션’이라고 봐야 한다. 위에서 말한 다른 다섯가지 기법이 도저히 여의치 않을 때 제한적으로만 쓰도록 하자.

▶책 한권은커녕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시대, 카드뉴스를 넘어 50초짜리 동영상이 글자를 대체하는 시대에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많은 이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사회다.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왜 이로운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장강명 작가가 ‘책 쓰는 법’을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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